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으로 변호사가 되기까지…그는 ‘싸움닭’이 됐다
시각장애인 교재 확보부터
시험 과정 등 매 순간 “벼랑”
비장애인에 맞춰진 기출문제
법무부와 다퉈 받아내기도
제12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 날인 지난 21일, 김진영씨(30)는 아침부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발표를 6시간도 넘게 앞둔 때였다. 두근거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오후 5시20분,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내가 아는 사람은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 다 확인했다.” 스터디원의 연락이었다.
김씨의 이름이 컴퓨터에서 음성으로 나오기까지 채 몇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김씨는 대여섯번 더 들으며 수험번호를 확인했다.
김씨는 시각장애인이다. 한쪽 눈은 원래 시력이 없었고, 다른 쪽은 잔존시력이 0.2 정도에 불과했다. 열한 살 때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우스가 보이지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망막박리로 김씨는 약 일주일 만에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 후로 김씨의 삶의 폭은 눈에 띄게 좁아졌다. 전학 간 특수학교에선 “특수교사, 안마사, 음악, 사회복지사 중에서 뭘 할 거냐”는 질문을 수시로 들었다. 나중엔 ‘음악’을 상당히 강조했다. “학교에선 일반과목보다는 음악을 주로 가르쳤어요. 공부 쪽으론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죠. 학교에서는 음악이 중요하다 하고, 저는 공부하겠다고 하고, 그림이 이상했죠.”
공부는 쉽지 않았다. 책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김씨는 “일반 책을 볼 수 없으니 교재 원본 텍스트 파일을 받아야 하는데, 이걸 제공해주는 저자를 찾기 어렵다. 저자 연락처를 구하는 것부터가 일”이라고 했다.
2018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도, 변호사시험을 준비할 때도 교재 확보가 가장 큰 문제였다. “법서는 한자가 많고 음영이나 밑줄도 많아서 광학문자판독(OCR)을 해도 문자가 깨지거나 인식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양도 많아서 봉사자들한테 타이핑해달라고 맡기기도 어렵죠. 1000쪽이나 2000쪽짜리 책이 기본이니까 한 권이 완성되는 데 3개월, 길면 1년도 걸려요.”
외줄타기 인생은 ‘싸움닭’을 만들어냈다. 법무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변호사시험 기출문제를 공개하는데, 이 중 일부를 이미지 파일로만 제공했다. 김씨는 “노트북에 있는 음성 프로그램으로 한글 파일을 열면 프로그램이 내용을 읽어주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데, 이미지 파일은 인식이 안 돼 법무부 측에 파일을 달라고 했더니 해괴망측한 핑계를 댔다”고 했다. 처음엔 “원본 파일을 삭제해서 없다”고 하더니 나중엔 “비장애인에겐 안 주고 장애인만 줄 수 있느냐,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씨가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끝에 장애인이 요청하면 법무부가 기출문제 한글 파일을 제공하는 것으로 다툼은 일단락됐다. 시험을 치르는 과정도 김씨에겐 쉽지 않았다. 김씨는 시험 첫째날 법무부가 제공한 노트북이 10번 넘게 꺼져서 시험을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쳐야 했다.
“내가 가는 길이 처음 가는 길
돌 치우는 느낌으로 싸워”
김씨는 “벼랑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불합리한 세상에 맞서왔다. 김씨는 “공부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제가 가는 길이 처음 가는 길인 것처럼 닦여 있지 않다는 거였다”며 “나라도 돌멩이 하나 치우는 느낌으로 싸우면 다음 사람이 편할 거가고 생각했다”고 했다.
변호사가 된 김씨는 이제 다른 싸움을 준비 중이다. 다음달부터 재단법인 동천에서 근무하는 그는 종각역부터 회사 입구까지 유도블록을 설치해달라고 종로구청에 신청해뒀다고 했다. “앞으로는 침해 상황이 발생하는 최전선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듣고 대응하고 싶어요. 현장에서 ‘존재를 변호하는 변호사’로 만나 뵐게요.”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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