11조 발행어음 ‘큰 손’ 한국투자증권, 100만원 캐시백 준다더니, 돌연 판매 중단
11조 넘은 잔액 운용 부담된 듯
이미 제주은행 총수신의 2배 잔액
“발행어음이 수익성에 독될 것”이란 전망도
한국투자증권(한국금융지주)이 백화점상품권과 캐시백 등 현금성 경품을 제공하는 발행어음 모집 이벤트를 한다고 투자자들에게 알렸다가 2주일 만에 발행어음 판매를 전면 중단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품 이벤트는 다음 달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체 신용으로 발행하는 1년 이내 단기 금융상품으로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증권사 중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은 곳만 발행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이 너무 무리하게 발행어음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발행어음은 보통 확정금리(현재 연 4~5%)의 이자를 발행어음을 사간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상황이 좋을 때는 다양한 투자처에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돈을 투자해 이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기 둔화와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에서는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돈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 오히려 발행어음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한투증권이 갑자기 발행어음 판매를 중단한 것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돈을 투자할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6일부터 원화 발행어음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매수가 중단된 상품은 발행어음 CMA(종합자산관리계좌)와 퍼스트 원화 발행어음 수시물, 기간물 등 한투증권이 판매하는 모든 발행어음이다.
앞서 지난 10일 한투증권은 오는 5월 31일까지 백화점상품권과 캐시백 등을 내걸고 발행어음 판매 촉진 행사를 고객들에게 공지했다. 181일물 이상 발행어음을 1000만원 이상 순매수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신세계상품권 1만원을 지급하고, 1억원 이상 순매수하는 투자자 중 100명을 추첨해서 가입 금액의 0.1%(최대 100만원)의 캐시백을 지급하겠다고 했었다. 이렇게 현금성 경품을 내걸고 모객 활동을 하다 돌연 상품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생각보다 빠르게 발행어음 한도가 소진돼 판매를 중단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업계에서 발행어음의 ‘큰 손’으로 통한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해도 금융위원회의 승인이 없으면 발행‧판매를 할 수 없다. 2017년 11월 국내 증권사 중 처음으로 승인을 받았고 2018년 5월 NH투자증권이 발행어음 판매 승인을 받기 전까지 사실상 이 시장을 한투증권이 독점했다. 시장 선점 효과로 현재 한투증권의 발행어음 잔액은 11조232억원(2022년 말 기준)에 달한다. 발행어음 사업을 하는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KB증권(KB금융) 중 어떤 곳도 발행어음으로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모은 곳은 없다. 제주은행의 예‧적금 등 총수신(6조2534억원)의 2배에 가까운 규모를 증권사가 굴리고 있는 셈이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의 2배까지만 발행할 수 있는데 한투증권의 지난해 말 자기자본(6조5528억원)을 고려하면 최대 13조1056억원까지 발행어음을 팔 수 있고 현재 1조3000억원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다른 증권사들은 자기자본의 2배 한도의 허리 정도까지 판매하는데 한국투자증권은 거의 어깨나 목 이상 최대한도로 발행어음을 팔아 공격적인 투자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면서 “그렇게 모은 자금으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면 좋지만, 지금처럼 투자처를 구하기 쉽지 않고 발행어음을 사간 고객들에게 높은 금리를 줘야 하는 상황이 되면 오히려 수익성을 악화하는 양날의 검이 되는 것이 발행어음”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한투증권이 너무 많은 자금을 발행어음으로 조달해 자금 운용이 쉽지 않은 상태이고 이런 상황에서 경품까지 제공하며 더 많은 고객에게 발행어음을 판매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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