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지침이 기술발전을 가로막지 말아야

경기일보 2023. 4. 2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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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섭 수생태복원㈜ 대표이사·환경공학 박사

국가가 직접 또는 국고를 보조해 시행하는 사업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원활하게 수행되도록 하기 위해 국가에서는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는 다양한 지침과 매뉴얼을 작성해 운영하고 있다.

지침이나 매뉴얼은 사전적 의미로 ‘생활이나 행동 따위의 지도적 방법이나 방향을 인도해주는 준칙’을 말한다. 일정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업의 실패를 최소화하고 누구나 쉽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말 그대로 방법이나 방향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침과 매뉴얼이 조금이라도 과학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강우 시 인근 하천으로 유입되는 비점오염물질의 저감과 관련된 지침이나 매뉴얼을 예로 든다면 대표적으로 ‘비점오염저감시설 성능검사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과 ‘비점오염저감시설의 설치 및 관리·운영 매뉴얼’이 있다. 규격화된 형태로 제조되는 비점오염저감시설을 개발하고 적용하고자 하는 사업자는 이 규정과 매뉴얼에서 제시하는 형식 및 종류 범위에 포함된 제품을 정해진 규격의 시제품으로 만들어 부유물질(SS) 제거효율 80% 이상을 만족하는지에 대한 제품의 저감효율과 기술적 타당성 및 유지관리 적절성 등을 평가하는 환경부 성능검사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조잡하고 성능이 낮은 제품들이 국민 세금으로 시행하는 국책사업에 무분별하게 적용 및 난립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일정한 자격기준을 두는 셈이다. 

반드시 필요한 절차와 과정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규정과 매뉴얼에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인 제품의 성능 외에도 형식과 그에 따른 규격 등을 반드시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과형의 경우 일정한 규격의 전처리조를 반드시 구비하고 일정한 두께의 여과재를 충진해야 하며 반드시 역세척을 실시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 중 단 한 가지만 부족해도 성능검사 통과가 매우 어려워 사업은 아예 불가능하다. 역세척하지 않고도 목표 효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한다 해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0개의 기술을 접목해야 하는 것을 단 하나의 기술로 성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혁신 생태계는 요원한 시스템이다.

자칫 지침과 매뉴얼이 혁신의 발목을 잡는 돌이킬 수 없는 규제가 될 수도 있다. 지침과 매뉴얼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특히 저감효율 같은 본래의 핵심적인 제정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지에 방점을 둬야 하고 끊임없는 새로운 기술의 출현과 개발 및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칫 이러한 지침과 매뉴얼, 심지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마저 틀에 박힌 기존의 정형화된 기술의 답습과 반복에 가둬 신기술의 개발을 가로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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