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승현 "블론 세이브는 기억하고, 오늘 세이브는 잊겠다"
(대구=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이승현(20·삼성 라이온즈)은 블론 세이브(세이브 실패)를 범했던 21일 KBO리그 역대 최고 마무리 오승환(40·삼성)으로부터 장문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받았다.
"투수에게는 잊어야 할 경기가 있고, 기억해야 할 경기가 있다"라는 문장이 이승현의 뇌리에 박혔다.
올 시즌 처음이자, 개인 통산 두 번째 세이브를 올린 26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만난 이승현은 "블론 세이브를 범한 21일 KIA 타이거즈전은 기억해야 할 경기다. 오늘 경기는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웃었다.
하지만, 삼성 팬들에게 이날 이승현의 세이브는 꽤 오래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이승현은 1-0으로 앞선 8회말 2사 1루에 등판해 1⅓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 2탈삼진으로 막고, 팀 승리를 지켰다.
이승현이 세이브를 거둔 건, 2022년 4월 29일 KIA전 이후 1년 만이자 개인 통산 두 번째다.
이날 이승현에게 공을 넘긴 투수는 KBO리그 개인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374개)을 보유한 오승환이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지난 20일 "오승환이 자신감을 잃은 것 같다. 코치진 회의를 했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라며 "마무리 자리를 이승현에게 맡긴다"고 밝혔다.
8회 등판한 오승환은 2사 1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고, 이승현이 김재환을 삼진 처리하며 이닝을 끝냈다.
이승현은 9회 첫 타자 양의지의 좌중간으로 날아가는 공을 중견수 김성윤이 다이빙 캐치해 첫 아웃카운트를 잡고, 호세 로하스는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강승호와 허경민에게 연속 안타를 맞아 2사 1, 3루에 몰렸지만, 이유찬을 2루수 옆 땅볼로 잡아내 세이브를 챙겼다.
경기 뒤 만난 이승현은 "지난해 4월에는 마무리 투수가 아니었는데, 얼떨결에 세이브를 거뒀다. 오늘은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세이브를 챙겨, 내겐 의미가 더 크다"고 했다.
그러나 이승현은 "오늘 경기는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기억해야 할 경기는 따로 있다"며 시즌 첫 세이브를 거둔 날, 블론 세이브를 범한 쓰린 기억을 떠올렸다.
이승현은 '마무리 투수'로 공인된 후 처음 등판한 21일 KIA전에서 패전 투수가 됐다.
팀이 4-2로 앞선 9회말에 등판해 이창진에게 안타, 소크라테스 브리토에게 볼넷을 허용한 뒤 최형우에게 끝내기 역전 3점포를 얻어맞았다.
당시 경기 뒤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 자리를 이어받은 후배 이승현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격려했다.
오승환의 메시지에 담긴 속뜻을 알아차린 이승현은 21일 KIA전을 머릿속에 새기기로 했다.
이승현은 "솔직히 불론 세이브를 하고서 힘들었는데 오승환 선배를 비롯한 많은 분이 격려해주셨다. 격려받다 보니, 내가 위축될 필요가 없겠더라"며 "좋지 않은 기억에서 고칠 점을 찾아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겠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실제로 이승현은 26일 두산전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
위기도 있었지만, 당당한 투구로 극복했다.
이승현은 "9회 2사 1, 3루에서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만루에 몰리면 더 힘들어진다. (포수) 강민호 선배님만 믿고 과감하게 던졌다"고 밝혔다.
한국 불펜 투수들에게 오승환은 '우상'이다.
오승환보다 스무 살 어린 이승현은 "오승환 선배님이 대구 시민구장에서 던지실 때부터 선배님을 응원했다. 선배님을 보면서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며 "솔직히 코치님께 '오늘부터 마무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오승환 선배님이 있는데, 내가 그 자리를 맡아도 되나'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오승환은 압박감이 큰 자리를 맡은 후배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오승환의 도움 속에 이승현은 차분히 실패 과정을 되돌아본 뒤, 다음 등판에서는 세이브를 챙겼다.
이승현은 "보직에 관계 없이 항상 견고하게 마운드를 지켜 팀 승리를 돕고 싶다. 팀과 팬들이 걱정하시지 않게, 선배들과 힘을 합해 경기 후반을 잘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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