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토일 다른 오페라 무대… 서울도 못하는 걸 대구는 한다
서울서도 못 하는 걸 대구는 해낸다. 올해 20년을 맞은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다소 독특한 일정으로 오페라 공연을 하고 있다. ‘토스카’(푸치니)와 ‘세비야의 이발사’(로시니), ‘피가로의 결혼’(모차르트) 등 서로 다른 세 편을 사흘 연속 무대에 올린 것. 금요일 밤에 ‘토스카’를 공연한 뒤 곧바로 토요일 낮엔 ‘세비야의 이발사’, 일요일 낮에는 다시 ‘피가로의 결혼’을 무대에 올리는 방식이다.
대학이나 소극장이 아니라 대형 오페라 극장에서 세 작품을 사흘 연속 공연하는 건 사실상 국내 처음이다. 오페라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무대 연출과 기술진까지 100여 명씩 붙어야 하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발 빠른 무대 전환이 쉽지 않다. 김수정 공연예술부장은 “연중 다양한 오페라를 선보이는 유럽형 극장 모델에서 착안했다”면서 “복합 상영관에서 다른 영화들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오페라도 관객들에게 골라 보는 재미를 선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페라 도시’ 대구의 저력은 무대 뒤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3일 이 극장에선 일요일 오전부터 무대 교체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쪽에선 대형 무대 세트와 조명 기기의 위치를 분주하게 바꾸면서, 다른 한쪽에선 동시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좌석(피트·pit)을 내리고 있었다. 무대·분장·의상·조명·음향 등 현장 인력 30여 명이 들러붙어서 불과 서너시간 만에 공연 준비를 마쳤다. 경력 20년 이효섭 무대예술팀장은 “연출과 무대 기술 인력까지 모든 인원이 치밀한 사전 논의를 거쳐서 공연 당일에는 약속된 작업을 한다. 타 지역에서는 쉽게 엄두 내지 못하는 일을 한다는 도전 의식과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2003년 개관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과거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공장 부지에 들어섰다. 1990년대 공장이 구미로 통합 이전한 뒤 대구시에 기부 채납했다. 한국 산업화의 요람이 지금은 지역 문화의 상징으로 변모한 것이다. 창업자인 호암(湖巖)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동상이 오페라 극장 앞에 있고 인근 도로가 호암로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관 이후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린 오페라 작품은 모두 219편. 501회 공연에 60만 관객을 끌어들였다. 유명 아리아들을 부르는 갈라 오페라와 오전 해설 음악회 등을 포함하면 100만명에 이른다. <그래픽> 2008년 모차르트의 초기 오페라들을 국내 처음 소개하는 등 수치 외에도 의미 있는 기록이 적지 않다. 지난해에는 나흘 공연에만 16시간이 걸리는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17년 만에 국내에서 공연했다. 이 때문에 당시 전국의 오페라 애호가들이 대구로 몰려드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대구오페라하우스 관장을 지낸 박인건 국립극장장은 “해외 오페라극장과의 교류, 광주 등 타 지역과의 협업 등 오페라를 통한 진취적인 기획도 활발한 편”이라고 했다.
모든 분야의 수도권 집중화를 우려하지만, 오페라만큼은 대구가 서울의 강력한 라이벌이다. 지난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오페라는 18편(64회). 대구오페라하우스도 11편(44회)에 이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공연 건수 역시 서울(35.5건)에 이어 대구(29.6건)가 전국 광역 시도 가운데 2위다. 현재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추진 중인 부산과 인천에도 대구는 ‘롤 모델(본보기)’이다.
대구 오페라의 연원은 6·25 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역 음악인들이 중심이 되어 대구가톨릭대·계명대·영남대·경북대에 음대와 음악학과를 설치했다. 여기서 배출된 성악가들이 1980~1990년대 대구오페라단·계명오페라단·영남오페라단 같은 민간 오페라단 활동을 이끌었다. 대구시립오페라단 초대 단장과 대구오페라하우스 초대 관장을 역임한 김완준 전 계명대 교수는 “대구·경북은 오페라단이 10여 곳에 이르렀을 만큼 지역 오페라 문화가 활성화된 곳”이라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도 성공 요인이다. 대구 출신 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씨는 “부산이 ‘영화의 도시’이고 예향(藝鄕) 광주와 전주가 전통음악의 본고장이라면 대구는 오페라·뮤지컬 같은 공연 장르를 통해서 적극적인 차별화를 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페라 도시’ 대구가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지난해 10월 대구오페라하우스 등 지역 문화·관광 6개 기관을 통합한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 출범했다. 그 과정에서 오페라 공연 예산이 10억원 가까이 삭감되는 진통을 겪었다. 유정우씨는 “극장 건물을 짓는 것은 성패의 절반일 뿐이며, 나머지 절반은 운영에 달려 있다. ‘오페라는 우리의 삶에 필수 불가결한 문화 예술’이라고 설득하는 일이야말로 한국 음악계의 향후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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