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대선 잠룡' 디샌티스 고소…동성애 '이념 전쟁' 1년만
'성정체성 교육 금지법' 이견으로 갈등 촉발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세계적인 엔터테이먼트 기업 월트디즈니 컴퍼니(디즈니)가 공화당 '대선 잠룡'으로 분류되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고소했다. 디즈니월드에 부여된 행정 자치권을 박탈하는 주정부의 결정은 정치 보복이란 이유에서다. 양측이 동성애 교육 문제를 두고 1년 가까이 벌여 온 '이념 전쟁'이 결국 법정 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됐다.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디즈니는 플로리다 정부가 지방정부의 권한을 남용해 디즈니월드의 자치권을 박탈했다는 이유로 디샌티스 주지사를 상대로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디즈니는 소장을 통해 "디샌티스 주지사가 모든 단계에서 총지휘한 표적화된 주정부의 보복 행동은 이제 디즈니의 사업 운영을 위협한다"고 밝혔다.
앞서 디샌티스 주지사는 디즈니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왔다. 올초 디즈니월드를 관할하는 플로리다 관광감독위원회에 자신의 측근 5명을 임명했다. 디즈니월드 개발 계획과 광고 집행을 통제하고 각종 세제 혜택을 박탈하기 위해서다. 급기야 17일에는 디즈니월드를 주립 공원화하거나 테마파크 내 유휴부지에 교도소를 건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디샌티스 주지사가 분노한 이유는 반세기 넘게 누려온 행정 특례를 박탈당할 위기에 놓인 디즈니월드가 지난달 이를 30년 동안 무력화하는 정치적 합의를 감독위와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디샌티스 주시사는 감독위원들을 자신의 측근들로 교체했다.
새로 출범한 감독위는 이날 디즈니월드 확장 계획이 주법을 준수하지 않았으며 전임자들과 체결한 합의는 무효임을 선언했다. 디즈니월드에 대한 자치권 박탈 조치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허를 찔린 디즈니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소송에 돌입했다.
1967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세워진 디즈니월드는 그동안 특별행정 구역인 '리디 크릭 개선지구(Reedy Creek Improvement District)'로 지정돼 사실상 별도의 지자체처럼 취급됐다. 이를 통해 디즈니월드는 방문객들을 상대로 자체 세금을 징수하는 대신 쓰레기 수거와 하수처리 등 각종 공공서비스를 직접 운용해 왔다.
이처럼 55년간 고도의 자치권을 누려온 디즈니월드가 위기에 처한 건 1년 전 플로리다 주정부가 내놓은 성정체성 교육 금지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면서다.
지난해 4월 플로리다주 의회는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에게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관한 교육을 전면 금지하는 '학부모 교육 권리법'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디즈니월드 직원 7만5000명이 단체로 법안에 반발했다. 침묵을 지키던 밥 체이펙 당시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도 직원들의 거센 항의에 결국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플로리다주 정치인들에게 풀던 정치자금도 거둬들이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디샌티스 주지사도 리디 크릭 개선지구의 특별 지위를 없애는 법안을 발의하며 맞불을 놨다. 디즈니월드의 특별 조세 지구 지정을 취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은 지난해 플로리다주 상·하원을 모두 통과했다. 이날 감독위도 이를 무력화하는 합의는 원천무효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시행은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디즈니 측은 플로리다 주정부의 이번 결정은 미국 수정헌법 1조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디즈니는 소장에 "주 입법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을 뿐인데 이로 인해 주 정부로부터 처벌을 받았다"며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고 해서 정부가 이를 처벌할 수는 없다"고 적었다.
아울러 디즈니월드가 플로리다 내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밥 아이거 CEO는 지난 13일 주주들과 만난 자리에서 디즈니는 지난해 11억달러(약 1조원)의 지방세를 플로리다 정부에 납부했고 향후 10년간 디즈니월드에 170억달러(약 22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사가 취한 입장에 대한 보복으로 이러한 노력을 방해하는 행동들은 반기업적일 뿐만 아니라 반플로리다적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디샌티스 주지사는 주정부의 결정에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디즈니월드가 오랫동안 불공정한 이점을 누려왔다고 지적했다. 디샌티스 주지사의 대변인 제레미 레드펀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기업이 자체적인 정부를 운영하거나 특별한 특권을 유지할 법적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고 적었다.
디샌티스 주지사의 거침없는 '디즈니 때리기'는 결국 공화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보수 유권자 표심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같은 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면서 '정치적인 무리수를 둔 거 아니냐'는 평가도 제기된다.
당내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디샌티스 주지사가 "디즈니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며 "디즈니가 플로리다 지역 투자를 줄일 것"이라고 비난했다. 플로리다 마이애미 출신 카를로스 커벨로 전 공화당 하원의원은 "디샌티스의 디즈니 공격이 한때는 일리가 있었지만 이제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샌티스가 소송에서 디즈니를 이길 가능성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재판을 맡은 마크 워커 판사는 지난해 플로리다 대학 교수들이 주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집단소송에서 '전문가의 증언을 입막음해선 안 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해 플로리다 지역에서 진보적인 판사로 분류된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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