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현상변경 반대·경제강압 대응"…가치동맹 더 선명히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의 가치를 기반으로 인도·태평양을 비롯한 국제 무대에서 협력 보폭을 넓히겠다는 뜻을 분명히 내비쳤다.
이날 발표된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을 제목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이슈에 대한 언급을 가장 먼저 배치하고, 다음으로 '인도-태평양 전역에서의 협력 확대'에 별도 챕터를 할애했다.
지난해 5월 21일 바이든 대통령 방한 당시 발표된 공동성명이 확장억제 등 한미 양자 이슈를 먼저 다룬 것과는 다르다. 당시엔 인태 지역 협력에 대한 별도 챕터도 없었다.
물론 이번 회담에서 한미 양자간 확장억제 문제는 '워싱턴 선언'에서 별도로 다뤄진 탓도 있겠지만 한국이 높아진 국제적 위상과 국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미국의 기대가 반영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인도태평양을 필두로 전 세계에서 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과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핵심 동맹인 한국의 역할 확대는 미국에 강력한 우군이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지난해 첫 독자적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 '글로벌 중추국가론'(GPS) 등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 가치에 대한 위협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발신해 왔다.
윤 대통령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공급망의 분절과 교란, 식량과 에너지안보 문제 등으로 세계의 평화와 안전이 도전받고 위협받고 있다"며 "가치 동맹인 한미동맹이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성명엔 역내에서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의 각종 행위를 겨냥한 듯한 문구가 곳곳에 담겼다.
성명은 "양 정상은 역내 안보와 번영의 필수 요소로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며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 매립지역의 군사화 및 강압적 행위를 포함해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했다"고 명시했다.
중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과 매립지역 군사화 등을 언급한 대목은 남중국해 문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南沙>군도, 필리핀명 칼라얀 군도)의 7개 암초를 매립해 군사 요새화했다.
이 표현은 지난해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계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발표된 한미일 3국 정상 성명에서와 거의 동일하다. 한미일이 역내 상황에 대해 도출한 공동 인식이 한미 양자 간 성명에도 반영된 것이다.
다만 이번 한미 정상 성명은 대만해협에서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이런 언급을 하면서 한중 외교당국 간에 날카로운 공방전이 벌어진 바 있다. 이 때문에 대만해협에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표현이 회담 결과문서에도 들어갈지가 관심사였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인태전략을 공개했을 때 이것은 포용적이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실행 원칙이 있었다"며 "이 정도 선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훼손할 생각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이 역내에서 벌여 온 경제 관행에 대해서는 좀 더 선명히 날을 세우는 메시지가 담겼다.
한미 정상은 "경제적 강압과 외국기업과 관련된 불투명한 수단의 사용을 포함한 경제적 영향력의 유해한 활용에 대해 깊은 우려를 공유하고, 반대를 표명하며,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기 위해 유사입장국과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경제적 강압'은 미국이 통상 중국의 경제적 관행을 비판할 때 쓰는 표현이다. 가치를 함께하는 국가들 중심의 공급망 구축 등 연대에 한국이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동참해 나갈 것을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회담에서 최근 한일관계 개선을 크게 환영한 미국은 앞으로 한미일 3국 협력 강화 등을 통해 중국에 맞선 역내 동맹 네트워크를 다지는 데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요미우리신문은 내달 19~21일 사흘간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에 한미일 정부가 정상회담을 여는 방향으로 조율 중이라고 27일 보도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중 관계에 대한 도전은 늘어날 전망이어서 리스크 관리가 정부의 숙제가 될 수 있다.
정부는 그간 다소 위축됐던 한중간 외교적 교류를 한미정상회담 이후 다시 가동하려는 구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강한 견제성 발언에 한국 정부가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기조로 대응하면서 한중간에는 격한 언사가 오가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전날 중국 관변 매체가 '한국 정부는 미국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일본에 머리를 숙였다'고 보도하자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저급하고 무례한 주장"이라고 맞받기도 했다.
중국은 핵협의그룹(NCG) 설립 등 '워싱턴 선언'에 담긴 한미 확장억제 강화에도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이를 중국에 사전 설명한 것도 중국이 가질 경계감을 의식해서로 풀이된다.
한편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서도 지난해 5월 정상 성명보다 내용이 구체화했다는 평가다.
한미 정상은 "전력 생산과 송전을 확대하고 주요 기반시설을 재건하기 위한 것을 포함해 필수적인 정치, 안보, 인도적, 경제적 지원 제공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지만,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미국의 요구는 계속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명백한 국제법 위반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강력한 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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