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군악대 협연… 연평해전·천안함 유족 최고 예우한 음악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를 못 해요. 부모는 가슴에 묻습니다. 연평해전이 있었다는 것을 국민이 잊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요.”
26일 저녁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해군 호국음악회’에 참석한 황은태(77)씨가 이렇게 말했다. 황씨의 아들인 고(故) 황도현 중사는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고속정 357호의 벌컨포 사수였다. 마지막까지 방아쇠를 손에 쥔 채로 전사했는데 당시 나이는 22세였다. 참수리 고속정 모형이 있는 용산 전쟁기념관을 자주 찾는다는 황씨는 “손주들 손을 잡고 온 할머니들이 연평해전 전사자 부모들이 쓴 글을 보며 우는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황씨는 이날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고 민평기 상사의 형 민광기씨,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행사장에 입장하며 객석에 있는 약 2500명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날 음악회에는 황씨 말고도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희생자 유족 등 38명이 함께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그간의 행사 관례를 깨고 총리가 직접 유족 대표를 모시고 입장했고, 행사장 중앙에 총리와 유족 자리를 만들어 최고의 예우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2010년 천안함 희생자인 고 김경수 상사의 아내인 윤미연씨도 딸 다예양과 나란히 참석했다. 아들인 주석군은 당시 6살이었는데 지금은 대학에서 군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 유족들이 음악회 도중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카메라에 자주 포착됐다.
제2연평해전에서 29세의 나이로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동생 윤영민(46)씨는 몸이 불편한 부친 윤두호(82)씨를 대신해 참석했다. 해군사관학교 18기 출신으로 예비역 해군 대위인 부친은 아들에게 “나라에서 불러주는 것이 고마운 것 아니냐” “불러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참석하라”고 했다. 윤씨는 “세월이 지나 제가 전사한 형보다 훨씬 나이를 먹은 중년이 됐다”며 “처음에는 서툴렀고 시간이 지나 감정이 흐릿해진 부분도 있지만 국가가 ‘잊지 않겠다’는 취지로 챙겨주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유족들은 외교·안보 문제를 놓고 정쟁화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을 향해 “보훈에는 여야가 없다”며 뼈 있는 얘기도 남겼다. 황씨는 “국민이 반으로 갈라졌는데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특히 “(북한의 도발로) 그 많은 사람이 희생됐는데 정치권에는 여전히 북한을 추종하는 이가 많다”며 “정치하는 사람들 중 북한이 좋다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윤씨도 “나라를 지키다 숨진 분들에 대한 예우는 좌우 상관없이 똑같은 게 바람직하다”며 “외국처럼 누가 됐든 국가를 위해 목숨을 잃은 분들에 대한 예우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날 음악회에선 이덕진 소령과 윌리엄 매컬리 준위가 각각 지휘하는 우리 해군과 미8군 군악대가 협연하며 동맹 70주년의 의미를 더했다. 공연 연출가인 박칼린씨가 총연출을 맡았는데 6·25전쟁 때 파병된 미군이 들었던 매릴린 먼로의 대표곡을 비롯한 재즈와 컨트리음악, 부친이 참전 용사인 미 작곡가 로버트 스미스의 음악 ‘인천’ 등을 한미가 함께 연주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로이스 윌리엄스 예비역 해군 대령은 영상으로 보낸 메시지에서 “여러분의 위대한 나라와 협력을 이어나가고 있어 매우 기쁘다”고 했다. 한 총리는 “대한민국의 발전 저변에 굳건한 한미 동맹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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