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지키던 돌장승, 각양각색 석인상…이건희가 남긴 석조물
CCTV·충격 감지 센서 등 '철통 보안'…7월 전시서 일부 공개 예정
(청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총 9천797건, 2만1천693점.
2021년 4월 28일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 선대회장의 유족은 고인이 오랜 기간에 걸쳐 모은 수집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진경산수화 가운데 최고작으로 꼽히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부터 순백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백자 달항아리까지. 기증품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넓고 다양했다.
이 가운데 약 830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석조물이다.
기물을 받쳐서 얹어 놓는 좌대(座臺), 무덤 앞에 세워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던 문인석과 동자석 등 다양한 유물이 있다. 이들은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의 별도 시설에서 관리되고 있다.
지난 24일 찾은 청주 시내의 시설은 '어느 수집가'의 선택을 받은 다양한 석조문화재가 보관돼 있었다. 시설 내부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약 790㎡(240평) 규모의 시설 내부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유물이 빼곡히 차 있었다.
비교적 크기가 큰 석조물은 바닥에 놓여 있었고, 작은 유물은 벽면에 설치된 3단 보관대를 가득 채웠다. 나무 받침 위에 올려둔 유물은 행여나 부딪치거나 움직일까 단단히 고정해둔 채였다.
유물 중에서는 마을을 지켰던 돌장승인 벅수, 관복을 갖춰 입고 손을 가슴에 모은 듯한 문인석(文人石) 등이 많았다. 다소 이국적인 형상의 동물 석상이나 마치 거북이 모습을 닮은 석조물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각 유물에는 '전시 예정', '전시 보류' 등의 종이가 붙어 있어 분류 작업이 마무리됐음을 알 수 있었다.
전효수 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2021년 11월 박물관으로 옮긴 뒤 기본적인 조사·연구를 마치고 총 459건, 836점의 기증품을 박물관의 '표준유물관리시스템'에 등록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이건희 회장 기증품이 청주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사실 녹록지 않았다.
석조물은 특성상 크고 재질이 무거운 터라 이동이 쉽지 않다. 박물관 수장고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옮겨서 유물을 조사·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워낙 방대한 양의 유물이 있다 보니 한곳에 모아둘 공간도 마땅찮았다.
전 학예연구사는 "박물관 직원들이 유물을 등록하고 조사하고, 또 보존 처리까지 할 일이 많았지만 이처럼 많은 양의 석조물을 둘 공간이 없었다"며 "약 3개월 정도 청주시와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며 회상했다.
지금의 시설은 박물관에서도 멀지 않은 데다 크레인까지 설치돼 있어서 최적지였다.
박물관 측은 청주에서 석조물을 관리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며 여러 차례 관계자를 만나 설득했다고 한다.
전 학예연구사는 "시설 규모, 내부에 설치한 크레인, 박물관과의 거리 등을 모두 고려해도 잘 들어맞았다"며 "11월 4일부터 석조물을 옮기기 시작해서 24일에 끝났으니 20일 만에 속전속결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하루에 5t(톤) 트럭 5대씩 내려왔었죠. 목록과 비교해 유물을 확인하고, 정보가 잘못 기재돼 있는 것을 수정하고 그랬어요. 이제는 1년 반 정도 지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거의 다 압니다." (웃음)
박물관은 석조물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보안을 위해서다.
전 학예연구사는 "현재 폐쇄회로(CC)TV 12대를 설치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 중"이라며 "충격 감지 센서, 열 센서 등 보안 설비도 갖춰 전문 업체와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시대, 지역을 아우른 '이건희 컬렉션'의 특성상 석조 문화재도 활용 가치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유물 자문에 응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석조물', '정말 좋은 문화유산'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올해 7월 청주에서 열리는 순회 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도 다양한 석조물을 활용할 예정이다. 박물관 측은 내부 전시관뿐 아니라 야외 공간을 활용해 석조물 본연의 기능과 매력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 학예연구사는 작은 크기의 석인상을 눈여겨볼 만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석인상마다 기본적인 형태나 표현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 어떤 것은 눈, 코, 입을 새겨넣었다면 어떤 것은 도드라지게 부조(浮彫) 형태로 완성했다. 각각의 캐릭터가 달라서 그 자체로 매력"이라며 웃었다.
박물관은 2026년 4월까지 해당 시설을 이용하며 석조물을 보관할 예정이다.
각 유물은 국립박물관의 브랜드 정책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소속관에서 활용할 예정이다. 이미 제주에는 동자석 등 55점을 둔 상태다.
박물관 측은 "청주박물관이 석조문화재 활용에 있어 중심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 학예연구사는 "국립청주박물관은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인 김수근이 설계해 건축학도들의 성지 같은 곳"이라며 "이곳에 다양한 석조 문화재를 더하면 그 자체로 이건희, 김수근 두 거장의 만남일 것"이라고 말했다.
yes@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핵펀치' 잃은 58세 타이슨, 31세 연하 복서에게 판정패 | 연합뉴스
- 李, '징역형 집유' 선고 이튿날 집회서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 | 연합뉴스
- '오징어게임' 경비병으로 변신한 피겨 선수, 그랑프리 쇼트 2위 | 연합뉴스
- 학창 시절 후배 다치게 한 장난…성인 되어 형사처벌 부메랑 | 연합뉴스
- 주행기어 상태서 하차하던 60대, 차 문에 끼여 숨져 | 연합뉴스
- 아내와 다툰 이웃 반찬가게 사장 찾아가 흉기로 살해 시도 | 연합뉴스
- 페루서 독거미 320마리 밀반출하려다 20대 한국인 체포돼 | 연합뉴스
- 성폭력 재판 와중에 또 악질 성범죄…변명 일관한 20대 중형 | 연합뉴스
- 의문의 진동소리…옛날 가방 속 휴대폰 공기계 적발된 수험생 | 연합뉴스
- 김준수 협박 금품 갈취한 아프리카TV 여성 BJ 구속 송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