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게 전하는 기술 유출 예방법과 대응법
[IT동아 한만혁 기자]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협력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 및 서비스를 수용할 수 있고, 스타트업은 대기업 인프라를 이용해 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이에 정부에서도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스타트업 기술 유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협력을 논의하던 대기업이 협상을 결렬하고 스타트업 기술을 도용하는 문제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 최근 선보인 영양제 디스펜서에 자사 기술을 그대로 적용했다며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타투 프린터를 선보인 프링커코리아는 LG생활건강과, 핀테크 스타트업 팍스모네는 신한카드와, 목장 기록 관리 앱을 서비스하는 키우소는 농협경제지주와 각각 분쟁 중이다.
이에 한국무역협회(KITA)는 26일 ‘오픈 이노베이션 분쟁 예방 세미나’를 개최했다. 오픈 이노베이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 및 아이디어 유출 문제에 대해 짚어보고, 대응 방안과 지원 제도를 알아보는 자리다.
한국무역협회 이명자 본부장은 “오픈 이노베이션 사업이 증가함에 따라 기술 유출 등 갈등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라며 “오늘 행사를 통해 당장 해법을 도출하기는 어렵겠지만, 분쟁 원인과 예방법, 대응법에 대해 같이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무역협회는 오픈 이노베이션 문화가 한층 성숙해지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기술 유출 예방법 ‘기록·NDA 체결·비밀 관리’
이날 행사에서 법무법인 미션 김성훈 대표변호사는 기술 유출의 중요 쟁점인 영업비밀에 대해 소개하고 영업비밀을 지킬 수 있는 3가지 예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우선 알고케어와 롯데헬스케어의 사례를 들어 “현재 쟁점이 되는 부분은 ▲핵심 기술에 대한 영업비밀 자료 전달 여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기술 적용 여부 ▲영업비밀 유지 협약(NDA) 체결 여부 등”이라며 “핵심은 영업비밀인데, 정작 영업비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운을 뗐다.
법에서 정한 영업비밀의 요건은 ▲공연성 ▲경제적 가치 ▲관리 3가지다. 공연성은 정보가 쉽게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정보라면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는 해당 정보가 경제적인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중요한 정보지만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없으면 영업비밀로 간주하지 않는다.
관리는 스타트업이 해당 정보를 영업비밀로 취급하고 관리하는 지를 따지는 항목이다. 사법부는 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관리 요건을 충족해야 영업비밀로 인정한다. 아무리 영업비밀이라도 쉽게 외부에 발설하거나 별도의 보안 솔루션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법도 보호하지 않는다.
김 변호사는 “공연성이나 경제적 가치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비교적 논쟁이 덜하다”라며 “쟁점이 되는 것은 관리 부분인데, 이는 스타트업이 스스로 노력해서 대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소송까지 가면 비용과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하게 되고 이겨도 얻는 게 그리 많지 않다”라며 “문제가 생기고 사후에 조치하는 것보다는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김 변호사는 3가지를 강조했다. ▲기록 ▲NDA 체결 ▲비밀 관리다.
우선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기록해야 한다. 메일, 회의록, 문서, 영상, 녹취 등 모든 자료를 데이터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행 상황과 결정 내용에 대해 증거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 두고 있으면 기술 유출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막상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도 소송까지 가지 않을 수 있고, 소송이 진행되어도 충분히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
투자 설명회(IR)나 기술 자료 등을 요청하면 먼저 NDA 체결을 요구하고 상대방에게 비밀 유지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스타트업의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적 약자인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NDA 체결을 요구하는 게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협업을 요구하는 상대방이 NDA 체결을 거부하면 전달하는 자료에 영업비밀 임을 명시해야 한다. 추후 문제가 생겼을 때 영업비밀임을 충분히 알렸다는 증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비밀 관리 부분도 신경 써야 한다. 아무리 NDA를 체결했다 해도 평소에 영업비밀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추후 분쟁이 생겼을 때 불리하다. 제도적, 인적, 물리적 측면에서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제도적 관리는 영업비밀의 범위를 정하고, 어떻게 보호할지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영업비밀을 표시하고 관리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엑셀 파일을 이용해 관리 대장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적 관리도 중요하다. 영업비밀 유출의 95%는 내부 인력에 의해 발생한다. 임직원의 영업비밀 유지 약정, 규정 등을 만들고 주기적인 보안 교육, 지식재산권 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물리적인 관리 부분은 실제 법원에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영업비밀 접근 권한 등을 확인한다.
김 변호사는 “사실 분쟁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며 “준비된 스타트업은 영업비밀 유출 사고가 발생해도 대기업이 부담을 느끼게 된다”고 강조했다.
기술 유출 대응법 ‘제도적 장치를 활용하라’
한국지식재산보호원 윤건주 변호사는 “기술 유출은 투자 유치 설명, 업무 협의, 하도급 거래 관계, 공동사업 및 공동 연구, 임직원 이직 등의 사례를 통해 발생한다”고 설명하며, 기술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스타트업이 이용할 수 있는 보호 제도에 대해 소개했다. 윤 변호사가 소개한 방법은 ▲원본증명제도 ▲디지털증거 보존 사업 ▲특별사법경찰 관리다.
원본증명제도는 영업비밀이 포함된 전자문서의 원본 여부를 증명하는 제도로, 부정 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시행되고 있다. 원본증명제도를 이용하면 원본 파일이 어떤 형태로 어느 시점부터 존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기술 유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침해된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해당 영업비밀이 누구에게 귀속되어 있는지 증명할 수 있다. 사법부에게 영업비밀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영업비밀을 일반 정보와 구분해서 관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근거다.
디지털증거 보존 사업은 업무용 전자기기의 디지털 기록을 안전하게 보존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원본과 동일한 사본을 생성해 기업이 소유한 저장장치나 서버에 제공하는 것으로, 사내 핵심 인력 퇴사 시 발생할 수 있는 기술 유출을 예방할 수 있다. 기술 유출 사건이 발생하면 원본을 그대로 보존한 디지털 기기를 조사하고, 어떤 정보를 어떻게 반출했는지 분석한다. 이는 신속한 민형사 사건 진행을 위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 디지털증거 보존 사업은 특허청을 통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특허청에 있는 특별사법경찰관리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기술 관련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인력으로 특별한 사건에 대해 수사를 지원하도록 만든 조직이다. 기술 유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특허청 특별사법경찰관리에 접수하면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선순환 생태계 구조가 필요하다
이날 행사에 연사로 나선 디캠프 김영덕 대표는 원활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해서는 선순환 생태계 구조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혁신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마음껏 사업을 영위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대기업은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정당한 가격에 거래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대기업은 혁신적인 스타트업의 제품과 아이디어에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라며 “당장의 수익이나 매출보다 개발비, 스타트업과의 신뢰, 업계 인지도 등 직간접적인 가치를 모두 생각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장의 수익만 생각하다 잘못된 선택을 하면 불명예와 부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얻게 된다는 설명이다. 가치와 미래를 보고 투자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
아울러 스타트업에는 “NDA 체결, 협업 기업에 대한 철저한 확인 등을 통해 기술 유출 위협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혁신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가 용인되면 혁신가는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혁신가가 사라지면 우리의 미래는 더 이상 밝지 않다”고 전했다. 또한 “혁신가의 가치를 인정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우리 산업 생태계 전체가 살아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 / IT동아 한만혁 (m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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