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망신 각오하고 중재 나섰겠나"…우크라-러 평화 대화 기대감
서방 "중요한 첫 걸음" 환호…전문가들도 '성과' 기대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평화 중재자를 자처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개전 이래 처음으로 통화를 실시하면서 평화 회담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등 외신을 종합하면 시 주석은 26일(현지시간) 젤렌스키 대통령과 1시간 가량 진행된 전화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대화'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평화를 추진하기 위한 특사를 우크라이나에 파견할 방침을 전했다.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은 항상 평화의 편에 서 있다면서 "대화와 협상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유일한 출구다. 중국은 평화 회담을 설득하고 촉진하며, 가능한 한 빠른 휴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시 주석과 "길고 의미 있는 전화 통화를 했다"면서 "이 통화가 양국 관계 발전의 강력한 동력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양국 정상의 통화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지 15개월 만에 처음으로 이뤄져 눈길을 끌었다. 같은 기간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대면 또는 통화로 다섯 차례나 접촉했다. 특히 시 주석은 지난달 러시아에 국빈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6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 시진핑, 젤렌스키와 개전 15개월만에 첫 통화...왜 하필 지금?
개전 이래 시 주석의 적극적인 평화 중재를 촉구하는 국가는 많았지만, 그간 시 주석과 젤렌스키 대통령간 대화는 이번이 15개월 만에 처음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하기는 커녕 오히려 밀착을 강화하는 중국과 대화를 할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고 교착 국면에서 전쟁의 평화를 불러다줄 국가는 중국이 유일하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번 대화는 급작스레 진행됐다는 평가를 받기도하는데, 중국은 최근 논란을 일으킨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관의 발언을 잠재우고자 다시 한번 '참 오펜시브(charm offensive)', 즉 매력 공세를 펼쳤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앞서 루샤예 주프랑스 중국 대사는 지난 21일 프랑스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옛 소련 국가들은 주권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 발언이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중국 외교부의 진화 작업에도 유럽에서는 논란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에 시 주석은 서방에 매력 공세를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 美 "시진핑-젤렌스키 대화 환영"…EU "중요한 첫 걸음"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희망하는 서방에서는 중국의 의도가 무엇이됐든, 이번 대화를 환영했다.
미 백악관은 시 주석과 젤렌스키 대통령간의 통화에 대해 "소식을 환영한다. 우리는 (대화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우리는 오랫동안 이 전쟁이 끝나기를 원한다고 말해왔다"면서 "이제 그것이 어떤 의미 있는 평화로 이어질지, 계획이나 제안으로 이어질지 봐야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이 전쟁이 끝나기를 원한다고 말해왔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군대를 철수할 경우 "즉각" 전쟁이 끝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대변인 에릭 마머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회원국으로서 책임을 행사하는 데 있어 중국이 중요하지만 오래 지연시킨 첫걸음"이라고 중-우 정상간 통화를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국 지도부는 러시아가 침략 전쟁을 종식시키고 우크라이나의 정의로운 평화를 위한 기본인 영토 보전과 주권을 존중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조셉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책임자는 "이것은 첫 걸음이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첫 걸음"이라며 "중국이 러시아의 침략을 멈추도록 설득하는 첫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전문가들 "시 주석, 망신 당할짓 안해…평화 대화 임박한듯"
이번 대화를 두고 전문가들은 러·우간 이견이 확고한만큼 당장 전쟁 종식을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으나, 평화 대화 재개가 임박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성과가 없을 경우 시 주석이 자칫 망신을 당할수도 있기 때문에, 그가 계획도 없이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스의 라잔 메논 대전략 프로그램 책임자는 정상들간 통화가 성사된 배경에는 평화 회담 가능성에 진전이 있다고 시 주석이 믿기 때문이라면서 "시진핑은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위에 정치 자본(political capital)을 투입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중국은 이란-사우디를 중재했던 것처럼 성공하기를 원한다"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대화할 의향이 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 수용 가능 조건에 대해서 러·우간의 차이가 여전하기 때문에 이번 대화를 계기로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중국이 평화 중재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는 점이다. 중국이 그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제안한 정치적 해결책을 조정할지 여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메논 은 덧붙였다.
싱가포르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원(RSIS)의 라파엘로 판투치 연구원도 시 주석이 평화 대화에 직접 나서는 의지는 중국이 최소한의 성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라면서 "시진핑 주석이 관련 문제를 주도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상황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놀라울 일"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중국이 단순히 성과를 내기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심히 압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투치 연구원은 봤다. 그는 중국의 개입으로 '작은 휴전' 또는 '작은 양보' 정도가 도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리 다니엘스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이사도 이번 통화는 중국이 러시아, 유럽연합, 미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미묘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를 보여줬다"면서 중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더 정기적인 접촉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은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더욱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유럽에 보여주고 싶어한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평화 대화 과정을 중재할 의지와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yoong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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