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장애인을 위한 기술, 모두를 위한 기술
나는 지독한 ‘길치’다. 그런 나에게 길안내 앱은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이 밖에도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아니게 만들어 준 기술은 많다. 안경이 그렇고, 보청기가 그러하다.
몇 년 전 복지기술 연구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노인, 장애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을 위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그런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고 보급할 수 있는지 진지한 아이디어들이 오갔다. 마침 그 지역의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장애인 평생교육 활성화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토론자였던 청각장애인 시의원이 청각장애인에게도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주최 측의 다급한 요청에 ‘실시간 음성-텍스트 전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IT분야 연구자를 연결해 줬다. 발표가 물 흐르듯 텍스트로 전환돼 송출되는 흐뭇한 장면을 기대하며 참석했지만, 속기사가 쳐낸 문자들을 모니터에 띄워 보여주고 있는 광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기술은 있는데 아직 상용화가 안 돼 활용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소위 고급연구자일수록 첨단기술에 매진하다 보니 적정기술 개발과 상용화에는 관심이 덜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난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국립재활원이 장애인을 위한 적정기술 보조기기 확산에 나서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전동휠체어 후방카메라나 손톱깎이, 포장지 뜯기 등 전혀 ‘첨단’스럽지는 않지만,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들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전 인구의 5.2%인 265만2천860명이 등록장애인이다. 전년 대비 8천명이 늘어났고, 고령화에 따라 65세 이상 장애인의 비율도 52.8%로 늘어났다(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이미 20명 중 한 명은 장애인이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임이 분명하다. 장애인 등록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일상생활이 불편해질 만한 질병이나 장애를 가질 수 있다. 이제 장애는 모든 국민의 문제이기에, 장애인을 위한 기술은 모두를 위한 기술이기도 하다.
“차별은 없이, 기회는 같이, 행복은 높이”라는 장애인의 날 캐치프레이즈를 보며, 올해도 꿈꿔 본다. 어디에서나 안내방송을 문자로 볼 수 있고 안내문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기를, 모든 교통수단이 교통약자를 위한 특장차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어느 기관의 홈페이지에서나 이주민이나 지적장애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말 버전을 찾아볼 수 있기를, 무엇보다도 모든 기술에 능력이 조금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꼭 들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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