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달' 김서형, 배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

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2023. 4. 2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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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종이달' 김서형, 사진제공=KT스튜디오 지니

배우 김서형이 출연하는 지니TV의 드라마 '종이달'의 원작은 우리나라에서 2014년 발간된 일본 작가 가쿠다 미쓰요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2014년 NHK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며, 이듬해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김서형이 연기하는 유이화의 역할 일본 이름은 우메자와 리카다. 

일본에서 흔하게 쓰이는 '리카'라는 이름은 한자로는 '梨花' 즉 '배꽃'을 의미한다. 결국, 일본의 이름 한자 뜻을 그대로 한국 이름으로 쓴 것인데, 원작과의 연속성을 고려한 제작진의 고려가 아닌가 싶다. 배(梨)를 그대로 일본어로 읽으면 'なし(나시)'가 되는데 이 발음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무(無)'와 똑같다. 

배꽃은 4월에 주로 피는데 밤에 하얀 달빛을 받고 있으면 화사하게 빛난다. 꽃말인 위로, 위안, 온화한 애정이 절로 생각나는 모습이다. 이 꽃의 모습을 당장 사람의 모습으로 환원한다면, 과연 김서형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까.

'종이달' 김서형, 사진제공=KT스튜디오지니

'종이달'은 가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 여자가 영화학도인 어린 남자를 만나 자존감을 찾으면서, 반대로 그를 지원하기 위해 그에게 안온한 쉼터를 만들어주기 위해 VIP 고객의 돈에 손을 대는 과정을 다룬다. 주인공인 이화는 초반에는 마치 거실에 말라붙은 한 떨기의 꽃 같았다가, 윤민재(이시우)를 만난 후에는 마치 유복한 토양과 물, 햇볕을 쬐는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난다.

그의 결말은 모두가 알고 있다. 결국, 어린남자와의 관계는 파탄 나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스스로를 옥죄어오며 결국 외국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채로운 이화의 모습은 김서형의 모습을 빌려 인상적으로 태어난다.

김서형의 '종이달'에서의 연기는 모두 눈으로 완성된다. 그가 초반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줄 윤민재를 만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할 때 그리고 연인이 된 윤민재를 마치 엄마가 된 듯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 김서형의 눈빛은 각기 다른 명도와 채도로 시청자를 서서히 설득시킨다. 그리고 그의 연기가 언제 그랬냐 싶게 조금은 느리고 답답하지만 꼼꼼하고 우직한 이화의 성격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종이달' 김서형, 사진제공=KT스튜디오지니

김서형이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된 지는 꽤 오래됐다. 안방극장에서는 1994년 KBS 1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10년 만이던 2004년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주인공 박신양의 전처 역으로 세련된 연기를 한 후 2008년 SBS '아내의 유혹' 신애리 역으로 첫 인생 캐릭터를 만난다.

진짜 악녀의 포스를 풍긴 그의 당시 입지는 지나가기만 해도 모두가 슬슬 피할 정도였고, 그에게 각종 연말 시상식 무대를 허락했다. 이후 '자이언트' '샐러리맨 초한지' '기황후' 등으로 연기를 다졌다.

2018년 또 10년 만에 두 번째 인생 캐릭터 김주영 역할이 찾아왔다. JTBC 드라마 'SKY 캐슬'에서 냉혹하고 잔인한 입시 코디네이터를 소화한 김서형은 역할 속에 그야말로 자신을 던지는 연기로 지평을 넓혔다. 결국 2020년 SBS '아무도 모른다'부터는 단독 주인공이 됐다. '마인'의 재벌집 첫째 며느리 정서현,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서는 시한부 환자인 다정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종이달' 김서형, 사진제공=KT스튜디오지니

그는 독하거나 냉혹하거나 때로는 따뜻하면서도 쿨한, 지금 이 시대 여성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향취를 각종 작품에 흩뿌렸다. '종이달'은 그중에서도 그가 6년을 걸쳐 찾은 작품이다. 여성서사에 대한 갈증으로 2016년 작품을 처음 접한 이후, '종이달'의 국내 판권 행방을 쫓았고 결국 제작사가 정해지자 배우로서 먼저 러브콜을 넣어 당당하게 배역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자신을 닦고 몰아세워 유이화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여성 중심의 서사는 김서형이 걱정했던 6년 전과 다르게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단지 이 유행을 TV의 여성 시청자층이 충성도가 높다는 등의 지표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만큼 한 여자의 갖은 감정을 다 담아낼 수 있는 여자 배우들이 늘어나고 있음이며, 김서형이 그 대열 중 눈에 잘 보이는 '1열'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으로 더욱 확증이 가능하다.

연기는 처음 입으로 시작하고 온몸을 다 거친 다음 눈에서 완성된다. 눈이 '마음의 거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배우에 있어서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일은 중요하다. 온갖 '비언어적 표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사가 아닌 것들로 많은 것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종이달' 김서형 이시우, 사진제공=KT스튜디오지니

그런 의미에서 '종이달'은 김서형 연기의 또 다른 지평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애리의 광기, 김주영의 교활함과는 다른 의지할 곳을 찾는 깊은 외로움이 그에 눈에서 길어 올려진다. '종이달'의 외형적인 성적인 어찌될 지 현재로선 알 수 없으나, 김서형의 또 다른 지평을 건져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가치는 넉넉하다.

이러한 연기의 뒤에는 늘 대본을 놓고 자신을 깎아가며 고민을 하는 김서형의 노력이 뒤에 있다. 그는 매 작품을 할 때마다 괴롭고 힘들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고통은 대중에게 환희로 다가온다. 마치 배꽃이 고통스러운 개화의 과정을 거쳐 아름답게 피고 질 때 보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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