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으로 15만부... 역주행 ‘구의 증명’, 저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최진영 인터뷰]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4. 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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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쓴 이상문학상 수상작가 최진영 인터뷰
최진영 소설가 [사진=Choemore]
아무도 그 이유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는, 기이한 ‘사건’이 최근 서점가에서 벌어졌다. 출간된 지 한참 지난 177쪽짜리 짧은 소설이 차트를 역주행하더니 베스트셀러 10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

2015년 첫 출간 후 2년차부터 한해 2000부쯤 나가던 이 소설은 2년 전 느닷없이 한해 판매량 6000부를 넘어섰다. 그러더니 올해 1분기엔 5만부가 팔려나갔다. 현재까지 총 판매량은 15만부다. 1만부만 찍어도 베스트셀러로 올라서는 오늘날의 출판시장에서 이런 이변이 또 있을까.

주인공은 소설 ‘구의 증명’을 쓴 최진영 작가(42). 제주에 거주하는 그를 27일 서면으로 만났다.

‘구의 증명’ 초판
8년전 출간 후 2020년부터 기현상
올해에만 5만부···총 15만부 팔려
소설 ‘구의 증명’을 검색하면 한 단어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다름 아닌 ‘엽기’다.

한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구의 증명’은 설정만 놓고 보면 괴이하다. 소설 속 인물은 연인인 ‘구’와 ‘담’으로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을 함께 했고, 첫경험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동행했다. 둘은 서로에게 과거였고, 현재였으며, 또 미래였다.

사채업자에게 거액의 빚을 진 구는 쫓기고 또 쫓긴다. 그러다 호스트바 웨이터로 내몰린다. 도망치던 구는 멍과 피가 가득한 얼굴로 발견된다. 숨이 멎은 채.

담은 구의 시체를 깨끗하게 닦으며 결심한다. 사랑하는 구를 땅에 묻을 수도, 불에 태울 수도 없다고. 담은 죽은 구의 손톱을, 머리카락을 삼키더니 급기야 살점을 조금씩 먹기 시작한다.

최진영 소설가 [사진=Choemore]
“연인의 죽음까지 사랑하고 애도하는 방법으로 ‘먹는다’를 떠올렸어요. 먹는다는 건 사랑의 깊이와 절대성을 보여주는 은유에 가까워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면 저의 죽음과 비교할 수 없이 슬펐고, 정신이 사라지고 영혼이 떠난 자리에선 연인의 시체라도 너무 소중하니까요. 그런 마음이라면 구의 시체를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울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가상의 설정을 통해 인간의 이해를 도모하는 언어활동이 문학이라면 ‘구의 증명’은 몸의 영원성, 애도의 가능성을 질문하고 있다.

식인 행위는 야만적인 식장(食葬)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소설에서 식인 행위는 현대에선 사회가 개인을 대하는 방식이 더 야만적임을 증명하는 장치가 된다. ‘구의 증명’엔 평생을 약자였던 구의 등에 박힌 고통의 편린이 촘촘하다. 그래서 담의 이상행동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구는 죽어서도 빚을 갚아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담은 구를 내줄 수 없다. 현대의 야만과 식인의 야만, 작가는 그 사이에서 기억과 애도를 질문한다.

“현대사회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식인보다 야만적이고 잔인하지 않을까요. 사람의 가치에 값을 매기고, 생명이나 죽음을 돈으로 환산하고 가난 자체를 약점이나 잘못으로 여기는 가치관이나 시스템이 식인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질문도 ‘구의 증명’에 담고자 했습니다. ”

몸·애도에 관한 괴이한 상상력
작년말 이상문학상 수상 효과도
‘나의 해방일지’ 구씨 떠올리기도
‘구의 증명’은 최 작가가 30대 중반에 쓴 소설이다. 한 편의 소설을 쓴 뒤 소설가는 그 세계를 떠나고, 비로소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과거의 글이 뒤늦게 호응받는 기분은 어떨까.

“저도 처음엔 어리둥절했습니다. ‘이제 와서? 어째서?’ 과거 별빛이 현재 제 눈에 담기는 것처럼, 독자의 눈에 제 글이 담기기까지 이만큼 시간이 필요했나 생각도 들어요. ‘구의 증명’은 좀 더 멀리 있는 별이었나 보다, 이런 생각이에요.”

‘구의 증명’이 작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와 염미정의 사랑 관계를 떠올리게 해 역주행했다는 설도 있다. 구씨가 ‘호빠’에서 일했던 경력도 ‘구의 증명’의 구의 행적과 겹친다. 최 작가가 작년 12월 이상문학상을 받아 독보적인 여성 작가로 발돋움하면서 여성 독자들의 절대적인 호응을 얻은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책이 얇고 8000원이란 점도 한몫을 했다.

‘구의 증명’ 리커버판
작년 말 최진영 작가는 단편 ‘홈 스위트 홈’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 만해문학상에 이어 이상문학상을 받으면서 지금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통한다.

그의 이상문학상 수상소감 한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된다. ‘나는 나를 뿌리치려고 오랫동안 글을 썼다.’

“어릴 땐 왜 글을 쓰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제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거든요. 책을 내고 작가로 살다보니 소설가가 된 이유에 관한 질문을 받았어요. 제 안에 먼저 답이 있던 게 아니라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깨달은 것들이 있습니다. ‘아, 나는 글쓰기를 통해 많은 것을 해소했구나,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더 많이 방황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요. 글을 쓸 땐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여러 형태의 사랑에 대해 써온 최 작가의 다음 ‘사랑 이야기’는 기존의 소설과 얼마나 같고 다를까.

“저는 여전히 삶, 죽음, 애도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걸 모두 아우르는 단어가 ‘사랑’인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의 사랑도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로테스크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이 사랑인가 의심할 수도 있을 거고요. 저는 언제나 그 의심의 경계선에서 한쪽만을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그는 사랑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소설 쓰기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소설에서, 저는 그 가치를 지키고 싶습니다.”

최진영 소설가 [사진=Choemore]
‘구의 증명’ 최진영 소설가 서면 인터뷰 전문(全文)
1. 지금 선생님께서 계신 곳의 풍경은 어떤 곳인지요. 제주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또 어제는 어떤 책을 읽으셨는지 등등. 근황이 궁금합니다.

저는 지금 제주의 한림읍에 살고 있습니다. 제 작업실 창밖으로는 한림항과 제주의 서쪽 바다가 보입니다. 한림읍은 이 근처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어서 주택도 많이 보이고요.

제주에 내려왔지만 제주를 마음껏 즐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써야할 글이 많아서, 좀처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 방에서 글을 쓰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오히려 제주에 여행을 올 때 제주를 더 많이 누렸던 것 같아요. 제주에 살면 바다에 가기 위해 휴가를 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도 휴가를 내야 오름이라도 한 번 갈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고, 하늘이 아주 넓게 보이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책을 짬날 때 틈틈이 읽고 있어요. 지금 제 책상에는 앤 카슨 <플로트>, <제14회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아닐 세스 <내가 된다는 것> 캐슬린 스튜어트 <투명한 힘> 아니 에르노 <젊은 남자> 등이 있는데요, 생각날 때마다 펼쳐보고는 있지만 그 어떤 책도 완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당장 써야할 글이 있어서 독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어요. 책을 마음껏 읽고 싶습니다.

2. 소설 ‘구의 증명’ 판매량이 올해까지 15만부를 넘었고, 그중 상당수가 출판 초기가 아닌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상문학상 수상으로 8년 전의 소설이 다시 재조명되는 듯도 하고요. 8년 전의 소설이 다시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요. 또 ‘구의 증명’이 이른바 ‘역주행’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대략 2020년부터 판매량이 조금씩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이제 와서 어째서? 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저는 구와 담의 세계를 오래 전에 떠났기 때문에... 하지만 생각해보면 출간 과정 자체가, 과거에 완성한 글을 책으로 만들어 독자와 만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책이 독자를 만나는 순간 저는 그 책과 작별하는 의미도 있어서요. 마치 과거의 별빛이 현재 제 눈에 담기는 것처럼, 제가 과거에 쓴 글을 독자는 현재의 글처럼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거든요. 그래서 아, <구의 증명>은 좀 더 멀리 있는 별이었나 보다, 독자의 눈에 닿기까지 이만큼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생각도 들었습니다.

<구의 증명>은 제가 삼십대 중반에 쓴 소설입니다. 시간이 흘러 그 소설이 사랑을 받으니, 한편으로는 그때 그 소설을 썼던 과거의 나에게...... 고맙다는 말보다는...... ‘너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너는 잘하고 있었던 거야,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야’라는 눈빛을 전해주고 싶어요. <구의 증명>을 알아봐주고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책에 담긴 별빛이 여러분에게 미약하나마 위로와 사랑으로 닿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베스트셀러가 된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입소문의 영향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랑’이야기니까요. 사랑이 오염되고 하찮아지고, 사랑을 불신하고 계산하는 이 세상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사랑을 추구하고 그리워하는구나, 사랑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하는구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3. ‘구의 증명’을 처음 착상, 착안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죽은 연인의 살점’을 먹는다는 설정을 생각하신 ‘처음’이 궁급합니다.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예전부터 연인의 살을 똑똑 떼어 먹는 상상을 하는 편이었어요. 스스로 엽기적인 상상이라 생각하진 못했고, 그만큼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저에게는 사랑스러운 상상에 가까웠습니다. 또한 오래 전부터 저는 ‘죽음’에 대해 자주, 깊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정신’ ‘육체’ ‘몸’ ‘영혼’ 등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밖에 없고요. 제 시체까지 제가 처리하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이 세상에는 정말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았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면 저의 죽음과 비교할 수 없이 슬펐고, 정신이 사라지고 영혼이 떠난 연인의 시체라도 저에게는 너무 소중했습니다. 그래서 연인의 시체를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울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시체 또한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오랫동안 거듭하다보니 ‘구의 증명’이란 소설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이후에도 계속 그것들에 생각했고, 이번에 이상문학상을 받은 ‘홈 스위트 홈’에도 그 고민은 얼마간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정상적인 장례절차를 거치지 않고 가장 소중했던 사람의 살점을 먹는다는 건 담에게는 애도의 행위로 이해됩니다. 담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의 육신을 불태우거나 땅에 묻는 게 더 ‘엽기적’이로 공포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담이 구의 살점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애도’의 측면에서, 선생님께 직접 그 의미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앞의 답변에서 연결되는 지점인데요, ‘시체는 나일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예전에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어요. 영혼과 육체를 분리할 수 없다고. 그런 면에서 연인의 죽음까지 사랑하고 애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먹는다’를 떠올렸는데, 소설을 쓸 때 저에게 그것은 얼마간의 비유였습니다. 손톱, 머리카락, 조금의 살점을 먹을 수는 있겠지만 몸 전부를 먹을 수는 없겠지요. ‘먹는다’는 것은 사랑의 깊이와 절대성을 보여주는 은유에 가깝습니다. 또한 소설에도 나타나지만, 저는 현대 사회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식인보다 야만적이고 잔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가치에 값을 매기고, 생명이나 죽음을 돈으로 환산하고, 사람보다 돈을 우위에 두고, 돈이 많으면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고, 가난 자체를 약점이나 잘못으로 여기는 가치관이나 시스템이 식인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5. 책을 읽는 내내 구와 담이라는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는 ‘球’로 읽히기 때문인지 어디론가 흘러가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고 담은 ‘壁’의 의미로 읽혀서인지 그 자리에 멈춰서서 안과 밖을 나누고, 그 안에 무언가(구)를 보호하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건 독자로서의 인상인데, 선생님께서 구와 담의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해석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저는 이름에 큰 뜻을 담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물과 이름이 어울리는 게 좋아서, 여러 이름을 붙여보다가 ‘구’는 ‘구’가 되었고, ‘담’은 ‘담’이 되었습니다. 구야, 담아, 라고 조그맣게 속삭일 때와 글로 쓸 때 모두 무리가 없었고 제 마음에 울림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름 전부를 말하지 않고 마지막 글자만 부르기도 하잖아요. ‘진영아’라고 하지 않고 ‘영아’라고 부르듯. 구와 담의 이름에도 그런 여지를 두었습니다. 완전한 이름이 아니라, 구와 담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부를 수도 있는 여지.

6. 연애 관계에서 있어서 몸, 신체는 무엇일까요. 그건 대상이면서 도구이기도 하고 또 때로 목적이기도 한 것 같아요. 담에게 구의 몸은 무엇이었을까요.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또한 앞의 답변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 소설을 쓸 때 저는 육체와 영혼을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고, 연인의 정신이나 육체 중 하나만을 사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눈빛은 영혼일까요, 육체일까요. 말투는, 숨소리는, 고유의 분위기는, 잠든 모습은, 기억은 영혼과 육체 중 무엇에 해당될까요. 담에게 구의 몸은 구 자체이고 영혼이며, 담의 사랑인 것 같아요. 포기할 수 없고, 세상의 온갖 나쁜 것으로부터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사랑.

7. 선생님의 몇 년 전 릿터 인터뷰를 살펴보니 실제하는 소심한 자아로서의 ‘인간 최진영’과 글을 쓸 때의 또 다른 자아로서의 ‘소설가 최진영’의 완충 작용으로 글이 완성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 모습이 모든 작가들의 마음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소설가, 작가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작가란...... 하나의 직업이면서,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평범한 일상과 가치들을 다른 사람들보다는 한 번 더 살펴보고 곱씹어볼 수 있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제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여태 제가 말한 ‘죽음’ ‘삶’ ‘기억’ ‘사랑’ ‘영혼’ ‘현대사회’ 등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집요하고 깊게, 지속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면서 사유하는 사람입니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 사유하는 시간도 중요하고요. 글을 쓰면서 깨우친 일상의 소중함이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글을 쓰면서 상황과 인물을 더 천천히 깊게 들여다보고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기 때문일 거예요. 이를테면 저는 ‘구의 증명’을 쓰면서 연인의 죽음을 깊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냈으므로 더욱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8. 이번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수상소감을 보면서 독자로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느꼈습니다. ‘소설을 쓰고 나면 나는 쓰기 이전과 미세하게 다른 사람이 된다’는 부분도 와 닿았고, 또 ‘나는 나와 싸우려고 매일 밤 글을 썼다’ ‘나는 나를 뿌리치려고 오랫동안 글을 썼다’고도 하셨어요. ‘소설가 최진영’에게 소설을 쓰는 행위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어릴 때는 왜 글을 쓰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글쓰기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지조차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그저 그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썼습니다. 책을 내고 작가로 살다보니 질문을 듣게 되었어요. ‘소설가가 된 이유는?’ ‘글을 쓰는 이유는?’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나?’ 등등의 질문이요. 제 안에 먼저 답이 있었던 게 아니라,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뒤늦게 깨달은 것들이 있습니다. 아, 나는 글쓰기를 통해 많은 것을 해소했구나.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더 많이 방황하고 나를 더 지독하게 미워했을 것 같다는 깨달음이요. 그래서인지 글을 쓰면 쓸수록 글쓰기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글은 보이지 않는 경계선처럼, 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그저 생각으로 품고 있을 때와 그 생각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척 다른 차원입니다. 생각을 문장으로 표현할 때 저는 미처 몰랐던 저의 진심을 알아채기도 합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상황을 한 번 더 곱씹고 살펴보게 됩니다. 감춰진 여러 여지에 대해서 상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마법처럼, 제가 절대 생각해본 적 없는 문장이 인물의 입을 통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이 일상의 저를 보살핍니다. 글을 쓸 때만큼은, 저는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아니,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 노력의 과정 자체가 글쓰기인 것도 같고요.

9.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도 사랑에 관해 쓸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고, 그 말씀은 지속돼 왔다고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쓰고 계신 다음 작품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여전히 ‘삶’ ‘죽음’ ‘애도’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그것을 모두 아우르는 단어가 ‘사랑’인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의 사랑도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로테스크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이 사랑인가 의심할 수도 있을 거고요. 저는 언제나 그 의심의 경계선에서 한 쪽만을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소설에서, 저는 그 가치를 지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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