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고밀집 지하철 출퇴근 현장 보고서
지난 24일 오전 7시40분. 출근길 혼잡이 가중되기 시작하는 걸포북변역에서 김포공항행 김포골드라인 열차에 탔다. 옆으로 긴 좌석 사이 공간에 설 자리를 잡으면 그나마 낫다고 들었는데 비집고 들어갈 틈은 이미 없었다. 남은 건 양쪽 출입문 사이뿐. 밀리듯 열차에 오른 승객들은 일제히 돌아서며 가방을 앞섶으로 옮겼다. 눈앞에서 혼잡에 맞설 준비. 긴장이 감도는 무표정들이었다.
2분 후 사우역. 이번에도 4개 문마다 10여명씩 더 탔다. 그래도 아직은, 문 쪽에 서너명은 들어설 공간이 보였다. 다시 3분 후 풍무역. 20명 넘는 승객이 눈앞에 들어찼다. “밀지 마세요” “들어가주세요”.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젠 더 타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러나 4분 뒤 고촌역에서 승객이 ‘커팅’됐는데도 또 20명 남짓 탑승. 옴짝달싹 못하는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안 밀고, 안 밀리려는 안간힘.
7분 지나 김포공항역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풍선에서 빠지는 바람처럼 쏟아져 나왔다. 기나긴 16분, 그중 특히나 두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했던 마지막 11분은 ‘마의 구간’이었다. 승강장 벤치에 앉아 한숨 돌리는 이들이 몇몇 보였지만 대다수는 쏜살같이 환승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출근길은 이제 또 시작이다. 김포공항 환승통로와 9호선·5호선 승강장까지 인파가 넘쳤다.
같은 시간대, 같은 구간을 연결한 시내버스는 30분 이상 걸렸다. 출근시간대 버스 8대를 추가 투입한 긴급 대책이 시행된 첫날이었지만 버스 길은 여전히 막혀 유효하지 않았다. 골드라인 승객을 버스로 분산하지도 못했다. 이날 골드라인 이용객은 1주 전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혹시나 하고 버스로 향했던 시민들만 낭패를 겪은 셈이다. 도로 인프라가 그대로인데 버스만 늘리면 혼잡이 해소될까.
지난주 목요일에는 퇴근시간대에 가봤다. 오후 7시 무렵 김포공항역 출발편. 퇴근길 열차 내 혼잡 위험은 별로 없었다. 2량 편성의 열차 1대에 탑승 가능한 만큼의 승객만 승강장에 내려보내는 인원 통제가 이뤄지고 있었다. 대신 계단 두 개를 거쳐 승강장에 가기까지 10여분을 장사진 속에 기다려야 했다. 안전하려면 대기할 수밖에 없지만, 답답했다.
어쩌다 한 번 탄 것으로 매일 통근객의 애로를 헤아릴 수 없기에 주위에 물었다. 2020년 8월 김포시 걸포동 아파트 입주 후 골드라인으로 출퇴근하는 A씨(40). 2021년 3월쯤, 새 아파트 입주민이 몰린 시기부터 ‘지옥철’이 시작됐다고 기억한다. 열차 안에서 다리가 공중에 떴다는 느낌, 이러다 숨막혀 죽을 수 있겠다는 불안이 닥친 게 부지기수다. 내리자마자 어지럼증으로 벤치에 눕는 사람도 많았다. 서로 밀지 말라고 소리지르다가 내려서 싸우는 이들도 여럿 봤다. 고난과 공포의 출근길. 하지만 대안이 없다. 버스는 시간 늦어 포기한 지 오래다. “지하철이 있다고 해서 이사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김포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촌읍에 사는 B씨(42)는 “매일 2~3대는 기본인데, 8대까지 못 타고 보낸 적도 있다. 붐벼서 안 탄 게 아니라 탈 수 없어서 못 탔다”고 했다.
최근 김포골드라인에서 승객들이 잇따라 쓰러지자 정부와 경기도·김포시, 서울시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내년 9월로 예정된 열차 증편·증량 방안을 3개월 앞당긴다는 것 말고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도로 개선 없는 버스 확충은 임시방편일 뿐이고 수상버스 도입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혼잡한 역마다 안전·구급 요원을 배치한다는 게 그나마 새롭다. 이런데도 대책을 짜내기에 앞서 네 탓, 남 탓, 전 정부 탓, 현 정부 탓하며 설전을 벌이는 정·관계 인사들이 여전하니 시민들은 더 속터질 노릇이다.
우리는 밀집의 시대에 살고 있다. 비좁고, 높고, 빽빽한 삶을 산 지 꽤 오래됐다. 빨리, 높이, 고층으로 올리고 붐비며 사는 것이 개발과 성공의 척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밀집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저해한다. 과밀은 사람과 인프라를 마비시키는 위험을 낳는다.
지금 김포골드라인을 말하는 것은 일상의 밀집 위험에 둔감해지는 일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이태원 참사를 겪고도 이런 위험이 별일 아닌 양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적당히 알아서 피하라고 할 일이 아니다. 김포골드라인은 도처에 널려 있다. 혼잡시간대 버스나 지하철은 물론이고 비좁은 통로·건물에 인파 몰리는 축제·이벤트 현장까지. 만원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볼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은 버려야겠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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