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부산이 서울에게
자꾸 이거 달라, 저거 좀 나누자 그래서 면목 없다.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는 줄 게 없다. 400만을 거뜬히 넘길 줄 알았던 인구는 어느새 330만으로 쪼그라들었으니, 더 보내줄 사람이 없다. 여기서 키운 젊고 똘똘한 인재는 어차피 생존을 위해 그쪽으로 갈 것이니 섭섭해하지는 마라.
우리 청년을 그렇게나 많이 받아주는데 변변한 기업이라도 하나 보내주고 싶지만, 없다. 기업이 없다. 삼성의 출발이었던 제일제당, LG화학·LG전자의 전신인 럭키화학·금성사 등 굴지의 대기업이 원래 여기서 태동했다. 1972년 정부가 “부산에 너무 많은 공장과 사람이 몰렸다”며 지방세를 5배 중과하고, 1982년 공장 신설을 억제하면서 이곳은 성장이 멈췄다. 기업이 그쪽으로 다 떠났다. 뭐, 괜찮다. 이제 와서 생색내려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의 수도권 규제가 그때와 달리 불합리하다는 말은 하지 말자.
여기보다 5000만 평(165㎢)이나 좁은 땅에 1000만 명 가까운 사람이 빽빽하게 모여 사는 소식은 익히 들었다. 땅이라도 좀 떼어주고 싶으나, 이걸 옮길 방법이 없으니 답답하다. 와서 땅을 마음껏 사용하라고 해도 그쪽에선 그럴 생각이 없으니, 우리로서도 답이 없다. 출산·육아·교육·문화·의료 인프라도 그쪽 앞에 내밀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그나마 신공항은 눈물겹게 따냈다. 우리도 24시간 운영하는, 유럽·미국으로 통하는, 복합 물류 기능을 갖춘 안전한 공항 하나 갖고 싶다고 지난하게 외쳤다. 대통령이 검토를 지시한 2006년부터만 계산해도 17년이다. 그쪽 언론과 정치권은 ‘고추 말리는 공항’에 이어 ‘떡 주무르듯’ ‘안전 역주행’ 등 표현을 써가며 아직도 조롱한다. 뭐, 그 또한 괜찮다. 염려해주는 마음으로 생각하겠다.
국책은행도 다 그쪽 차지다. 산업·기업은행이 투자하는 벤처기업 중 75~80%가 수도권에 있다. 이쪽에 떨어지는 가벼운 콩고물이라도 털어내 좀 더 보태주고 싶지만, 몇 안 되는 이곳 기업의 숨통마저 끊을 수 없는 노릇이니 이해해 달라.
그래도 그쪽에 줄 게 뭐 하나는 있지 않을까, 재차 삼차 고민하던 중 번뜩 떠올랐다. 거기에 원자력발전소 하나만 짓자! 차등 전기요금제가 포함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안’이 지난달 말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데서 착안했다. 송전·배전 비용을 반영해 지역별로 요금을 다르게 매기는 법안이다. 전기를 많이 생산한 지역은 요금이 내려간다. 반대로 전기를 만들지 않고 먼 동네서 얻어 쓰는 지역은 요금이 올라간다. 알다시피 ‘원전 도시’ 부산의 전력 자급률은 지난해 216.7%로 전국 1위다. 필요 이상 전기를 만든다. 반면 서울은 고작 8.9%, 경기는 61.0%다. 이런 상황에서 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 그쪽은 비싼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거기서 여기 신공항을 염려하듯, 우리도 그쪽 전기요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원전을 기꺼이 나눠주겠다. 마침 1983년부터 40년간 부산에서 쉬지 않고 전기를 생산한 고리2호기가 이달 초 운영 허가 만료로 ‘일단’ 멈췄다. 정부가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장려하는 원전이니, 이걸 그쪽에 양보하겠다. 그러면 법이 시행돼도 그쪽 역시 비싼 전기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잖아도 2042년까지 수도권에 300조 원을 들여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는다고 하지 않나. 이 클러스터에서만 연간 국내 산업용 전력의 20%를 써야 한다는데 미리 대비해야 하지 않겠나.
정말 다행인 건, 법을 고칠 필요도 없다. 산업은행을 옮기려면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적힌 산업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쪽이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 불법이라고 문제 삼는 근거다. 그러나 ‘원전을 부산광역시에 둔다’고 정한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잘된 일이다. 원전 주변 지원금에다 차등 전기요금제까지 적용하면 이중 ‘혜택’이라는 말이 그쪽에서 또 흘러나온다. 여기서는 ‘보상’이라고 여기는데 거기서는 생각이 다른가 보다. 그렇다면 그 ‘혜택’을 나눠주겠다. 사양하지 말기를. 행여 그쪽 정치권이 쌍심지 켠다면, 나서서 설득해주기를 바란다.
권혁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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