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기획-초등 1심제 논란③]'초등부 퍼거슨'의 분노 "사라진 공정성, 아이들에게 피해 강요"
[마이데일리 = 이현호·최병진 기자]
지난 1월 18일 대한축구협회(축구협회)는 이사회를 열고 기존 초등부 경기 2심제를 2023년부터 1심제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축구 꿈나무들의 축구 환경이 180도 달라지는 정책이다. 한국 축구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일이다.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고,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며, 무엇보다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 그러나 1심제 시행과 동시에 갈등이 시작됐고, 시간이 갈수록 논란이 커지고 있다. 축구협회의 이상과 현장의 현실에 괴리감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마이데일리'는 1심제의 문제점과 갈등의 원인 등을 심층 취재했고, 현장의 목소리·축구협회의 입장·베테랑 감독의 폭로까지 총 3편의 시리즈를 연재한다.<편집자주>
'마이데일리'는 초등부 1심제 논란을 취재하면서 많은 현장의 지도자들에게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문제가 있고 불만도 있지만' 인터뷰를 할 수 없다는 답이었다. '익명' 인터뷰 요청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축구협회가 시행하는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 즈음 두 명의 초등부 지도자와 연락이 닿았는데, 그들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인터뷰에 응한다고 답했다. '익명'도 필요 없다고 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었다. 오직 아이들의 미래와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목소리를 낸 것이다. 용기를 낸 두 명을 지도자를 '마이데일리'가 만났다.
한 명은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다. 초등 축구계의 '알렉스 퍼거슨'이라 불리는 함상헌 감독이다. 그는 20년 이상 초등부 지도자를 맡으며 수많은 업적을 이뤄냈다. 함 감독은 2001년 신정 초등학교에 부임해 무려 100회 이상의 우승을 기록하며 '초등부 퍼거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함 감독은 체계적인 지도를 위해 한국체육대학에서 스포츠 코칭 석사 학위를 땄다. 현재 국가대표 골키퍼인 조현우(울산 현)와 문선민(전북 현대) 등이 함 감독의 가르침을 받았다.
다른 한 명은 신일호 감독이다. 그는 2001년 창단 이후 현재까지 대전 P&S FC를 이끌고 있다. 대전 P&S FC는 2009년 주말리그 도입 이후 2010년에 클럽팀 1세대로 주말리그에 참가했다. 2019년에는 클럽 최초로 대전소년체전 대표로 선발됐다. 신 감독은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우송대학교와 대전대학교에서 겸임 교수로 활동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두 베테랑 감독. 두 감독은 한목소리로 초등부 1심제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축구협회의 입장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사라진 공정성
가장 큰 이유는 사라진 공정성이었다.
함 감독은 "이제 축구를 시작하고 배우는 아이들이 오심으로 억울한 상황을 겪게 된다. 축구협회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축구를 해야 한다'라는 이유로 1심제를 도입했으나 억울하게 지는 상황이 반복되는데 어떻게 재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축구는 다양한 성장의 과정이 필요하다. 스스로 실력을 키워야 하고 함께 훈련을 하면서 축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부분도 필요하다. 또한 경쟁을 하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을 한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에서 '스포츠는 공정하다'는 기본 가치를 바탕에 두는데 1심제로 억울한 상황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즐기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 감독 또한 "1심제로 공정성이 사라지면서 학부모들이 축구계를 떠나고 있다. 공정하지 않은 룰이 있는 종목에서 아이들이 운동을 하는 거라 생각한다. 이로 인해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으로 아이들이 빠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축구 인구 자체가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1심제를 통해 판정 존중 향상에 대해서 함 감독은 "심판에 대한 존중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다. 심판들의 수준을 키우면서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동시에 진행돼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닌 방법이다. 오심이 늘어나는 상황을 두고 그걸 존중하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고려하지 않은 문화 차이
축구협회는 1심제는 유럽과 일본에서 시행하는 세계적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함 감독은 "각 나라의 환경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유소년 기반 자체가 다르고 육성 방향도 다르다. 나라의 특징은 모두 다르고 그에 맞는 방향성이 있다. 무조건 따라 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기존의 룰을 유지하면서 오심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선수들과 부모, 지도자에게 피해를 감수하라는 거다"고 주장했다.
축구협회는 지난 2020년부터 초등학교 대회 순위 방식을 전면 폐지했다. 성적 지상주의를 탈피하고 창의적인 선수를 키워내기 위한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1심제 또한 일종의 확장 정책으로 순위를 따지지 않는 상황을 배경으로 삼았다.
함 감독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교에 들어가면 이때부터는 '성적'을 따지게 된다. 정말 아이들에게 재미있고 즐거운 축구를 시킬 거라면 이후에도 성적을 신경 쓰게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정책은 이도 저도 아니다. 즐거움과 성적 사이에 괴리감이 더욱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아이들 실력 저하
1심제에 대한 걱정은 장기적으로 선수 실력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다.
함 감독은 "이런 상황 속에서 축구를 조금 잘하는 아이들은 모두 프로 산하 유스팀으로 가려고 한다. 그러면서 일반 클럽팀과 프로 유스팀의 격차가 커지게 된다. 축구화 끈도 못 묶는 아이들도 모두 프로 산하를 원하고 있다. 일반 클럽팀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궁극적으로 재미와 실력 모두 잃게 된다"고 힘줘 말했다.
신 감독도 "초등학교 아이들은 축구를 대하는 목적에 따라 지도가 다르게 이루어져야 하는 대상이다. 정말 축구를 취미로만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고, 실력도 좋고 미래에 선수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성적을 폐지한 후 1심제까지 진행을 하고 있다. 이럴수록 아이들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선수 개개인의 성장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소년 투자 감소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1심제. 이해할 수 없는 정책. 여기에 유소년 '재투자' 문제도 커지고 있다.
함 감독은 "팀 등록비와 개인 등록비가 생겼고 1심제를 하면 비용 절감도 된다. 성적을 폐지하면서 트로피도 없다. 지도자 교육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추세라고 1심제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절감 상황이 유소년 재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전에는 지원이 나오던 공도 주지 않는다. 유소년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현장에서는 '재정 줄이기'가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아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방안을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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