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밤의 디스크쇼
요새도 그런 줄 모르지만 사람을 처음 만나면 취미나 취향을 먼저 묻게 된다.
속없이 나이나 몸무게를 물었다간 뼈도 못 추릴 수 있다는 것 명심. 어려서부터 음악과 동무해 지냈는데, 취미도 음악 감상, 음반이 늘자 음반 정리가 또 일이 되었다. 라디오나 듣고 말 걸 왜 요런 수집벽에 빠져들었는지. 돈은 돈대로 축나고, 구하고 싶은 음반이 생기면 먼 길을 찾아 나서는 열병에 걸렸다.
음반 한 장 올려놓고 책을 읽으면 비로소 쉬는 맛. 방해가 되는 TV나 각종 영화 서비스와도 굿바이 안녕했다. ‘고함치고 찌르고 베고 쏘고 욕하고 침 뱉는 영상들’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놀랍지도 않아. 우리 눈과 귀를 씻어야 해.
냉동고에서 말없이 자라는 얼음처럼 어딘가에서 조용히 자라는 어둠. 고요한 침묵의 밤을 가르는 낮은 볼륨의 노래.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디제잉을 하고 계실 이종환 아저씨의 오프닝 멘트. <밤의 디스크쇼> 추억의 시그널 음악을 깔고 한번 시작해볼까? 세네갈산 갈치와 칠레산 홍어를 먹듯 온 세상 노래를 찾아 들어본다.
페르시아 전설엔 사산 왕조의 바흐람구르가 궁궐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만명의 집시 곡예사와 악사들을 고용했대.
그런데 선불을 당겨 받은 자들이 딴마음이 들어 줄행랑, 각처에 숨어 정착했대. 그들은 어두운 밤마다 술집에 출몰하여 노래하고, 보스니아의 집시 음악 ‘세브다’를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르곤 했다지. 선불을 떼먹고 도망친 악사들을 잡으려고 검찰·경찰을 움직일 필요까지는 없겠다.
바흐람구르는 세상의 밤거리가 다 악사들로 재밌어졌다니 그로써 만족했대. 법보다 인정, 입만 열면 ‘법치, 법법’ 하는 자들이 법하고 가장 거리가 먼 거 같다.
임의진 목사·시인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사설] 이재명 선거법 1심 ‘당선 무효형’, 현실이 된 야당의 사법리스크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