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폭력’과 여성의 ‘고난’이 담긴 장소, 집[플랫]

플랫팀 기자 2023. 4. 2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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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호의 세 번째 시집 <홈 스위트 홈>(문학과지성사, 사진) ‘시인의 말’과 ‘차례’ 사이에 든 시는 ‘홈 스위트 홈 소호 문학 전집 시리즈 07’이다. 미래의 어느 날 2023년 4월 출간된 <홈 스위트 홈>과 ‘이소호’에 관해 적은 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작가와 작품 소개를 변용한 이 글은 이소호의 원래 이름인 ‘이경진’과 간략한 출생 배경 설명을 거쳐 우화로 자리매김한 시집을 설명한다. “다른 한국어로 번역된 소호 우화들은 많이 각색되고 분칠되어 페미니즘 논란의 시대에 가부장제의 혐오를 대변하는 것처럼 소개”됐다. 이어 쓴 문장은 다음과 같다. “원문이 전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야만적이고 거칠며 잔인할 뿐만 아니라, 여성이 처절한 일상 속에서 버텨낸 단단한 고난을 다루고 있다.”

이미지컷

시집 <캣콜링>으로 이소호가 2018년 11월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을 때 내놓은 수상 소감과 이어진다. “이 시들은 제가 경험하고 듣고 배운 하나의 역사입니다. 폭력의 시집입니다. 여자라서 큰딸이어서 연인이어서 신도여서 외국인이라서 신인이어서 당했던 처절한 폭력의 현장입니다. … 불편하고 무한한 여자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흉내 낼 수 있어서 기쁩니다.”

<홈 스위트 홈>도 여성이 당한 ‘고난’과 ‘폭력’을 주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첫 시집 <캣콜링>(민음사)의 기조를 잇는다.

<캣콜링>은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로 남성 가부장이 아니라 어머니, 언니, 여동생 등 여성을 설정했다. “가부장제 폭력을 내면화한 동생이 같은 폭력에 노출된 여성 가족 구성원에게 같은 방식으로 폭력”을 행하는 장면 등을 두고 문학평론가 선우은실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을 단순히 성별 교환의 미러링이 아닌, 그렇게 보이도록 ‘연출’하여 말 그대로 의도된 시적 주체에 의해 ‘전시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홈 스위트 홈>은 남성의 폭력과 여성의 고난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표제작은 “가정주부로 살아온 자는/ 죽을 때도 주부로 죽는다// 집안일에는 은퇴가 없으니까”로 시작해 “타자기 앞에 손을 올린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빠는 소리쳤다/ 딸년은 고고하게 앉아 글이나 쓰고 있는데/ 내가 저 돈을 다 대야 한단 말이야?”로 연결된다. ‘손 없는 날’엔 아버지와 텔레비전 사이 놓인 아버지 다리를 넘자 “개념 없는 년이라고/ 어른은 넘나드는 게 아니라고” 화를 내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텔레비전 속에는 죽음이 즐비하고
희망은 날씨뿐이다

아나운서는 코로나 이후
가정 폭력 지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잠시
지옥이 있었다.
- - 이소호의 ‘손 없는 날’ 중

‘다정한 이웃과 층간-소음 사이에 순장된 목소리’에 나오는 남편은 “나를 주워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곱게 접어 찍찍이에 눕혔다 영원히 침대 밑에 쑤셔” 박는다. “나를 무시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그랬지?/ 이건 당신이 자초한 일이야/ 네가 애 낳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어 지금처럼/ 입 다물고 여기 얌전히/ 누워,/ 누워서 가만히/ 가만히 있으란 말이야”.

문자나 기호, 이미지를 활용한 이소호의 실험시 경향은 <홈 스위트 홈>에도 여전한데, 이 시들은 더 압축적으로 고난과 폭력을 형상화한다. ‘미니멀리스트’는 단 네 행, 네 자다. “집/ 퍽/ 픽/ 꽥”. ‘밑바닥에서’는 지면 맨 아래 다음 문장을 72번 반복해 적었다. “살려주세요”.

두 번째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현대문학)는 도록 형식을 빌려 구성했다. <홈 스위트 홈>에서도 ‘뉴욕 뉴 뮤지엄 B4층에서 <이소호: 숲, A Thick Forest>展이 열리고 있다’ 같은 제목의 시를 실었다.

이소호 시인 . 문학과지성사 제공

<홈 스위트 홈>에는 “인간이 유일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만나게 되는 가장 작은 사회적 집단”인 가족의 여러 구성원이 등장한다. 호주로 이주한 동생 시진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겉돌며 떠돈다. ‘간추린 이민 뉴스’의 화자는 비자 면접장에 간 시진이다. ‘콩글리시’를 한글로 표기했다. “리브 인 코리아 이즈 얼웨이즈 하드 포 미 아이 돈 해브 머니” “바리스타 이즈 워스트 잡. 비코우즈 인 코리아 띵킹 바리스타 이즈 낫 ‘리얼’ 잡.” “마이 페밀리 칸트 케어 오브 미. 비코우즈 데이 아 베리 푸어”. 이 시는 “플리즈 기브 미 퍼머넌트 레지던시 비자 플리즈.”로 끝난다.

이 시와 전혀 ‘스위트’하지 않은 ‘홈’에 관한 시들에서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곳이 볕이 아닌/ 빛이 드는 곳이라고 해도.”라는 ‘시인의 말’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 김종목 기자 jomo@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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