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투자 없이도 살아남기…스타트업 화두 '자생력'
'투자에만 의존해선 생존 불가' 의견
성장 단계 스타트업 BM 다양화 속속
[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유저 수와 잠재력은 당연하고, 이젠 자생(自生) 가능 여부를 많이 봐요. 투자 없이도 지속성장할 역량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죠.”
지난해 말부터 시리즈B 라운드를 돌고 있는 한 스타트업 대표가 최근 한 말이다.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진행하며 몸집을 줄이고 있는 이 스타트업은 조만간 수익 모델(BM)을 다양화하기 위해 구독 서비스 시범 운영에 나선다.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된 탓에 예전만큼 투자를 쉽게 유치하지 못하자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는 방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해당 스타트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충성도 높은 유저를 대거 확보하며 브랜드력을 강화하는 행위에 높은 점수를 줬던 과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며 너도나도 BM 다양화에 나서고 있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성장 단계에 놓인 국내 스타트업들이 벤처 투자 혹한기를 이겨내기 위해 BM을 다양화하고 있다. 광고에 의존하며 일반 고객에게 수수료를 물지 않던 일부 스타트업은 유료화 실험에 나섰고, 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던 스타트업들은 ‘맞춤형 서비스’에 힘을 주며 BM을 다양화하는 모습이다.
성장성에 초점을 맞추고 유저 확보에 안간힘을 썼던 스타트업들이 실적을 챙기기 시작한 주요 원인으로는 ‘벤처 투자 시장 위축’이 꼽힌다. 세계적으로 고금리와 고물가, 고환율 등 3고 현상이 심화하는데다 엑시트(투자금 회수)도 쉽지 않은 만큼, 투자사들이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올해 1분기 글로벌 벤처투자 규모는 이러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스타트업들이 유치한 투자금은 370억달러(약 48조7800억원) 수준이다. 이는 820억달러를 기록한 전년 같은 시기 대비 55% 줄어든 규모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민관협력 네트워크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스타트업 투자 유치금은 8958억원으로, 3조9038억원을 기록했던 전년 동기 대비 77% 감소했다. 스타트업들이 마냥 외부 투자를 기대하기 보다는 자생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생존하는 것에 사활을 걸게 된 배경이다.
최근 서비스 유료화에 나선 한 스타트업 대표는 “벤처 투자 출자액이 줄어들면서 스타트업들이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관문이 좁아졌다”며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 되면서 투자에 기대지 않고도 생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 단계부터 유니콘까지…유료화 실험
유료화 실험에 나선 곳은 대부분 초기 시장 검증을 거쳐 제품 및 서비스를 출시하고 사업을 운영 중인 성장 단계의 스타트업들이다. 사업을 확장하기에 앞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내실을 다지며 고객 만족도 높이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예컨대 고객경험 확대 차원에서 통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온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리턴제로는 지난 2월 이를 구독 기반 유료 서비스로 전환했다. 비토는 녹음된 통화 내용을 글로 정리해 보여주는 앱이다. 유료 멤버십 고객은 해당 기능 외에도 통화 전 미리보기를 비롯한 다양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유료화를 통해 수익성과 충성 고객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행보로 분석된다.
공고한 시장 점유율을 갖춘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유료화했을 때 얻는 장점은 뚜렷하다. 꾸준한 매출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런웨이(Runway, 스타트업이 추가 투자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간) 확보에 사활을 거는 스타트업 입장에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사) 기업 중에서도 BM 다양화에 나선 곳이 즐비하다. 대표적으로 지역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은 최근 제주특별자치도 내 일반 중고 거래 이용자를 대상으로 광고 모델을 만들고 시범 운영에 나섰다. 제주에서 3만원 이상의 판매 글을 올리는 일반 이용자는 3000원을 내면 24시간 동안 플랫폼에 자신의 물건을 광고할 수 있다.
벤처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경기 상황상 스타트업 투자 심사 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내실을 다지고 매출을 발생시키는 것은 곧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를 증명해나가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투자사들이 스타트업의 지속가능성을 요구하는 만큼, 벤처투자 업계가 다시 활성화되더라도 자생력을 갖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연지 (ginsbur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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