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베토벤 ‘합창’ 금지 ‘종교 불협화음’ 전국 국공립합창단으로
가톨릭·개신교계에선 ‘박물관 불교문화재 전시’ 반박
대구광역시 종교화합자문위원회(종교자문위)가 특정 종교 편향을 이유로 최근 시 소속 예술단체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공연을 금지한 것을 두고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합창’뿐만 아니라 명곡으로 널리 알려진 베르디의 <레퀴엠>과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사계>도 종교자문위 ‘사전 검열’에 제동이 걸렸던 사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 사안은 다양한 파문을 낳고 있다. 국립합창단 등 일부 국공립 연주단체는 거듭되는 압박에 헨델의 <메시아> 등 종교적 색채의 곡들을 공연 목록에서 제외했다. 종교의 영향 아래 만들어졌지만 전 세계에서 자주 공연되며 예술적 보편성을 얻은 곡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에 음악계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구시 종교자문위가 2021년 ‘종교 편향성’을 들어 공연을 불허한 베르디의 <레퀴엠>은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곡이다. 특히 ‘진노의 날’ 시작 부분은 강렬한 선율로 광고와 영화음악,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등장한다.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인 레퀴엠은 형식 자체가 미사곡이다. 하지만 베르디와 모차르트, 브람스, 포레, 브리튼 등 여러 작곡가들이 만든 레퀴엠은 음악성을 인정받았고, 클래식 공연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서울시향과 경기필하모닉, 국립합창단 등 국내 대표적인 국공립 연주단체들도 최근 몇년 사이 레퀴엠을 연주했다. 하이든의 작품 <사계>도 간간이 공연되는 곡이다.
종교자문위가 대구시의 공식 기구로 출범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베르디와 푸치니의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한 합창곡들이었다. 창립 40돌을 맞은 대구시립합창단이 2021년 4월29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공연한 ‘오페라 합창의 향연’이 발단이었다. 대구지역 불교계는 이 공연을 ‘찬송가 공연’이라고 비판하며 대구시에 항의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불교계는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가운데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과 <아이다>의 ‘개선 행진곡’,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 나오는 ‘당신, 신이시여’ 등 대중에게도 친숙한 합창곡들을 문제 삼았다고 대구시 관계자는 전했다. 이들 노래 중엔 ‘신들에게 감사하라’, ‘영광(글로리아), 찬송을 올립시다’ 등 부분적으로 종교적 내용이 들어있지만 다양한 매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곡들이다. 불교계는 대구시립합창단이 하필이면 ‘부처님 오신 날’ 전야제 당일에 ‘앙코르 공연’을 한 점에도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대구지역 불교계는 이후에도 대구시립합창단의 창립 40돌 공연을 거듭 문제로 삼았다. “시민의 공공자산인 시립 예술단체의 종교 편향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며 대구시립합창단을 ‘시립 성가대’라고 몰아세웠다. 불교계가 대구시를 항의 방문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이어가자 대구시는 2021년 12월 종교자문위 조례를 신설해 ‘15인 이내’의 자문위원을 두도록 했다.
대구시 조례는 유독 ‘종교 중립성’ 관련 안건에 대해서만 ‘종교계 자문위원 전원 찬성’을 거쳐 의결하도록 했다. 특정 종교계 출신 가운데 1명이라도 반대하면 공연이 ‘원천봉쇄’되는 기이한 시스템이다. 이 조례는 “시립합창단 공연은 종교 중립성에 관한 자문을 거쳐야 하며, 그 밖의 예술단은 필요한 경우 자문한다”고 적시해, 사실상 대구시립합창단을 ‘표적’으로 겨냥했다.
당시 조계종도 종단 차원에서 움직였다. 불교음악원은 전국 18개 시·도립합창단의 과거 공연 곡목들을 전수조사했고, “대다수 공연에서 기독교 신을 찬양하는 찬송가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종교 편향성을 공격했다. 불교음악원은 특히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제주 등 5개 지역 합창단의 종교 편향성이 두드러진다고 비판했다. 조계종의 항의를 받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국공립 합창단 대표들을 불러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유난히 가톨릭·개신교 관련 종교 레퍼토리가 많은 국공립 합창단들은 난처해 하고 있다. 매년 연말 정례적으로 헨델의 <메시아>를 공연해온 국립합창단은 지난해부터 이 곡을 공연 목록에서 뺐다. 윤의중 국립합창단장은 “매진되는 공연이었는데 지난해부터 공연을 중단했고, 올해와 내년에도 공연 계획이 없다”며 “종교를 떠나 하나의 클래식 장르로 굳어진 곡들을 빼면 합창단 레퍼토리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국립 연주단체 관계자는 “종교 색채가 문제라면 국립박물관, 국립미술관 등이 불교 문화재나 미술품을 전시하는 것도 막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한 지휘자는 “국공립 국악 단체들이 불교, 굿 관련 내용이 많은 전통음악을 주로 연주하고 있는데 같은 논리라면 이런 공연도 막아야 하느냐”며 “종교와 함께해온 동서양 음악에 종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종교곡 공연에서 기독교 신자가 아닌 성악가를 배제하는 등 지나치게 종교적 색채가 짙은 ‘원리주의적 음악가’들의 행태도 문제로 지적된다. 1998년 장일남이 작곡한 오페라 <원효대사>부터 대구지역 종교 갈등이 시작됐다는 의견도 있다. 대구시 문화단체를 이끌었던 문화계 고위 인사는 “교회 성가대 지휘자 등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오페라 <원효대사> 공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곤란을 겪기도 했다”고 전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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