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블랙홀 ‘그림자’ 강착원반과 제트 분출, 첫 동시 관측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4. 27.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 포함 국제 연구진, 네이처에 블랙홀 영상 발표
처음 공개 모습보다 50% 더 큰 강착원반 첫 확인
중력에 끌려가다 역류하는 물질의 제트도 동시 관측
”블랙홀이 별, 은하 진화에 미친 영향 알아낼 실마리”
GMVA+ALMA로 관측한 M87 블랙홀. 블랙홀의 강착원반 구조(좌측 확대 이미지)와 함께 블랙홀로부터 분출되는 제트까지 확인할 수 있다./Nature
블랙홀 강착원반(왼쪽)과 양자고리(오른쪽).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연구진이 2019년 4월 공개한 M87 블랙홀 주변의 고리 구조(오른쪽) 영상은 1.3mm 파장대 빛을 관측한 것이다. 파장이 짧기 때문에 강착원반에서 나온 빛은 약하고 광자 고리(점선) 구조가 더 두드러진다. 3.5mm에서 관측한 이번 고리 구조(왼쪽)는 파장이 길기 때문에 광자 고리보다 바깥쪽의 강착원반(실선)에서 나온 빛이 더 강해서 EHT로 관측된 고리 구조에 비해 약 50% 크게 나타났다./Nature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주의 심연(深淵) 블랙홀(blackhole)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블랙홀은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이 엄청나게 강해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는 천체이다. 4년 전 사상 최초로 블랙홀의 윤곽이 확인된 데 이어 이번에는 그보다 바깥에서 물질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새로 밝혀졌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2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전 세계 16곳의 전파망원경에서 처녀자리 M87 은하의 블랙홀을 동시에 관측해 바깥쪽 강착원반(accretion disk)의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M87 블랙홀은 지구에서 5400만광년(光年·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떨어져 있으며 질량이 태양의 65억배에 이른다.

◇안쪽 그림자 이어 바깥 고리도 확인

이번에 공개된 블랙홀은 밝게 빛나는 천체에 꼬리 같은 형태가 달린 모습이다. 앞서 ‘사건 지평선 망원경(EHT)’ 국제 공동 프로젝트 연구진이 2019년 블랙홀의 그림자에 해당하는 ‘광자고리(photon rings)’를 처음 발표했다. 이번 영상은 당시 블랙홀보다 50% 더 큰 모습인 강착원반을 보여줬다. 강착원반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물질들이 주변에서 압축된 상태로 회전하는 것이다. 부착원반이라고도 한다. 블랙홀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물질이 뿜어져 나오는 ‘제트(jet)’도 확인했다.

블랙홀은 별이 마지막 단계에서 폭발하고 극도로 수축한 천체를 말한다. 지구 정도 질량이 블랙홀이 되면 지름이 1㎝로 수축된다. 이러면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이 엄청나게 강해 ‘검은 구멍’이란 뜻의 영어 이름처럼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한다. 빛이 보이지 않으니 직접 관측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대신 블랙홀의 윤곽을 관측했다. 블랙홀 자체가 아니라 그 주변에서 물질들이 몰려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장마철 흙탕물이 소용돌이를 이루며 빠져나가는 모습으로 하수구 형태를 짐작하는 것과 같다. 2019년 공개된 영상은 한쪽이 더 밝은 초승달 형태로, 아인슈타인이 1915년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한 모습 그대로였다.

아인슈타인은 볼링공이 떨어져 매트리스가 움푹 들어가듯, 블랙홀은 중력이 워낙 강해 주변 시공간이 휜다고 했다. 이로 인해 블랙홀 뒤쪽을 도는 물질에서 나오는 빛도 앞으로 휘어져 나온다. 블랙홀로 끌려 들어가는 물질들은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는데, 그중 지구 방향으로 움직이는 부분은 마치 반지 알처럼 멀어지는 부분보다 더 밝게 보인다. 구급차가 가까이 올수록 사이렌 소리가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블랙홀의 구조./조선DB

2019년 나온 영상은 블랙홀 주변 물질에서 나오는 1.3㎜ 파장의 전파를 관측한 것이다. 당시 영상에서는 블랙홀 경계면인 이른바 ‘사건의 지평선’에 물질이 모여 빛나는 광자고리만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파장이 더 긴 3.5㎜ 전파를 관측해 그보다 규모가 큰 바깥쪽 강착원반에서 나온 빛까지 포착했다. 이제까지 블랙홀의 강착원반에 대해 간접적 증거는 나왔지만, 실제 구조를 영상화한 적은 없었다.

연구진은 최초로 M87 블랙홀의 그림자와 함께 제트도 동시에 포착했다.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이면 강력한 자기장이 생기면서 일부가 블랙홀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이번 연구는 블랙홀이 강한 중력으로 주변 물질을 흡수할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제트를 만들어 블랙홀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과 은하들의 진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천문연의 전파망원경 관측이 큰 역할

이번 발견에는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이 공동 운영하는 칠레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전파망원경의 역할이 컸다. ALMA 덕분에 사상 최초로 3.5mm의 파장대에서 고리 구조를 관측할 수 있었다고 천문연은 밝혔다.

네이처 논문의 공동 대표저자인 대만중앙연구원 천문천체물리연구소의 케이치 아사다(Keiichi Asada) 박사는 “이번 관측은 성능이 향상된 ALMA와 그린란드망원경(GLT)의 역할이 컸다”며 “최첨단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관측된 고리 구조가 블랙홀의 강착원반이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121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천문연구원의 박종호 선임연구원, 변도영 책임연구원 그리고 정태현 책임연구원, 경북대 김재영 교수 등 4명이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측 책임자인 박종호 천문연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예측만 무성했던 블랙홀의 강착원반을 사상 최초로 직접 영상화해 존재를 증명했다는 점에서 블랙홀 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결과”라고 말했다. 김재영 경북대 지구시스템과학부 교수는 “이전의 영상이 블랙홀의 실존을 증명했다면, 이번 영상은 블랙홀 바로 주변의 복잡한 천체물리학적 과정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블랙홀이 우주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종호 박사는 “블랙홀이 주변의 물질을 어떤 방식으로 흡수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막대한 에너지를 분출해 블랙홀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과 은하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EHT 협력으로 원래 촬영된 M87 초대질량 블랙홀(왼쪽); 동일한 데이터 세트를 사용하여 PRIMO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된 새로운 이미지(오른쪽) /Medeiros et al. 2023

◇인공지능이 블랙홀 이미지 선명하게 보정

한편 2019년 처음 확인한 블랙홀의 모습도 최근 새로 단장됐다.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와 애리조나대, 조지아공대 등 미국 연구진은 지난 13일 M87 블랙홀의 한층 선명한 모습을 담고 있는 새 이미지를 국제 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에 공개했다.

EHT 국제 공동 연구진이 지난 2019년 밝힌 블랙홀은 고리 형태를 띠고 있지만 해상도가 떨어져 다소 흐릿하게 보였다. 새로 공개된 이미지는 블랙홀의 기존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한층 더 얇은 고리 모양과 선명한 해상도로 표현됐다. EHT 망원경에서 포착한 데이터 가운데 누락된 정보는 인공지능(AI) 기계학습 기술인 프리모(PRIMO·주성분간섭계 모델링)를 통해 채웠다.

프리모는 EHT 연구진이 공동 개발했다. 기존 관측 자료를 학습한 뒤 아직 관측하지 못한 이미지 패턴을 찾아내는 원리다. 연구진은 블랙홀에 가스가 축적되는 3만건 이상의 시뮬레이션 이미지 자료를 학습하게 하는 방식으로 실제 이미지에서 누락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더 선명한 블랙홀 이미지를 얻었다.

실제로 공개된 이미지는 원본과 비슷해 보이지만 ‘도넛’에 해당하는 고리 모양이 2분의 1로 가늘어졌고 중앙의 블랙홀 영역이 훨씬 더 어두운 모습을 담고 있다. 연구진은 “더 자세한 이미지는 블랙홀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자료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5843-w

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2023), DOI:https://doi.org/10.3847/2041-8213/acc32d

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2019), DOI: https://doi.org/10.3847/2041-8213/ab1141

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2019), DOI: https://doi.org/10.3847/2041-8213/ab0ec7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