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영웅 안에 얽힌 선망과 공감 [K콘텐츠의 순간들]

조경숙 2023. 4. 27.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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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 주인공 성진우는 세계를 위해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진다. 최근 성진우를 어둠에서 이끌어낼 새로운 에피소드 〈나 혼자만 레벨업〉의 외전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외전 표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소설 작품들은 대체로 제목이 긴 편이다. 제목 안에 작품의 핵심 설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웹소설 〈SSS급 용사님이 힘을 숨김〉은 제목 그대로 전설적인 능력을 갖춘 용사가 자신의 힘을 숨기고 현대사회에 다시 돌아와 평화롭게 살기를 도모하는 설정이다. 주인공은 능력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어 하나 주변에서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 작품과 제목이 유사한 웹소설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 등의 작품도 주인공이 무언가 능력을 숨긴다는 핵심 설정을 공유한다.

‘숨김’ 키워드가 떠오르기 전에는 ‘나 혼자’ 혹은 ‘나 홀로’가 웹소설 제목에 빈번하게 사용됐다. 〈나 혼자 만렙 뉴비〉 〈나 혼자 네크로맨서〉 〈나 홀로 지배자〉 등 ‘혼자’인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장르 안에서 다시 작은 군집을 이루듯 유사한 제목과 설정의 작품들이 여럿 창작되는 건 그 제목을 단 선행 작품이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증거다. ‘나 혼자’라는 키워드가 쏟아지게 된 배경에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이 버티고 있듯.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추공 지음, 카카오페이지 연재)은 2016년부터 연재가 시작되어 2018년 완결된 작품이다. 원작 웹소설을 기반으로 각색된 웹툰은 전 세계에서 143억 뷰를 달성하는 등 기록적인 성과를 올렸다.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액션 비중이 높은 장면들을 훌륭하게 시각적으로 연출했다. 결과적으로 지식재산권(IP)으로서 〈나 혼자만 레벨업〉이 성공할 수 있는 디딤돌로 기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2022년에는 〈나 혼자만 레벨업〉의 일부 에피소드가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로 발행되어 판매되기도 했다. 현재는 게임 발매를 앞두고 있으며,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방영될 계획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판타지적 상상력을 덧입힌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차원과 연결된 통로인 ‘게이트’가 열리고, 게임 속에서나 보던 몬스터가 들끓는 던전이 생겨난다. 갑자기 생겨난 몬스터에 대응하라는 듯, 게이트가 열리는 동시에 평범한 현대사회의 일원이었던 사람들에게도 저마다 특수한 ‘헌터’의 능력이 발현된다. 헌터는 몬스터를 해치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로 각기 다른 형태의 능력과 등급을 부여받는다. 다른 이를 치유해주는 힐러가 있다면 앞장서서 적의 공격을 받아 안는 탱커가 있는 식이다. 던전을 돌면서 마정석(던전에 있는 광물)을 캐내 별도의 수입을 챙기기도 한다. 목숨을 거는 일인 만큼 보수는 상당하지만 위험도가 높기 때문에 던전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헌터들도 많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인 ‘성진우’는 생존형 헌터다. ‘인류 최약 병기’라는 별명을 지녔을 정도로 약한 데다 등급도 헌터 중에서 가장 낮은 ‘E급’에 속하지만,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던전에 들어간다. 던전 미션을 수행하던 성진우는 던전 안에 또 다른 던전이 있는 ‘이중 던전’에 입성하고, 이때 새로운 능력을 각성하게 된다. 본래 헌터는 주어진 능력을 향상할 수 없는데 성진우만 예외적으로 능력을 끊임없이 ‘레벨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헌터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능력주의’ 그 자체다. 헌터들의 능력은 S급부터 E급까지 모두 급수로 매겨지고, 이에 따라 대우도 판이하다. 지금껏 E급 헌터로 온갖 무시를 당해왔던 성진우는 레벨업을 거듭하며 세계 최고의 실력자로 자리매김한다. 더 강력한 몬스터가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성진우는 ‘그림자 군대’라는 자신의 고유 스킬을 사용해 수없이 많은 부하를 부리며 이를 격파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성진우는 세계를 근본적으로 회복시킬 방법을 깨닫고 세상을 위해 자신이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는 방향을 택한다.

독자들을 향한 커다란 위로

차가운 맨바닥에서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시작했지만 우연한 계기를 통해 세계 최고의 헌터로 성장하는 성진우. 그는 세계를 구원하는 단 한 명의 영웅이 된다. 그가 감내하는 무게를 알아주는 이가 있든 없든,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런 성진우의 모습은 〈나 혼자만 레벨업〉이 구축한 ‘한국식 영웅’의 모습이다.

다른 웹소설에서도 성진우와 비슷한 형태의 영웅이 재현된다. 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흙수저’였지만 우연한 계기에 이를 반전시키고, 영웅이 되더라도 도취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언제든 자신이 가진 것을 손쉽게 내던지고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이나 해야 할 일을 태연히 해낸다. 이런 캐릭터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평범함을 가장하는 데에 있다. 중요한 비밀을 갖고 있지만 권력욕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까지 올라온 데에 우연은 있어도 ‘꿍꿍이’는 없으며, 순전히 노력을 통해 실력을 쟁취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은 어쩌면 바로 이런 모습으로 성공하고 싶은 게 아닐까.

성진우는 고독하다. 나약했던 옛날의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능성을 극대화했지만 끝없는 외로움을 홀로 견디는 길을 택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이라는 제목처럼 그들은 모두 ‘혼자’ 혹은 ‘홀로’ 성공하지만, 동시에 그 혼자서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세계의 비밀을 짊어진다. 이 이야기에는 나 홀로 성공하고 싶다는 이기적 욕망보다 고독한 영웅 안에 얽힌 선망과 공감이 더 선연하다. 우리는 모두 고독하다. 지금도, 나중에도, 심지어 영웅이 된다고 하더라도.

성진우는 고독하고 외로운 영웅의 전형이다. 그러나 최근 성진우를 어둠에서 이끌어낼 새로운 에피소드 〈나 혼자만 레벨업〉의 외전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언론에 알려졌듯,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의 작화를 맡았던 장성락 그림작가는 지난해 병환으로 사망했다(이와 관련하여 연재 주기와 분량 등으로 인한 웹툰 작가들의 과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바 있다). 지금 외전을 이어가는 건 그와 함께 작업했던 DISCIPLES(디사이플스) 작가다. 작가는 다르지만 본편과 다름없이 스릴 넘치는 액션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보인다. 외전에서 성진우는 동료들과 재회하고 그들과 새로운 경험을 쌓아나간다.

성진우를 찾아가 기꺼이 손 내미는 동료들의 모습은 고 장성락 작가의 유지를 이어 외전을 그려나가는 동료 작가들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성진우의 친우들처럼 장성락 작가의 동료들도 누군가 홀로 짐을 짊어지기를 바라지 않고 함께 연결되기를 제안한다. 이 외전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본편에 대한 응답이자 독자를 향한 커다란 위로다. 쉽지 않았을 결정을 내린 작가들을 응원한다.

조경숙 (만화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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