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공범된 공인중개사

이은정 기자 2023. 4.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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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복덕방'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다.

소설가 이태준의 1937년 단편작품 '복덕방'에도 주인공 노인 3명이 무료함을 달래는 곳으로 나온다.

1983년 부동산중개업법 제정과 공인중개사 도입으로 복덕방은 부동산중개업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공인중개사들은 중개업을 비하하고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복덕방, 복비라는 말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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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복덕방’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다. 복과 덕을 불러준다는 주역의 ‘생기복덕’에서 유래한 말이다. 1970년대만 해도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다. 소설가 이태준의 1937년 단편작품 ‘복덕방’에도 주인공 노인 3명이 무료함을 달래는 곳으로 나온다. 1983년 부동산중개업법 제정과 공인중개사 도입으로 복덕방은 부동산중개업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공인중개사들은 중개업을 비하하고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복덕방, 복비라는 말을 싫어한다. 대부분 공인중개사들이 본분에 충실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전국적으로 잇따르고 있는 전세사기에 연루된 일부 공인중개사를 보면 과연 국가가 인정하는 전문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은 건축업자와 가짜 임대인 등이 짜고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챙긴 뒤 깡통전세만 남기는 과정에 공인중개사가 적극적으로 가담해 피해가 컸다. 이들은 빌라 사기꾼에게 월급 200만~500만 원과 함께 성과급을 받으며 세입자를 끌어 모았다. 이들은 전세 매물에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데도 ‘시세가 훨씬 높다’며 세입자를 안심시켜 계약을 유도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대부분 대학 신입생, 취업준비생 등 부동산 계약 경험이 미숙한 청년층에 집중됐다.

집 계약을 할 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공인중개사인데 피해자들은 높은 수수료를 내고 사기를 당한 셈이다. 하지만 공인중개사의 고의나 과실을 세입자가 입증해야 해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공인중개사법은 중개사에게 중개 대상물(부동산)의 소유권·저당권 등 권리관계에 관한 사항을 세입자에게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중개사가 집주인의 세금 미납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이는 설명 의무 대상에서 빠져 있다. 세입자가 보증보험을 들어도 집주인의 세금 체납 때문에 우선순위에 밀려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다. 정부는 오는 6월 공인중개사가 신용정보시스템을 통해 임대인의 세금체납 정보나 주택의 선순위 권리관계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중개사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피해 배상금이 한정돼 있는 것도 문제다. 보상총액은 중개사무소당 최대 1억 원 또는 2억 원에 불과하다. 거래 한 건당 많게는 수천만 원의 중개수수료를 받는 공인중개사의 배상 책임한도가 최대 2억에 불과해 소비자 보호에 미흡하다. 정부는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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