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14년째 잠자는 '음주시동 잠금장치'... 승아양 사건 계기 속도 내나

박준석 2023. 4. 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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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 주차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차량 '음주운전 시동 잠금장치'에 '후' 하고 숨을 불자 측정기에 'PASS(통과)' 문구가 떴다.

미국 애리조나주(州)는 잠금장치 도입 전인 2007년 399명에 달했던 음주운전 사망자가 2014년 199명으로 급감했다.

국회에 계류된 법안 중 상당수는 면허가 정지ㆍ취소된 음주운전자를 상대로 일정 기간(1~7년) 차량에 장치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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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하면 운전대 못 잡게"... 여야 모두 찬성 
2009년 첫 발의 후 14년 만에 개정안 급물살
이중처벌, 비용 문제 등 각론은 여전히 '빈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를 방문해 차량 음주운전 방지 장치를 시연하고 있다. 뉴스1

26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 주차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차량 ‘음주운전 시동 잠금장치’에 ‘후’ 하고 숨을 불자 측정기에 ‘PASS(통과)’ 문구가 떴다. 그제야 차에 시동이 걸렸다. 반면 소주를 입에 머금었던 장치 제조업체 관계자가 숨을 내뱉었을 땐, ‘FAIL(실패)’ 문구와 함께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아무리 시동 버튼을 눌러도 엔진은 작동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장치 도입을) 머뭇거릴 필요가 없겠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음주자가 아예 운전대를 못 잡게 하는 시동 잠금장치 도입 방안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배승아(10)양 사건을 계기로 음주운전 자체를 봉쇄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은 덕이다. 여당은 잠금장치 의무화를 당론으로 추진할 생각이고, 정부와 야당도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장치 설치 대상, 비용 부담, 이중처벌 소지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시행까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윤창호법에도 사고 여전... 사전 예방 공감대

10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전) 음주운전 사망 사고가 발생한 대전 서구 탄방중 앞 사고 현장에서 시민들이 숨진 배승아양을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뉴스1

잠금장치는 2009년 제18대 국회 때 처음 논의됐다. 음주운전을 3번 넘게 해 면허가 취소된 사람이 새로 면허를 딸 때 최소 3년간 장치 설치 차량을 운전해야 한다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이다. 이후 19·20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제출됐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간의 음주운전 대책이 ‘윤창호법’ 등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진 탓이다. 하지만 처벌 수위를 높여도 음주운전 재범률이 2019년 43.8%에서 2021년 44.8%로 외려 늘면서 운전 기회를 박탈하는,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됐다.

실제 국민권익위원회의 2021년 조사에서 응답자(1,850명)의 94%가 잠금장치 도입에 찬성했다. 헌법재판소도 지난해 5월 윤창호법 위헌 결정을 내리며 형벌 강화에 앞서 잠금장치 부착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해외에선 이미 효용성이 입증됐다. 미국 애리조나주(州)는 잠금장치 도입 전인 2007년 399명에 달했던 음주운전 사망자가 2014년 199명으로 급감했다. 국회 관계자는 “정치권은 물론 경찰까지 도입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초범 경우는? 비용은?... 해결 과제 산적

제주경찰청이 20일 제주 이도초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각론이다. 국회에 계류된 법안 중 상당수는 면허가 정지ㆍ취소된 음주운전자를 상대로 일정 기간(1~7년) 차량에 장치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상습 음주운전이 아닌 ‘초범’까지 범위를 넓힌 탓에 헌법이 금지한 이중처벌 소지가 있고, 윤창호법처럼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에 경찰청 차장을 지낸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장치 부착 대상 조건을 ‘3회 이상'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자로 세분화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관계자는 “상습 음주운전자로 범위를 좁히면 법적 안정성은 높아지나,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당 200만~300만 원의 설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도 쟁점이다. 50개 주 중 36개 주에 관련 제도가 도입된 미국은 운전자가 돈을 낸다. 이렇게 되면 금전적 부담이 큰 저소득층의 운전 기회를 박탈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화물차, 택시기사 등 ‘생계형’ 운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장치 관리 주체나 각종 꼼수 방지 방안 등 세부 논의 사항이 많이 남았다”며 “이제 겨우 첫발을 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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