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84] 투우, 드레스드 투 킬
투우는 흔히 ‘스페인의 영혼’으로 표현된다. 스피드와 용기, 기술, 그리고 동작의 우아함은 하나의 퍼포먼스를 넘어 매혹 그 자체로 다가온다.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힘에 도전하는 정신이 바탕이므로 투우에서 소가 이기는 법은 없다. 하나의 예술이나 종교적인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이 아니면 투우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고도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투우는 18세기에 가장 성행하였는데, 그때부터도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의식이었다. 수많은 스페인의 문학에 등장하고 ‘피와 모래’ 등의 제목으로 그림도 많이 그려졌다. 피카소와 고야도 자주 선택했던 소재다. 투우도 경기이자 행사이므로 이를 알리기 위한 홍보가 필요했다. 초기에는 회화를 사용하였으나 석판화의 발명 이후에는 포스터가 보편화되었다.
세비아의 투우장(Real Masetranza de Caradellia de Sevilla)은 1670년 지어져 무려 35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이다. 이곳의 기록실에는 약 6백여 점의 투우 그림과 포스터가 보관되어 있다. 포스터에는 날짜와 시간, 규칙 등이 다양한 글씨체로 적혀있고, 경기장의 분위기와 피 흘리는 소의 모습, 붉은 천, 주역 투우사인 마타도르(Matador)의 순간 동작 등이 묘사되어 있다. “옷을 끝내주게 잘 입었다”는 뜻의 영어 ‘드레스드 투 킬(Dressed to Kill)’을 직역한다면 아마도 투우사에게 가장 잘 적용되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인쇄되었으므로 포스터의 디자인에도 다양한 근현대 미술 양식이 반영되었다. 그중 눈에 띄는 작품은 단연 벨기에와 프랑스를 기반으로 한 ‘아르 누보(Art Nouveau)’ 양식의 포스터다. 다소 잔인한 행사를 위한 홍보 포스터에 가장 아름다운 예술사조 중 하나인 아르 누보 디자인이 적용된 건 아이러니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죽음을 암시하는 듯, 슬픈 이미지가 전달된다. 동물 복지 등의 이슈로 투우는 점차적으로 사라지는 추세다. 언젠가 투우가 없어진다면 이 현장을 기록했던 포스터의 가치는 또 다르게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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