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깡통전세’ 두려워… 소형 아파트로 몰린다
직장인 이모(32)씨는 이달 초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전용 37㎡ 아파트 전세를 보증금 2억6000만원에 계약했다. 최근 전국적으로 빌라를 중심으로 한 전세 사기가 급증하자, 현재 거주 중인 인근 신축 빌라 전세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아파트 전세로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씨는 “2년 전만 해도 오래된 아파트는 살기 불편하고 전세가격도 비싸 별생각이 없었다”며 “하지만 빌라는 사기를 당할까 무서워, 낡았지만 아파트로 옮기기로 했다”고 했다.
전세 사기 우려로 세입자들이 빌라를 꺼리면서, 아파트로 전세 수요가 다시 몰리고 있다.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은 3만8076건으로 1년 전(3만8416건)과 거의 비슷해졌다. 작년 4분기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이 1년 전보다 15%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아파트 전세 거래가 부동산 가격 급락 이전인 작년 상반기 수준으로 회복된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최근 시중 금리 하락으로 대출 이자 부담이 낮아지면서, 월세를 선택하던 세입자들도 다시 전세로 돌아오고 있다”며 “작년 하반기 급락했던 아파트 전셋값도 소형 평형부터 서서히 회복 중”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전세 거래 회복
원래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아파트의 전세는 빌라보다 선호도가 높다. 하지만 2020년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아파트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청년층과 서민들의 전세 수요가 아파트보다 저렴한 빌라나 오피스텔로 옮겨갔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부터 아파트 전셋값이 폭락하고 최근 빌라 전세 사기마저 잇따라 발생하자, 빌라로 떠났던 전세 수요가 다시 아파트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 ‘방화5단지’의 경우 지난달 체결된 전용 33㎡ 전세가격이 1억5000만~2억원으로, 2021년 6월 최고가(2억5000만원)보다 최대 40% 내렸다. 강서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전세 사기 사건이 터진 화곡동 빌라에 살던 세입자들이 강서구 내 구축 아파트로 많이 옮기는 추세”라며 “좁고 낡더라도 보증금을 떼일 우려가 적은 아파트를 찾는 청년이 많다”고 했다.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아파트 전세 매물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2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4만1369건으로, 한 달 전(4만5544건)보다 9.2% 줄었다. 연초(5만4666건)와 비교하면 24.3% 급감한 수치다. 아실 관계자는 “작년에 쌓였던 아파트 전세 매물이 지난 2월 이후 대거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락하던 아파트 전셋값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1월 초만 해도 주간 아파트 전셋값 하락률은 1% 안팎을 기록했는데, 지난주(17일 기준)에는 -0.17%까지 낙폭이 축소됐다. 올해 1월 둘째 주(-1.11%) 이후 13주 연속 하락폭이 줄어든 것이다.
◇빌라 대신 소형 아파트 전세
아파트 중에서도 빌라 전셋값과 비슷한 소형 아파트 전세에 대한 선호가 높다. 서울에서 빌라가 가장 밀집한 지역인 강서구의 경우 소형 아파트 전세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난달 체결된 아파트 전세 거래 801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54%(432건)가 전용 60㎡ 미만 소형 아파트로 집계됐다. 서울 전체 전세 거래 중 소형 비율이 41.2%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13%포인트 가까이 높은 것이다. 강서구 가양동 ‘가양2단지’의 경우 3월 한 달 동안에만 전용 34~49㎡ 전세가 24건 체결됐다. 전용 34㎡의 경우 전세보증금이 1억5500만~1억9500만원 수준으로 빌라 전세가격과 크게 차이가 없다.
빌라와 비교할 때 아파트는 시세를 쉽게 알 수 있어, 전세 사기의 가능성이 낮은 것도 장점이다. 상대적으로 전셋값 대비 매매가격이 높아, 만약 경매로 넘어가도 보증금을 회수할 가능성도 크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지난 2월 기준 서울 빌라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70.0%에 달하는 반면, 아파트 전세가율은 53.6%로 낮다.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깡통 전세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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