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문화동맹 70주년, 한국의 영화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
미국은 일찍부터 영화를 산업화했다. 거대 스튜디오가 지배하는 시스템이 영화사 초기에 자리 잡았고, 스타 시스템을 활용해 대중에 어필했으며, 스튜디오 중심으로 극장 네트워크를 발전시켰다.
어쩌면 메카닉 아트의 원초적인 기질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분야가 미국의 영화산업일 것이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과 미국의 영화시장에 대한 관계를 고찰한다. 미국의 영화시장에 대한 이해는 한국 영화계에 닥친 위기의 분위기를 벗어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 최근 미국 영화 시장의 동향과 특징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이 올해로 95회를 맞았다. 오랫동안 아카데미는 완벽한 헤어스타일과 멋진 의상을 입은 배우와 관계자들을 레드카펫 위에 세웠다.
<뉴욕 타임스>의 마이클 슐만은 이런 말을 적은 적이 있다. “미국에는 왕족이 없다. 대신 오스카가 있다.” 이 말은 미국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위상을 설명하는 동시에, 미국 대중문화의 중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그해의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는 최신 미국 영화 시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할리우드의 관계자들은 이를 ‘미국 영화산업이 자체적으로 고안한 가장 큰 판촉 행사’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이 상의 수상 여부에 따라 기술적 개런티가 다르게 조정된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들린다. 이를 부정적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실제로 이런 큰 행사는 산업의 공명관 역할을 한다.
올해의 수상작 리스트를 살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3)가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7개 부문의 수상을 휩쓸었고, <더 웨일>(2023)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는 3편이 나란히 6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가 국제영화상을 비롯한 4개 부문을,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2022)가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그리고 <엘리펀트 위스퍼러>(2022)가 단편 다큐멘터리상을 각각 차지했다.
넷플릭스는 올해에도 여전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영화관에서 개봉한 영화들에 대한 지지를 잊지 않고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더 웨일>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둘 다 영화관 개봉작이고, 독립영화 배급사 A24가 담당한 작품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어느새 영화관에서 영화를 개봉하는 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왔다. 온라인 플랫폼의 위세가 그 정도로 커졌다. 온라인 서비스 부문에서도 미국은 업계의 선두를 달린다.
영화주간지 <버라이어티>는 2022년에 내놓은 보고서 <콘텐츠의 미래>를 발간하며 “객관적으로 환경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혁신”이라고 머리말을 적었다.
지금은 누구나 광범위한 온라인 영화 카탈로그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극장에 가는 일은 귀찮고 어쩌면 불합리해 보인다. 이 변화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버라이어티>의 사장 앤드류 발렌슈타인은 AI, 메타버스, 웹3 모드 등 기술적인 센세이션이 업계를 더 흔들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면서 ‘절제된 접근법’으로 이를 검증해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통합은 받아들이되 과제를 전략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들린다.
사실 미국 영화산업의 기반에는 한 가지 거대한 전제가 있다. 다름 아닌 미국이 완성한 영화산업은 기본적으로 ‘고정 비용 산업’으로 규정된다는 점이다.
널리 알려졌듯 ‘할리우드’라는 단어는 ‘미국 영화산업’과 동의어로 여겨진다. 처음에는 지리적인 상황 전체를 뜻하는 용어였지만, 산업 시스템의 규격화가 이루어지며 영화미학과 이데올로기 전부를 섭렵하는 단어가 됐다.
현재 우리는 스타와 장르를 기반으로 생산된 영화 유통과 개발의 수직적 통합 시스템 전체를 일컬어 할리우드라고 부른다.
할리우드에서 프로덕션은 표준화된다. 상품으로서 영화제작이 대량생산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므로 상수가 발생한다. 행정 인프라와 배우들, 극장 네트워크가 변하지 않는 고정 요소들이다.
흥미로운 건 여기에 배우가 속한다는 사실이다. 한때 영화가 스타덤의 원천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주연배우는 완벽하게 수익성에 대한 조사를 기반으로 관리된다.
스타에 대한 문제는 영화사가 그를 계약적으로 ‘어떻게 수감하는지’가 핵심이다. 만일 프로로서 배우가 관리에 실패하고 캐릭터를 훼손시킨다면, 물리적인 피해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종종 프로덕션은 스스로가 스타의 자리를 대신해서 그 위험을 줄이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제리 브룩하이머 같은 제작자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스타덤의 기능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상업영화는 ‘대중’을 향한 욕망을 목표로 디자인된다. 거대 스튜디오가 형성한 기본 틀을 바탕으로, 다양한 재료들을 투입해서 다른 결과물들을 도출시킨다.
따라서 스튜디오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변수를 투입시키느냐에 있다. 할리우드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맥락 하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한때 할리우드가 ‘꿈의 공장’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제작에 관한 모든 것을 내부에서 스스로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들은 국제적인 교류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부터 차츰 시작되었다. 할리우드 스스로가 자신들의 지리적 집중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국경이 개방되고 통신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일부 영화들이 경제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캘리포니아 바깥에서 촬영되기 시작했다. 그 수는 점차 늘어났다.
실제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이 서울에서 촬영되는 과정과,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2022)가 부산에서 촬영되는 과정을 우리는 직접 목격했다.
호주에서 촬영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의 상징적인 성공은 단지 그 시작점이었을 따름이다. 할리우드는 현재 다양한 프로덕션과의 상호작용하며 세계화를 이루고 있다.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은 영화제작이 지리적 군집화 경향을 가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가 할리우드에서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할리우드가 국제화를 진행하려면 “특정한 결정은 중앙으로 모일 것”이란 점을 그는 강조한다.
그의 말은 최근 미국 영화산업의 형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실제로 할리우드 영화는 생산의 분권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종의 ‘디자인 센터’로서, 시스템의 중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를 할리우드 영화제작의 국제화라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벤 골드스미스가 지적한 글로벌 할리우드(Global Hollywood)로의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인 듯 보인다.
◆ 한국에서 흥행한, 주목할 만한 미국 영화들
해외시장에서 미국 영화의 매출 증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독립영화 성격의 저예산 영화 개발을 위해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를테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서치라이트 픽처스’를, 유니버설 픽처스가 ‘포커스 피처스’를,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파라마운트 밴티지’를 세운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메이저가 아트하우스 영화 등의 특수 분야에 투자하는 사례를 ‘스페셜티 디비전’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와 비교해서 영화사 A24의 경우처럼, 기존의 거대 스튜디오 산하가 아닌 독립영화 레이블들을 ‘미니-메이저 스튜디오’라고 칭한다.
그러고 보니 올해 아카데미 남녀주연상을 휩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더 웨일>은 모두 A24의 배급작이다. 확실히 A24는 최근 미국 영화 흥행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
<문라이트>(2017),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 <미드소마>(2019), <퍼스트 카우>(2020) 등 매년 이 작은 영화사에서 주목할 만한 중요한 작품들이 배출되었다. 말하자면 신흥 예술영화의 강자로써 미국의 몇몇 영화사들은 고정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 같다.
최근 한국에서 주목하는 미국 영화의 사례는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메이저 스튜디오의 스페셜티 디비전이나 미니-메이저가 제작한 아트하우스 영화들이 국내의 관객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작품들은 매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경쟁하거나, 국내외의 영화잡지에서 ‘올해의 영화’ 후보에 오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독립영화의 주연배우 스티븐 연의 활동도 또 다른 사례가 된다.
봉준호나 이창동의 영화에서 활약하며 국내 관객들의 눈에 들기 시작한 이 신흥 스타의 움직임은, <미나리>(2020)의 주연으로 미국 독립영화계의 얼굴이 됐다. 그러고 보니 <미나리> 역시 A24의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113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국내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2019년 발간된 골든글로브어워드의 리포트가 지적하듯 “규모에 비해 한국은 흥행 수익 면에서 4번째로 큰 영화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는 ‘1인당 영화 관람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한국을 지목하면서, 종종 블록버스터의 월드프리미어 장소로 우리나라를 택하곤 하였다.
코로나 이전에 개봉했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등의 영화들은 1000만 관객을 훨씬 웃도는 스코어를 기록하며 글로벌 흥행의 바로미터가 됐다.
코로나 이후 관객 수는 급격하게 줄었지만, 이는 국내만의 상황이 아니다. <블랙 위도우>(2021)가 300만에 미치지 못하고, <이터널스>(2021)가 간신히 300만 고지를 넘긴 것은 이전과 비교할 때 낮은 수치처럼 느껴지지만, 확실히 지난 3년간 전 세계 모든 업계는 꽁꽁 얼어 있었다.
이와 비교해서 2021년에 개봉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의 750만 명 흥행성과는 국내 시장이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
여전히 할리우드는 국내 시장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3억 4000만 달러가 투자된 대작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2023)는 올해 5월 전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개봉한다.
최근 미국에서 생산되는 영화들은 이처럼 두 가지의 극단적인 방식으로 나뉘는 듯 보인다. 만일 할리우드가 서로 질이 다른 영화 제작 체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면, 국내 시장은 이들 모두를 수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대중성’의 영역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할리우드가 지향하는 대중성의 개념은 정확히 말해 대중적인 계층의 생산물을 뜻하지 않는다. 그리고 반드시 대중적인 계층을 위해 의도되지도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힌트를 찾아야 한다. 현재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을 쫓는 것은 단기간의 방법일 수 있겠지만,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플랫폼 자체의 변동은 민감한 이슈이지만, 특수성이 낳은 문제와 직접 연관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영상물 자체를 감싸는 소프트웨어의 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미국 영화가 국내에서 소비되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층위는 도움이 된다.
실제로 국내 관객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무겁게, 미국 독립영화시장을 관찰하고 있다. 10년 전 예술영화의 주류가 프랑스를 위주로 한 유럽 영화시장이었다면, 현재 그 판도는 바뀐 듯 보인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국내 영화시장의 중요도가 높아진 현재 상황에서, 미국이 그저 한국을 판매의 장으로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 미국에서 흥행한, 주목할 만한 한국 영화들
미국에서 한국 영화는 봉준호와 박찬욱의 이름으로 대변된다. 하지만 이들 이전에도 많은 영화감독들이 미국 영화 시장에서 공개되었다.
대표적으로 <여고괴담>(1998)의 박기형, <쉬리>(1999)의 강제규, <박하사탕>(2000)의 이창동, <섬>(2000)의 김기덕, <장화홍련>(2003) 김지운, <지구를 지켜라>(2003)의 장준환 등을 소개할 수 있다.
이들은 199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의 대표자로 꼽히며, 2000년대 초기까지 한국 영화 부흥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한국의 주요 감독들이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할 때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고전영화 한 편이 있다. 바로 김기영의 <하녀>(1960)다.
봉준호가 <기생충>(2019)의 수상 당시에 이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후, 미국에서 <하녀>는 35mm로 상영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한국 영화의 예술적인 역사를 알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사실 <기생충>이야 말로 진정한 ‘월드필름’의 대표일 것이다. 이 영화는 미국 누적 흥행수익 5천 300만 달러를 달성하며, 미국 내에 개봉했던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 3위의 흥행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2004),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1994)의 뒤를 잇는 놀라운 기록이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을 맡은 NEON의 유통 책임자 엘리사 페더로프는 이 영화가 처음에는 대규모 ‘한인 커뮤니티’를 표적으로 관객 설정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예술영화의 주류 관객층’으로 관람 규모가 확대되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봉준호의 열정적인 팬층은 ‘봉하이브(#Bonghive)’라고 스스로를 칭하며 각종 소셜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생충>의 흥행 과정에서, 이 작품이 심형래의 <디 워>(2007)가 세운 북미 1000만 달러 이상의 흥행기록을 깨트렸다는 점은 몇 차례 보도된 적 있다.
이 비교는 실제로 미국 내에서 한국 영화 흥행수치가 <기생충>만큼 크게 소용돌이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럼에도 미국 흥행 200만 달러 이상을 기록한 작품의 수는 적지 않은 편이다.
해당 작품을 차례로 언급하면, 박찬욱의 <아가씨>(2016)가 200만 달러, 윤제균의 <국제시장>(2014)이 230만 달러,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2003)이 238만 달러, 김한민의 <명량>(2014)이 258만 달러, 봉준호의 <설국열차>가 453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높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이 목록에 BTS 주연의 콘서트 실황 다큐멘터리 2편을 추가할 수 있다.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2018)와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2019)는 각각 420만 달러, 350만 달러 수익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 흥행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 영화는 특수한 상황에서 성장했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한국 영화 상영 비율을 규제하는 ‘스크린 쿼터제’의 영향 아래에서 우리 영화가 발전한 것은 세계영화계가 주목하는 한국 영화계만의 특수성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와 다르게 우리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영화시장에 개입했다.
특히 영화진흥위원회가 주관하는 온라인비즈니스센터(KoBiz)는 해외진출을 공식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이 유튜브를 통해 고전영화의 유산을 꾸준히 소개한 것도 훌륭한 작업이었다.
해외의 한국 영화팬들은 이러한 국내의 상황을 비교적 잘 이해한다. 누구나 온라인에서 영어자막이 달린 고전 한국 영화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척 즐겁게 받아들인다.
K-시네마, K-드라마, K-뮤직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대중문화는 다양성 추구에 대한 열망을 기반으로 차츰 더 성장하는 중이다. 특히 영화의 경우, 넷플릭스가 일반화되며 미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2022년 작성된 <마리끌레르>의 기사는 한국 드라마 콘텐츠에 빠져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영화 베스트’ 등의 목록을 추천하고 있다. 이런 유의 기사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실제로 다양한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은 시청자들의 시청 관습에 대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연쇄적으로 작품을 추천한다. 한국 영화 한 편이 다른 한국 영화의 시청을 이끄는 식으로, 우리영화의 목록은 점차 더 넓어진다.
그런 면에서 <기생충>의 존재는 중요하다. 게다가 <오징어 게임>(2021)은 한국의 영상 콘텐츠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의 흥행 이후에 황동혁 감독의 또 다른 영화인 <도가니>(2011)를 자신들의 플랫폼에 올려놓았다.
이후 <도가니>의 주인공 공유가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 <부산행>(2016)이 미국 관객들에게 관심을 받는 식으로, 점점 더 다양하게 한국 콘텐츠에 대한 인식은 넓어졌다. 봉준호의 <옥자>(2018), 송강호의 <마약왕>(2018) 등의 영화들이 이 목록을 지속적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확실히 미국 시장에서 소비되는 한국 영화는 아시아 커뮤니티 위주이거나 일부의 스타 감독들, 그리고 배우들 중심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냥의 시간>(2020)이나 <승리호>(2021)처럼 미국이 선호하는 장르영화의 색채를 필두로 시장에 진입하는 경우가 가끔 보인다.
게다가 <사냥의 시간>에는 <기생충>의 슈퍼 루키인 최우식이 등장하고 있으며, <승리호>는 마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처럼 익숙한 미국식 엔터테인먼트의 분위기를 풍긴다.
일석이조의 다양성이야말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한데 묶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현재 한국 영화가 다층적으로 소비되는 것은 예술적인 만족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랜 축적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를 필두로 다양한 아시아 영화가 미국시장에서 기존의 편견을 지우고 있다는 점은 중요해 보인다. 단언컨대 미국 관객은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 최소한 한국 영화의 존재를 잊은 채 나아가긴 어려울 것이다.
◆ 한국 영화의 성장 가능성과 나아가야 할 길
2023년 2월에 발행된 스태티스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으로 대표되는 북미의 영화산업은 아시아나 유럽에 월등히 앞서는 수치로 영화티켓 판매량이 세계 2위를 차지한다(1위는 인도로, 국내 시장이 유별나게 튼튼한 인도의 상황은 예외로 한다).
그리고 2022년을 기준으로 역사상 가장 비싼 영화 제작비는 여전히 미국의 블록버스터들이 장악하고 있다. 영화산업의 측면에서 미국은 세계 최고의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어느 나라도 할리우드가 확립한 산업적 헤게모니를 깨지 못했다.
한편, 한국 영화 시장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국가 주도로 산업이 보호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CJ로 대표되는 재벌이 영화의 세계화를 이끌었다는 점이 굉장히 특별하게 여겨진다.
199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에서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국내 영화산업은 제도나 자본에 의해 발현되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위상을 획득하는 데 있어 대규모 자본과 규제된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문화 선진국이나 문화 신흥국들은 영화산업에 대량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인지하고 있다.
어쩌면 이 방식이야말로 소프트 파워의 무기로서 영화에 대한 가장 합당한 지원인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에게 쇼케이스는 마련되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2020년 골든글로브에서 봉준호는 ‘1인치의 장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어 놓은 적이 있다. 이는 ‘자막’에 대한 언급으로, 실제로 대다수 미국인들은 영어 자막을 읽으면서 영화를 감상하지 않는다.
<기생충>의 사례가 기존의 관습 모두를 무너뜨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영화들이 기존 미국 시장에서 아예 소비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리메이크’를 통해서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의 영화를 이미 다양하게 극장에서 소비해왔다. 영화의 리메이크는 미국에서 딱히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 아니다. 그만큼 할리우드는 전 세계 영화들을 자주 복제해 왔다.
따지고 보면 예전에는 유럽 영화의 리메이크가 잦았지만, 최근에는 아시아 영화들이 주로 그 대상이 된다는 점이 다르다.
한국 영화의 경우 <시월애>(2000)를 시작으로 <올드보이>(2003), <지구를 지켜라>를 거쳐 최근의 <악인전>(2019)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국 영화의 판권이 이미 할리우드에 판매되었다.
할리우드는 이들 영화를 리메이크할 때 수많은 변형을 가한다. 모티프를 제외하고 전부를 바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프로듀서 어빙 탈버그는 “영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즉, 리메이크를 통한 영화 판매가 진정한 한국 영화 성과의 지표가 되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봉준호나 박찬욱 등 한국의 거장들이 현지에서 해외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은 반갑다.
이들의 성공적인 미국 활동이야말로 진정한 한국 영화 시대의 표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영화의 관점에서, 한국의 새로운 드니 빌뇌브가 탄생했다는 뉴스를 읽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웰메이드 아트하우스 영화의 사례를 언급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A24의 활동이 가리키고 있고, <기생충>이 위치한 바로 그 자리 말이다.
어쩌면 플랫폼의 변동에 휩싸인 최근 영화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원리적인 지적은 헛된 야망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으로 HBO의 성공 사례를 강조하고 싶다.
데이비드 체이스의 <소프라노스>(1999) 시리즈, 혹은 캐리 후쿠나가의 <트루 디텍티브>(2014)와 같은 HBO 드라마 시리즈는 언뜻 평범한 TV 시리즈의 성격을 따르지 않는 듯 느껴진다. 차라리 장르적이고, 혹은 리듬감 있다. 이들 시리즈를 영화처럼 감상하는 시청자는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콘텐츠가 표현하는 영화적 클리셰와 대담하고 순수한 이미지의 표현은 한 마디로 근원적이다. 예술을 향한 직설적인 표현이 HBO 드라마 제작자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즉, 그들이 차별화를 위해 택했던 것은 예술로의 회귀였다. TV 드라마가 쉽게 택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다.
지금 한국 영화계가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비책이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본질의 투명함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적 대중성이 ‘많은 관객’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님은 수많은 할리우드의 사례가 일깨워 주었다.
영화산업은 다양화되었고, 세계를 향해 열리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가 가진 막강한 힘은 스토리텔러로서의 자질,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고고한 태도를 통해 출발한다.
우리는 봉준호 영화의 베이직한 태도를 사랑하고, 박찬욱 영화의 고집스러운 손길을 추앙한다. 진화하고 변화하고 나이들어 가는 매체의 진동 속에서, 가장 근원적인 시네마의 매혹을 떠올린다.
결국은 예술로서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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