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전기요금 인상을 당이 결정한다고?
원가의 70%도 안 돼 팔수록 손해
언제까지 과거 정부 탓만 할 건가
시장원리 따른 가격 정상화 시급
지난 1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뉴욕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묻는 기자들에게 “(전기요금은) 최종적으로 (여)당에서 판단할 부분이다”라고 했다. 2분기(4∼6월) 전기요금 결정 권한을 당으로 떠넘긴 셈이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북한의 체제선전 구호와 무엇이 다른가.
요금 인상 없이 연말까지 회사채(한전채) 발행으로 버틴다면 지난해 한전채 발행 한도를 ‘적립금과 자본금 합(合)의 5배’로 상향 조정한 데 이어 내년 3월 또다시 법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전은 올해 4월 중순까지 7조2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시중의 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대기업들의 회사채마저 외면받는 자금시장의 왜곡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손양훈 인천대 교수가 최근 간담회에서 “지난해 회사채 발행 규모 47조원 중 한전채가 32조원대다. 연못에 고래 한 마리가 들어앉은 격”이라고 비판했겠는가.
전기요금 결정 권한은 정부에 있다. 한전이 산업부 장관에게 요금 조정을 신청하면 물가 당국인 기재부 장관과 협의 후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 그런데도 2분기 전기·가스요금을 결정하기 위한 네 차례 당정협의에선 ‘보류, 연기, 신중, 검토’ 같은 단어만 난무했다. 불과 얼마 전 “전기·가스료를 왜 제때 올리지 않았냐”며 문재인정부로 화살을 돌리던 윤석열정부가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는 건 볼썽사납다. 직전 정부 책임도 적지 않다.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한전은 탈원전 정책 여파로 최근 5년간 26조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했다.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완공된 원전 가동을 미루면서 비싼 LNG 활용에 매몰되면서 비용부담이 급증한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과거정부 탓만 하고 있을 건가. 2020년 8월, 23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 폭등이 이어지자 당시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부동산 폭등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는 이명박·박근혜정부 9년간 누적된 부동산 부양책 때문”이라고 했다. 집권 4년 동안 ‘그동안 민주당은 뭐했냐’는 여당 무능론만 부각시킨 자충수였다.
내년 총선을 의식해 요금 결정을 미적댄다면 오판이다. 에너지 요금에 정치가 개입할 여지를 둬서도, 끼어들어서도 안 된다. 한전의 자구노력은 필요하다. 천문학적 재정난에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한전은 2만3563명의 직원 중 15.2%가 억대 연봉자다. 급기야 정승일 한전 사장은 지난 21일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인건비 감축, 조직 인력 혁신,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및 국민 편익 제고 방안이 포함된 추가 대책을 조속한 시일 내 마련·발표하겠다”고 밝혔다. 5년간 20조원의 재정 건전화 추진계획을 추진하고, 올해 임직원 임금 인상분 반납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만이 해답일 수는 없다. ‘폭탄 돌리기’는 위기를 키울 뿐이다. 전기요금 인상이나 한전의 빚더미 모두 국민 부담이다. 에너지 요금 결정 과정에서 정치 거품을 빼고 전기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해 시장원리에 기반한 가격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이참에 산업구조를 에너지 저소비·고효율 구조로 바꾸고, 자발적 에너지 절약에도 나설 때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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