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동호회가 만든 극장, 동호회가 만든 장르
1555년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 비첸차. 한 무리의 신사들이 모여 '올림픽 아카데미'라는 동호회를 만들었다. 철학자, 수학자, 음악가, 의학자, 천문학자, 건축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21명의 전문가가 예술에 대한 관심을 공통점으로 모였다. 이들은 중세 신본주의 예술을 대신할 인본주의 예술을 연구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전후 피렌체와 베네치아로 흘러든 고대 그리스의 서적 중 비극 대본들에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유럽 중세 1000년 동안 그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신화는 기독교였다. 그러나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쓸고 간 이후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그들의 가치관도 바뀌었다. 때마침 유입된 고대 그리스의 학문과 예술자료들은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인간적 신화를 가득 담고 있었다. 그들은 즉시 거기에 매료됐다. 올림픽 아카데미 회원들은 고대 그리스의 연극이론 서적과 희곡작품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역할을 나눠 대본을 읽었다. '낭독공연'이었다. 그러다가 실제 공연을 올려보기로 뜻을 모았다. 실제 극장이 필요했다.
회원 중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있었다. 그동안 고대 극장들을 연구해온 그는 흔쾌히 설계를 맡았다. 건축비용은 회원들이 부담했다. 극장에 그들의 조각상을 하나씩 세우는 것이 조건이었다. 1580년 건축이 시작됐다. 그러나 72세의 팔라디오는 건강이 악화해 완공을 보지 못했고 그의 제자 빈첸초 스카모치가 건축을 이어받아 1585년 완공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극장을 실내에 구현하고 영구적인 무대장치를 갖춘 1000석 규모의 이 극장은 '올림픽극장'(Theatro Olimpico)으로 명명됐다. 첫 공연은 고대 그리스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이었다. 이 최초의 르네상스 실내극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적 극장의 하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1573년 이탈리아의 또 다른 도시 피렌체. 은행가 바르디 백작의 저택에 한 무리의 신사들이 모여 '카메라타 데 바르디'라는 동호회를 만들었다. '바르디의 방'에 모인 인문학자, 음악가, 시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의 관심사도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의 예술형태와 스타일로 돌아가면 현 시대의 음악과 예술이 향상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대본을 분석해 고대의 공연형태를 파악하고자 했다. 연구결과 고대 그리스 비극은 단순한 대사연극이 아니라 음악극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다프네'라는 음악극을 만들었다. 오타비오 리누치니가 대본을 쓰고 야코포 코르시와 야코포 페리가 작곡했다.
그들은 이 새로운 예술장르를 '음악 속의 작업'(opera in musica)이라고 불렀다. 오페라의 탄생이다. 1598년 초연된 이 최초의 오페라는 현재 극히 일부분만 전해진다. 그러나 곧 현존하는 최초의 오페라가 만들어졌다. 이 회원들이 만든 '에우리디체'가 1600년 피렌체에서 초연됐다. 이후 오페라는 삽시간에 이웃 도시와 국가들로 퍼져나갔다. 새로운 장르는 새로운 극장을 필요로 했다. 1637년 베네치아에서는 최초의 상업적인 오페라극장 '산 카시아노'가 건축됐다. 이후 1700년 무렵에는 베네치아에만도 10여개 오페라극장이 성황리에 운영됐고 유럽 전역에 오페라극장들이 세워졌다. 오늘날 우리가 가는 극장의 형태는 이 오페라극장들에 직접적인 뿌리를 두고, 오페라극장은 올림픽극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기 위해 르네상스 최초의 실내극장을 지어버린 올림픽 아카데미, 고대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려다 오페라를 발명해버린 카메라타 데 바르디.
동호회의 힘, 동호회를 지원하는 기업가의 힘이 만들어낸 극장의 역사다.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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