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피코시·잠뱅이·Lee…MZ잡고 아재 잡는 90's 패션
1020에겐 새로움, 3040에겐 친근함 제공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맨투맨과 잠뱅이 청바지를 입고 'Lee' 로고가 새겨진 볼캡을 쓴 20대. 1990년대 신촌의 풍경이 아니라 2023년 성수동의 모습이다. 3040에게는 추억으로만 기억되던 '한물 간' 브랜드들이 새로운 아이템을 찾는 20대의 눈에 들어오며 부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돌아온 티피코시
LF는 최근 패션 브랜드 '티피코시'를 재론칭하고 토탈 캐주얼 유니섹스 브랜드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브랜드 철수를 결정한 지 15년 만이다.
티피코시의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 기성문화를 거부하고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을 패션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X세대의 니즈와 맞물리는 아이템을 선보이며 X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대중음악의 전성기였던 90년대의 트렌드에 맞춰 힙합, 레게, 락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접목한 것이 주효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삐삐밴드 등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가수들이 티피코시의 모델로 활동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패션 브랜드 모델을 맡은 건 티피코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또한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도 주인공 삼천포와 윤진이 티피코시 커플티를 맞춰입는 장면이 나올 만큼 당시 1020에게는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였다.
LF 관계자는 "기존에 티피코시를 몰랐던 젊은 직원들로 TFT를 구성해 재론칭을 준비했다"며 "거세지는 뉴트로 트렌드 열풍에 LF가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 중 티피코시가 Z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돼 재론칭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리도 돌아왔다
1020에게 주목받는 '아재 브랜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산 청바지의 대표 주자 잠뱅이도 매출이 반등했다. 2021년 자사몰 확대와 무신사 입점이 기회였다. 3040에게는 학창시절 입던 청바지였지만 1020에게는 새로운 브랜드로 각인됐다.
잠뱅이를 운영하는 J&J글로벌의 실적도 뛰었다. 매출은 197억원에서 225억원으로 14% 늘었고 영업이익은 9억원에서 27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왕년의 브랜드'를 사들여 트렌디하게 리브랜딩하는 사례도 많다. '세계 3대 청바지 브랜드'로 불렸던 리(Lee)는 커버낫을 운영하는 비케이브가 지난 2020년 미국 VF코퍼레이션으로부터 라이센스를 획득한 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거듭났다. 지난해 매출만 600억원에 달한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도 지난 2019년 국내 의류업체인 레이어가 판권을 사들인 후 지난해 35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000년대를 주름잡은 프리미엄 청바지 브랜드 트루릴리젼과 스톰도 국내 시장에 복귀했다.
MZ도 잡고, 아재도 잡고
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레저렉션 패션(부활 패션)이라고 부른다. 3040에게는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패션이지만 1020은 이를 새롭고 트렌디하다고 느껴 인기를 끄는 현상이다. 당시 유행했던 크롭탑과 로우라이즈 팬츠, 부츠컷 등이 지금 유행과 맞물린 것도 '트렌디함'의 이유다.
3040도 추억의 브랜드들이 돌아오는 것이 반갑다. 나이를 먹으면서 패션 트렌드에서 뒤처져 있다고 느끼던 3040이 익숙한 브랜드들의 부활로 다시 트렌드에 합류했다는 인식을 받기 때문이다. 1020은 새로워서, 3040은 익숙해서 'Y2K 패션'을 찾게 된다는 설명이다.
90년대 패션의 부활에 소비자들은 옴파로스, 니코보코, 죠다쉬 등 다른 추억의 브랜드들도 리브랜딩을 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LF가 티피코시 재론칭을 결정한 것 역시 이런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복고, 뉴트로 트렌드가 꽤 긴 기간 인기를 얻으면서 젊은 세대가 90~00년대 스타일을 '힙'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예전의 명성만으로 다시 인기를 얻는 사례보다는 레트로한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최신 트렌드에 맞게 리브랜딩을 잘 해낸 브랜드들이 선택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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