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핵 협의그룹 창설, ‘韓 핵 족쇄’는 강화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핵에 대응하는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양국 ‘핵 협의 그룹’을 만들어 미국의 핵우산 제공 계획을 공유, 논의하고 핵 무기 탑재한 전략 핵잠수함, 항모, 폭격기 같은 미 전략 자산을 더 자주 전개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을 미국의 북핵 대응 계획에 통합해 훈련하고, 북한의 위협을 억지 또는 방어하는 각종 훈련도 강화한다. 북핵 위협이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한미가 나토의 ‘핵 기획 그룹’과 비견되는 핵 협의 그룹을 만들기로 한 것은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실체를 알지 못했던 미국의 핵우산 계획을 공유하고 유사시 핵우산이 즉각 작동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민의 불안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조치는 이번에도 없었다. 나토식 핵 공유의 기본은 핵탄두가 나토국 공군 기지에 있다는 것으로, 이번 한미 협의와는 완전히 다르다. 한미 간에 어떤 문서나 약속이 나와도 미국이 워싱턴과 뉴욕이 핵 공격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을 보호해줄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되지 못한다. 올 초 최종현 학술원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응답자의 절반은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핵 억지력을 행사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견해다.
한미 정상의 선언문에서는 이례적으로 한국의 NPT(핵 확산 금지 조약) 회원국의 의무를 강조했다. 한국은 핵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미국이 이를 막기 위해 이 문구를 넣었을 것이다. 미국은 브리핑을 통해 전술핵이나 어떤 형태의 핵무기도 한반도에 복귀시킬 계획이 없다고 했다. 전략 자산의 한반도 주변 영구 배치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핵 협의 그룹 창설을, 한국 핵무장과 전술핵 재배치 포기와 맞바꾼 모양이 됐다.
한국의 핵무장은 현실적으로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를 핵으로 공격하겠다고 거의 매일 공언하는 상황에서 주권국가가 국민을 지킬 수단에 대해 모호하게 처리하지 않고 명시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최근 미국의 외교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 NPT 위반이 아니란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당국자들도 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워싱턴 선언을 보면 미국은 북한 핵 무력화보다는 한국 핵개발을 더 우려하는 것 같다. 한미 동맹은 우리 안보의 초석으로 이는 앞으로도 바뀔 수 없다. 다만 우리를 지키는 쪽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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