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NSA 국장이 사우디에 군사 컨설팅... 안보 사각지대 된 미 퇴역 군인

이유진 2023. 4. 2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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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미군들, 외국 정부와 계약 ‘제2의 인생’
중동 군대에 미 군사 전술 전달→내전 격화
'국방부 보고' 필수지만...대부분 '프리패스'
2013년 10월 키스 알렉산더 당시 미국 국가안보국(NSA) 국장이 워싱턴 의사당에서 열린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육군에 평생을 바쳤고 4성 장군(대장)으로 사이버사령부 제1사령관까지 지냈다. 이후 군인 신분으로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까지 9년간(2005~2014년),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수장으로 일한 뒤 명예롭게 전역했다. 제2의 인생은 ‘군사 컨설턴트’다. 정보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던 만큼,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미군의 군사·보안 전술로 외국 군대를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대가로 거액을 받았다. 키스 알렉산더(72) 미 육군 장군 얘기다.

문제는 미군 복무를 통해 얻은 경험과 정보가 ‘컨설팅 계약’을 맺은 타국에까지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은퇴 후 해외 정부와 계약을 맺고 군사 컨설팅을 제공하는 전직 군인들의 현황 자료를 입수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퇴역 군인들이 미국 외교안보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인권 유린" 규탄에도...NSA 국장은 사우디로

WP에 따르면, 2014년 퇴임한 알렉산더가 차린 컨설팅 회사 ‘아이언넷’이 외국 정부와 맺은 계약의 누적 액수는 최소 360만 달러(약 48억636만 원)에 달한다. 2012년 이후 은퇴한 미군 중에선 최대 규모의 해외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호주 정부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까지 그의 고용주가 됐다.

특히 눈에 띄는 건 2019년 사우디 국방부 소속 고문으로 일했다는 사실이다. 계약 시점은 전 세계적으로 ‘인권 유린’ 논란을 야기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의문사 사건 발생 3개월 후였다. 2018년 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 비판적이었던 WP 소속 칼럼니스트 카슈끄지는 튀르키예의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한 뒤 실종됐는데, 사우디 정부는 수개월간 관련성을 부인하며 시치미를 떼다가 결국 살해 사실을 인정해 큰 파장을 낳았다. 당시 미국 정부도 사우디를 향해 “인권 탄압을 멈추라”며 대립각을 세웠다.

2018년 터키 방송사 'A Harber'가 그해 10월 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의 자택 앞 폐쇄회로(CC)TV에 여러 남성들이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의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을 들고 분주히 드나들고 있는 모습이 기록된 동영상을 공개했다. A Harber 홈페이지 캡처

사건 초기부터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의심받던 사우디 정부는 알렉산더를 비롯, 전직 미군 출신 컨설턴트를 고용해 방화벽을 강화했다. 컴퓨터 해킹과 감시 네트워크 구축 등을 가르치는 교육기관 설립도 추진했다. 카슈끄지 같은 반체제 인사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이 계약으로 알렉산더는 70만 달러(약 9억3,560만 원)를 챙겼다.


"미국 기술로 중동군 훈련...내전에 간접 기여"

알렉산더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WP가 입수한 문건에는 500명 이상의 퇴역 미군이 인권 유린과 정치적 탄압으로 악명 높은 국가와 손을 잡고 일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오바마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제임스 존스 전 해병대 대장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짐 매티스도 이름을 올렸다.

고객은 대부분 중동의 부국(富國)이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는 2015~2022년 280명의 전략 컨설턴트, 드론 조종자, 미사일 방어 전문가, 사이버 보안 고문 등 군 베테랑들을 고용했다. 이들은 미국의 정보와 연료 보급, 병참 지원 방식을 공유해 ‘오합지졸’이던 지역군을 하나로 합쳐 훈련시켰다. 유엔 소속 조사관은 WP에 “이렇게 재정비된 군대는 예멘과 리비아에 파견돼 내전을 격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미 연방법상 은퇴 군인과 예비군은 외국 정부에서 급여를 받으려면 국방부와 국무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국가안보 정보 유출이나 인도적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실상은 인권 탄압이나 안보 위협에 대한 검토가 전혀 없는 ‘프리패스’였다. WP는 “2015~2021년 제출된 500건 이상의 신청서 중 약 95%가 무리 없이 승인을 받았다”며 “승인을 받지 않아도 형사처벌 조항이 없어 연금 동결 수준의 조치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는 퇴역 군인의 ‘부업’을 더 꼼꼼히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소속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 등은 지난해 국방부와 국무부가 비공개 처리한 '외국 정부와 계약한 퇴역 군인 심사 기록'을 요구했고, 26일 상원 군사소위원회 청문회를 주재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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