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 장래희망 장기하

서울문화사 2023. 4. 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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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건지 말 건지 하다 그냥 하는 사람. 공연하려고 노래 만드는 사람. 여전히 별일 없이 사는 사람. 예나 지금이나 장기하는 장기하.
반소매 셔츠는 로에베, 바지는 모이프,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수트 셋업은 더발론, 셔츠는 폴 스미스, 신발은 킨치 제품.

애주가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도시 괴담처럼 “장기하, 36시간 동안 상대 바꾸며 술 먹은 적 있어”라는 기사도 있더라고요. 오늘처럼 촬영 있는 날이면 끝나고 한잔하나요?

보통은 그렇습니다만 오늘은 안 먹겠습니다. 요새 공연 앞두고 술에 체력을 뺏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럼 ‘공연 잘 마쳤다’ ‘나 오늘 고생했고, 만족스러운 하루다’ 싶은 때는 언제입니까?

아유 뭐 안 가리죠. 보통은 일단 맥주로 시작해서 소맥 걸쳤다가 소주로 가는 게 제일 당기지 않나 싶네요. 와인은 주로 한가할 때 마십니다. 제 나름의 술 등급제가 있어요. 1군의 소주, 맥주, 와인이 있고요. 2군에는 막걸리랑 위스키, 청주가 있죠. 고량주는 1.5군 정도 되겠네요.

막연한 상상 한번 해볼게요. 내일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식당이 일 년간 휴업에 들어갑니다. 어디 가서 뭘 드시겠어요?

아이고. 시간이 하루밖에 안 남은 거죠? 집 근처에 고깃집이 하나 있어요. 소고기, 돼지고기 둘 다 파는데 퀄리티가 좋아요. 싹 다 시켜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맥주-소맥-소주’ 먹겠습니다.

혹시 그 식당 이름 알려줄 수 있나요?

안 됩니다. 비밀입니다.

저는 보도자료로 앨범 소식을 조금 일찍 받아보는데, 그때마다 직접 쓰는 앨범 소개글이 기대됩니다. 글쓴이가 장기하라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지만, 꼭 가사처럼 읽히거든요. 이것도 신경 써서 준비하는지, 아니면 쓱쓱 쓰는지 궁금했어요.

둘 다인 것 같은데요. 신경 써서 쓱쓱 씁니다. 가사로도 사용하려면 할 수 있죠. 제 앨범은 제가 진두지휘해서 만드니까 누구보다 핵심 요소를 잘 알죠.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고 있는 그대로 요약해서 씁니다. 앨범 소개글은 또 장황하면 안 되니까요.

이번 소개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를 만들어놓고 계속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좀 하면 어때서? 그래서 ‘해’를 만들었어요.” 평소에 본인 음악 자주 듣나요?

아주 많이 듣지는 않죠. 저도 평소엔 남들이 열심히 만든 음악을 편하게 듣고 싶으니까요.(웃음) 하지만 최근에 낸 노래들을 가끔 듣기는 합니다. 어쨌든 지금의 제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음악이니까요.

지금 내 귀에 제일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드는 거네요.

그렇죠. 내적 유행이 반영되죠.

연기자나 가수분들은 자신의 옛날 작품 감상하는 걸 더러 힘들어하더라고요. 기하 님은 어떠세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늘 전문성과 숙련도를 경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비해 내가 얻은 것도 있지만, 뭣 모르고 던지던 그 시절에서 잃어버린 것도 있어요. 결과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솔직히 제 옛날 노래 들으면서 감탄할 때도 있어요. 당시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진짜 웃기네. 이거’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웃었구나’ 싶죠. ‘웃기다’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이 들게 한 노래는 무엇이었나요?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가 그래요. 지금 들어보면 약간 졸렬하게 부르거든요. 창법도 지금이랑 달라요. 그게 재밌더라고요. 옛날 장기하 모창할 때도 있어요. 그 곡들은 그때 장기하처럼 불러야 더 좋은 것 같아서. 근데 완전히 그때처럼은 못 불러요.

장기하 노래는 들을 때는 쉽게 따라 부를 것 같은데, 막상 노래방에서 부르면 분위기가 싸해지기 십상입니다. 장기하 노래 잘 부르는 비법 좀 알려주세요.

정말 많은 분들이 이야기합니다. 저는 음정이나 박자를 생각하기보다, 가사 내용을 생각하면서 부르는 게 되려 음정, 박자가 더 잘 맞더라고요. 차라리 연기를 한다 생각하면 좋겠네요.

나중에 바뀔 수도 있는 장기하의 소울 푸드 5

1. 삼겹살 + 소주

2. 감자탕 + 소주

3. 순댓국 + 소주

4. 생선회 + 소주

5. 갈비찜 + 샴페인

니트는 마티스 더 큐레이터, 이너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우터와 팬츠는 모두 스톤아일랜드, 화이트 셔츠는 모이프, 신발은 로에베, 이너로 입은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를테면 판소리처럼요.

그렇죠. 판소리도 일종의 뮤지컬이잖아요. 연기이면서 노래이기도 한. 판소리에 크게 감탄하고서 노래 만드는 방식을 재정비한 적이 있어요. 표현력의 범위가 엄청나다고 느꼈거든요. 소리꾼은 이야기를 잘 숙지하고 잘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저도 그 점을 본받아 노래를 부르려고 노력합니다.

이번 신곡의 제목은 ‘해’와 ‘할건지말건지’입니다. 지금 장기하가 가장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두 가지가 지금 완전히 일치하는데 공연이에요. 풀밴드 편성의 공연은 <장기하와 얼굴들> 마지막 공연 이후로 이번이 처음입니다. 4년 이상을 안 한 거죠. 그렇게 4년을 쉬고서 연습을 딱 했는데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이미 공연이 정해졌지만, 그 이상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지금 해야 하는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요. 직업적으로도요.

요즘처럼 디지털 음원으로 노래를 듣는 시대에 콘서트가 차지하는 의미나 역할은 무엇인가요?

저마다 제일 재미있는 게 뭐냐에 따라서 다를 텐데, 저는 공연하려고 나머지 모든 걸 합니다. 인생 살면서 해본 활동 중에 제가 가장 행복을 느낀 게 공연이에요. 이번 앨범도 공연하려고 만든 거예요. 신곡도 없이 공연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평소에 할 건지 말 건지 고민 많이 하나요?

많이 하죠. 많이 하는데 빨리빨리 결정하는 편이에요. 이번 앨범 만들면서 고민은 딱히 없었어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당장 내가 재밌는 걸 하는 게 중요합니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됐지만, 고민되고 스트레스 받고 어떻게 할 건지 잘 모르겠고 이런 건 없었어요.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누군가에게 의견을 구하거나 질문을 하기도 했나요?

거의 없죠. 사실 제 마음대로 다 했습니다.

장기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일기장 훔쳐보는 기분이 듭니다. 장기하 노래의 가사 중 본인 경험담은 몇 퍼센트나 되나요?

굉장히 많죠. 경험담을 있는 그대로 쓰진 않아도, 제 어떤 경험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쓰기도 하나요?

그렇죠. ‘별일 없이 산다’ ‘등산은 왜 할까’는 저희 어머니 얘기 듣고 만들었어요. 한 번은 어머니가 “인생을 살다 보니까 남들이 “별일 없죠?” 물어볼 때는 보편적으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걸 듣고 ‘아 그러면 별일 없다고 하는 게 일종의 반격으로 기능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별일 없이 산다’를 만들었어요. ‘등산은 왜 할까’는 “엄마는 등산 안 해. 내려올 건데 뭐 하러 올라가”라고 하셔서 거의 그대로 차용한 겁니다. 사실 저는 등산 좋아하거든요.

평소에 칭찬 많이 듣죠. 어떤 칭찬 가장 좋아하나요?

칭찬은 다 좋죠. 칭찬은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다 해주세요. 허허.

나중에 바뀔 수도 있는 장기하의 대표곡 5

1. 별일 없이 산다

2. 그건 니 생각이고

3. 부럽지가 않어

4. 그렇고 그런 사이

5. 싸구려 커피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네이비 by 비욘드클로젯, 바지는 모니탈리 by 노클레임, 신발은 로에베,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 기사가 나갈 때쯤 단독 공연 <“해!”>가 진행됩니다. 지난 앨범 단독 공연 때는 스탠딩 코미디부터, 윤대란 안무가, 무대미술가 여신동의 참여로 화제가 됐어요. 그만큼 팬들의 기대치도 올라갔을 텐데 이번에는 어떤 걸 기대해보면 좋을까요?

이런 얘기를 드리고 싶네요. 제 공연에 와본 적 없는 분들은 신날 거라는 생각을 못하시는 것 같아요. 심지어 지인 중에 제 음악 정말 많이 좋아해주는 분이 있어요. 아직 공연에 온 적은 없는 분인데. 한 번은 제가 공연장에서 물을 뿌린다 하니까 “물을 뿌릴 만한 그런 게 있습니까?” 하시더라고요. 저는 아주 처음부터 끝까지 싸이 형처럼 흠뻑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웃음) 이것도 제 책임이죠. 어디 가서 공연 신나게 할 사람처럼 안 보였기 때문에. 그럼에도 ‘와보면 신난다, 그러니 한번 와보시라’라는 말을 드립니다.

무의미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장기하 음악의 장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음. K-팝이죠.(웃음) ‘한국말로 하는 대중음악이니까’ K-팝이겠죠.

이제는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노래를 내는 것과 책을 내는 것은 과정도 다르지만, 성취감도 다를 것 같아요. 어땠나요?

책이 남다른 게 있긴 해요. 제 이름으로 책을 내는 일이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요. 그런데 어찌어찌 모양새가 갖춰지고 나니까 뭐랄까요. 이렇게도 되는구나. 그래도 이게 말이 되는 책이라고 사람들이 찾아 보는구나. 내가 이런 것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인간이구나. 뿌듯하기보다는 신기했어요.

원고는 평소 써둔 걸 모은 게 아니라, 책을 위해 썼다고 들었어요. 작사와는 어떻게 달랐나요?

일단 완전히 달라요. 가사는 물리적으로 한 곡에 담을 수 있는 양이 정해진 셈이잖아요. 굉장히 함축적일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할 말을 다 못 하는 느낌도 있었거든요.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내 생각을 자세하게 전달하고 싶은데. 그런 점에서 시원했어요.

작년 한 인터뷰에서 “40대가 기대된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40대가 되고 보니 어떤가요?

아유 좋아요. 40대 진짜 괜찮은 것 같아요. 행복의 노하우가 확실히 좀 쌓인 느낌? 여전히 좌충우돌하지만 쓸데없는 것 때문에 고통받는 일의 빈도가 줄지 않았을까. ‘이런 걱정해봐야 아무런 소용없고 사실은 다 괜찮다’는 걸 빨리 눈치채니까요. 그래서 효율적이에요. 예를 들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 가듯 ‘행복’까지 간다. 예전에는 밤까지 달려도 도착을 못 했는데, 요즘은 오후 3시 정도 되면 ‘웬만큼 다 온 것 같은데’ 싶죠.

40대가 되고 바뀐 점이 있다면요?

술을 덜 먹죠. 일부러 덜 먹는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덜 마시게 됐어요. 덕분에 더 인간답게 살고 있습니다.(웃음) 옛날에는 너무 많이 마셨어요.

지금 나이의 두 배가 됐을 때도 음악을 계속하겠죠?

지금 기분으로는 ‘하면 좋겠다’ 싶죠. ‘죽을 때까지 하면 좋겠구나’ 싶어요.

그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작든 크든 고유한 자기 영역이 있는 사람. 그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요? 사람으로서든 뮤지션으로서든.

나중에 바뀔 수도 있는 장기하의 인생 책 5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무경계> 켄 윌버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Editor : 주현욱 | Photography : 김참 | Stylist : 이연지 | Hair&Make-up : 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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