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소송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기자 2023. 4. 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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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 음력 3월2일 오후, 젊은 최흥원은 문중의 소송 문제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관아로 옮겼다. 소송 자체를 꺼리는 문화 탓에 다툼의 이유와 내용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없지만, 칠곡 수령과 대화한 내용을 보면 문중 내 재산 분할 문제가 조상의 무함(誣陷)으로까지 비화된 듯했다. 쉽게 풀기 힘든 소송이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칠곡 수령은 판결보다 문중 내 합의를 주문했고, 이를 통해 소송은 비교적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관아에서는 이를 증명하는 관문을 작성했고, 최흥원은 선조 이름이 담긴 문서가 관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 급한 걸음을 했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관문을 받아들고 관아를 나가려는 최흥원을 수령이 잠시 불러 세웠다. 그는 지역에서 최흥원과 그의 문중이 가진 위상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조심스럽지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소송 내용이야 합의가 끝났으므로 재론할 내용이 없지만, 모범이 되어야 할 문중이 소송까지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을 전해왔다.

선대에 왕세자를 가르치는 왕자 사부를 배출할 정도의 문중이라면, 화해와 양보를 통해 소송 자체를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는 게 하고픈 말의 요지였다. 조상의 명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송을 했다는 최흥원의 말에도 수령은 “너희가 조상의 허물을 가리기 위해 소송을 했다고 하지만, 결국 드러난 것은 조상의 허물이다”라고 말하면서, 충고를 이어갔다. 조상들은 후손들의 화목을 강조했을 터인데, 소송을 통해 조상 허물 덮으려다 오히려 조상의 가르침을 어겼으니, 결과적으로는 조상들의 허물만 드러낸 꼴이 되었다는 말이다.(출전: 최흥원, <역중일기>)

현대 관점에서 보면 칠곡 수령의 충고는 오지랖 넓다는 비판을 받기에 딱 좋을 듯하다. 그러나 최흥원은 이 충고를 진심 어린 태도로 받아들였다. 도덕 수양을 통해 자기 도덕성을 이뤄야 하는 유학자 집안에서 소송할 일을 만들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 마음을 담아 앞으로 모든 일에 문중의 화합을 우선할 것이라고 수령과 약속하면서,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이미 다짐하고 있었다. 더불어 수령이 판결보다 소송 당사자 간 합의를 우선했던 태도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했다. 분쟁을 대하는 수령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모범적인 태도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태도는 유학 이념에 따라 살았던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소송에 대한 관점을 잘 보여준다. 개인의 도덕 수양을 통해 아름다운 도덕공동체 실현을 목표로 했던 유학 이념에 비춰 보면, 소송은 최악의 해결 방식이었다. 공자가 “송사를 심리한다면 나도 다른 사람처럼 결단하겠지만, 나는 먼저 사람들 사이에서 결코 쟁송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논어> ‘안연’)고 말한 데서 나온 유학의 이념 때문이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소송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유학은 사욕을 줄이거나 없애는 도덕 수양을 통해 소송 없는 사회를 목표로 했다. 이런 이유에서 조선의 좋은 지방관은 도덕적 교화를 통해 자기 지역 내에서 소송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사람이었다. 훌륭한 판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판결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좋은 도덕 선생님이 필요했다.

소송은 사욕과 사욕의 충돌을 법의 이름으로 강제 조정하거나, 도덕의 선을 넘은 사욕을 국가 권력의 이름으로 처벌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사욕이 도덕 수양을 통해 억제되고, 억제된 사욕 위로 이타적 감정이 흐르면 소송은 필요 없다. 최소한 이념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이게 이념이라 해도, 한 사회가 이런 이념을 목표로 하면, 그만큼 소송은 줄고 양보와 합의는 문화로 자리 잡기 마련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소송을 경시하고, 훌륭한 지방관의 자질을 중재와 교화에서 찾았던 이유다. 합의와 양보가 미덕이어야 할 정치권마저도 일만 발생하면 재판정부터 찾는 현대 사회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문화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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