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랬다가 저랬다가’…김의겸 ‘송영길 대변인’ 해프닝

추재훈 입력 2023. 4.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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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탈당한 송영길 언론 대응 맡는다'

눈을 의심했습니다. 누가, 누굴, 뭐를? 어제(26일) 오전 9시 반쯤 한 언론사의 기사 제목만 보고 다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의 명쾌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보도에 나온 그대로입니다. 제가 송영길 전 대표 '언론 창구'를 맡기로 했습니다."

송 전 대표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프랑스 파리에서 급히 귀국해 바로 이튿날 탈당계를 제출한 지 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온라인으로 탈당계를 제출했기 때문에 '잉크도 마르지 않을 시간'은 아니겠지만, 결코 길다고는 볼 수 없는 시간입니다.

김 의원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송 전 대표가 그제(25일) 자신의 의견을 언론인이나 정치인 등에게 전달해 줄 '언론 창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해왔기에 이를 수락했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둘이 함께 있는 그림이 어색해 물었습니다. "두 분이 혹시 인연이...?" 이에 대한 답도 명쾌했습니다. "송 전 대표는 연세대, 저는 고려대 출신인데 당시에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부터 알고 지냈고, 송 전 대표가 초선일 때 제가 출입기자로 만났어요." 너무도 명쾌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송 전 대표와 연락이 안 돼 취재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많아 그저 '연락 잘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을 뿐입니다.

송 전 대표 측근들은 '김 의원이 의리가 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언론 창구가 단일화되면 좋은 게 아니냐는 겁니다. '돈 봉투 의혹'이 여의도(정치권)는 물론 서초동(법조)에서도 연일 화제이기 때문에 채널이 여러 개면 혼선을 줄 수 있어서 이를테면 김 의원이 총대를 메준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 "이재명 대변인이 송영길 대변인 됐다" "위장 탈당"…거센 후폭풍

하지만, 그런 '선의'는 정가에서 곧바로 규탄의 대상이 됐습니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탈당 호소인 송영길 전 대표가 잔기술계의 타짜를 자처하는 민주당 김의겸 의원과 연합 전선을 선언했다"며 "송 전 대표 스스로가 '무늬만 탈당'임을 입증한 셈"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어, 김 대변인은 "김 의원은 ‘관사 재테크’라는 신조어를 낳았던 주인공이자, 부동산 투기로 9억원에 가까운 시세 차익을 내면서 ‘흑석’ 김의겸이라는 국민적 칭호도 얻은 바 있다"며 "앞으로 민주당 돈 봉투 사건이 김 의원의 입을 통해서 어떻게 미화될지 궁금하다"고 꼬집었습니다.

국민의힘 장예찬 청년최고위원도 SNS를 통해 "부정부패로 탈당한 인물(송영길)이 민주당 국회의원(김의겸)을 대변인으로 쓸 수 있다니 놀랍다"며 "결국 송 전 대표는 위장 탈당을 한 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나아가 "김 의원은 얼마 전까지 이재명 대표의 대변인이었다"며 "이재명의 대변인이 송영길의 대변인이 됐다. 이심송심의 결정적 증거"라며 화살을 이재명 대표에게로 돌렸습니다.

이민찬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쩐당대회 돈 살포 의혹’의 모든 책임을 지고 민주당을 탈당한다고 큰소리칠 땐 언제고, 이제 와 민주당 현역 의원과 원팀을 이루는 속내는 무엇인가”라며 “이러니 ‘무늬만 탈당’, ‘위장탈당 시즌2′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난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 민주당 내부도 '부글부글'…"TF라도 구성하는 건가"

민주당 내부에서도 불편한 기색은 감춰지지 않았습니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사안의 엄중함이나 국민들 시선의 날카로움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TF라도 구성하는 건가"라며 "진실을 말해야지, 정치적으로 언론 플레이나 하려고 하나"라고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심지어 또 다른 송 전 대표의 측근 또한 "현역 의원이 송영길의 언론 창구를 맡는 게 말이 되나. 진짜 이해가 안 된다"며 "(2021년 전당대회) 당시 김의겸 의원은 송영길 캠프에서 아무런 역할도 안했고, 아는 것도 없을 거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당직을 맡고 있는 민주당 관계자 또한 KBS와의 통화에서 "김의겸과 송영길 사이의 순수한 인간관계 차원에서 부탁은 들어줄 수 있지만, 당내에서도 심각하게 생각했으니까 사퇴한 것 아니겠냐"라며 "김의겸은 공적인 영역에 있는 사람이고 탈당한 송영길은 사적 영역에 있는 사람인데, 송영길의 일을 김의겸이 해주면 안 된다"면서 심상치 않은 당내 기류를 전했습니다.


■ 참을 수 없는 '친분'의 가벼움?…그러나 '당적'의 무게는 달랐다

파장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지자, 김의겸 의원 측은 결국 백기를 들었습니다.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김 의원이 오늘 송 전 대표로부터 다시 전화를 받았다"며 "'개인적인 친분으로 한 부탁인데,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 언론 창구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겠다'는 내용"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송 전 대표는 또 '탈당을 했으니,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겠다'고도 덧붙였다. 김 의원도 송 전 대표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소상하게 알려왔습니다. 메시지가 전달된 건 오후 4시쯤. 결국 7시간도 안 돼서 입장이 바뀐 겁니다.

김 의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심하게 논평도 내고, 송 전 대표에게 기자들 전화가 와서 '이재명의 대변인이었다가 송영길의 또 대변인이 된다, 이재명과 송영길 사이에 가교가 있는 거 아니냐'하고 묻고 그랬나 봐요"라며 "송 전 대표가 먼저 전화를 걸어와 오해와 억측만 쌓이는 것 같다고 해서, 저도 알겠다고 해서 끝난 거예요"라고 답했습니다.

김 의원은 송 전 대표를 어떻게 도울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채 이른바 '딥백' (브리퍼) 정도의 역할을 맡는 걸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통상 딥백은 대변인이나 당국자가 마이크를 끈 상태에서 민감한 사안 등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 기자들은 소스를 밝히지 않은 채 기사에 '알려졌다'로 내용을 녹여내는 방식입니다.
바깥에 알려지면 논란이 될 거라는 걸 알았던 거 아니냐는 물음에는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죠"라면서도 "아직 유무죄가 확정된 것도 아니고 검찰이 소환을 한 것도 아니고 송영길 전 대표는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딥백을 하는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봤죠"라고 답했습니다.

논란이 될 수 있단 걸 예상했는데도 도우려 했다는 말에, 사태가 이렇게 흘러와서 아쉬운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될지, 오늘이나 내일쯤 다시 통화해서 내가 생각하는 딥백 역할을 하려고 했는데, 그보다 더 과도하게 대변인처럼 전면에 나서서 송영길 대표를 옹호하는 그림으로 비춰지는 과정에 좀 소홀했다고 봐요"라고 답했습니다. 송 전 대표를 어떻게든 돕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돈 봉투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걸 생각하며 김 의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냈더라도, 지금으로선 송 전 대표가 스스로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생각하고 거절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김 의원은 한참 침묵하다 이렇게 답했습니다. "...기자님이 판단해 보세요."


김 의원은 송 전 대표의 부탁을 1초 만에 수락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 봉투'라는 그림자가 민주당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논란을 예상할 수 있었던 가운데 국회의원이 자연인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건, '당적'의 무게를 지나치게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친분에 따라 가벼운 부탁을 1초 만에 들어주는 건 '쿨'한 일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일은 민주당이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여전히 우왕좌왕하는 궁색한 모습만 보여준 해프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의겸 의원은 2015년 1월 신문기자 시절 칼럼을 통해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비서 3인방을 감싸고도는 걸 지켜보면서 “아! 한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한 공간에 모여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마침내 가족처럼 끈끈해진 ‘유사가족’ 말이다." '비선 실세' 논란이 터진 후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이 야당의 비서관 교체 요구를 묵살한 것을 꼬집는 내용이었습니다.

결은 약간 다르지만, 궤는 같이 하는 내용입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송 전 대표와 유대관계를 형성해 마침내 가족처럼 끈끈해졌기에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던 걸까요? 하지만, 친분의 무게는 당적의 무게를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추재훈 기자 (mr.ch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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