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장으로 돌아온 대구…이승엽 감독, 첫 방문선 '울상'

김희준 기자 2023. 4. 26.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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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이승엽 감독 절친한 후배였던 구자욱, 결승 솔로포
좌측 외야에 이승엽 감독 유니폼 걸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26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신한은행 SOL 2023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이승엽 두산 감독이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2023.04.26. lmy@newsis.com

[대구=뉴시스] 김희준 기자 =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이 적장으로 처음 대구 땅을 밟은 날, 미소를 짓지 못했다.

26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펼쳐진 두산과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는 이 감독이 두산 사령탑에 오른 이후 첫 대구 방문으로 화제를 모았다.

올해부터 '이승엽 더비'라는 별칭이 붙은 두산과 삼성의 정규시즌 첫 대결에서는 삼성이 웃었다. 삼성은 데이비드 뷰캐넌의 호투와 구자욱의 솔로 홈런을 앞세워 두산을 1-0으로 꺾었다.

이번 3연전의 첫날부터 적장으로 친정을 찾은 이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에는 큰 관심이 쏠렸다.

25일 경기가 비로 취소되기 전 이 감독이 라이온즈파크에 들어서는 장면을 담고자 하는 취재진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막상 이 감독은 담담했다.

"별 느낌이 없다. 벽화를 봐도 특별한 느낌이 들지 않더라"며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선수 때 뛰면서 받은 사랑과 애정은 잊을 수 없지만, 지금은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다. 어떻게 삼성에 대한 애정을 보일 수 있겠나. 두산을 위해 뛰고,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경기 전에도 이 감독의 표정은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두산 사령탑에 오른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중히 인사 한 번 올리겠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두산의 승리를 위해 뛰겠다'고 밝혔던 이 감독이 경기 전 국민의례를 위해 그라운드에 나왔을 때 홈 팬들이 앉은 3루측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하지 않겠나는 추측도 나왔다.

하지만 전날 경기가 우천 취소된 후 "생각해봤는데 마땅히 인사할 타이밍이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우리 팀이 이긴다면 그라운드에 나가니까 그때 인사하는 방법 뿐일 것 같다"고 했던 이 감독은 담담한 표정으로 국민의례를 한 후 3루쪽에 특별히 시선을 보내지 않은채로 곧장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3루측 관중석에서는 이 감독을 향한 삼성 팬들의 그리움이 느껴졌다. 두산 팬들이 앉은 1루 쪽이 아니라 오히려 3루쪽 관중석에 이 감독의 삼성 시절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이 눈에 띄었다.

1루쪽 더그아웃에서 잘 보이는 좌측 외야에는 한 팬이 이 감독의 유니폼을 종류별로 걸어놔 눈길을 끌었다.

삼성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서 화려한 족적을 남기며 '국민타자'로 불린 이 감독은 삼성과 대구 야구의 상징이었다.

이 감독은 1995년 삼성에서 프로에 데뷔해 2017년 은퇴할 때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뛴 2004~2011년을 제외하곤 삼성에서만 뛰었다.

54개(1999년)의 아치를 그려 KBO리그 역대 최초 50홈런 고지를 밟았을 때도, 56개(2003년)의 타구를 담장 밖으로 보내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을 작성했을 때도, 이 감독은 언제나 푸른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26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신한은행 SOL 2023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이승엽 두산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23.04.26. lmy@newsis.com

이 감독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467개의 홈런을 쳤다. 여전히 통산 홈런 순위표 맨 위에는 이 감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삼성은 2017년 이 감독이 은퇴한 후 라이온즈파크 우측 외야에 그의 벽화를 남겼다. 이 감독의 선수 시절 등번호 36번은 삼성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돼 라이온즈파크 3루측 외야에 걸려있다.

6년 만에 지도자로 돌아오면서 삼성이 아닌 두산의 유니폼을 입은 이 감독의 첫 친정 나들이가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 삼성에게는 '해피 엔딩'이었다.

이 감독은 삼성에서 뛸 때 절친한 후배였던 구자욱에게 한 방을 얻어맞았다.

삼성의 3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전한 구자욱은 0-0으로 맞선 4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선제 솔로포를 쏘아올렸다.

구자욱은 볼카운트 3볼-1스트라이크에서 두산 선발 라울 알칸타라의 5구째 시속 149㎞짜리 몸쪽 낮은 직구를 잡아당겨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선제 솔로포를 작렬했다. 공교롭게도 구자욱의 타구는 오른쪽 외야 관중석 위에 그려진 이 감독의 벽화 근처로 날아갔다.

이 감독은 두산 타선이 좀체 찬스를 살리지 못하면서 더욱 아쉬움을 삼켰다.

두산은 이날 삼성(3개)보다 많은 7개의 안타를 치고도 한 점도 내지 못했다.

특히 6회초 1사 1, 3루 상황에서 4번 타자 김재환이 삼진으로 물러나고, 양의지의 볼넷으로 이어간 2사 만루에서 호세 로하스가 3루 플라이로 돌아선 장면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두산은 9회에도 강승호, 허경민의 연속 안타로 2사 1, 3루의 찬스를 일궜으나 끝내 동점 점수를 뽑지 못했다.

두산이 패배하면서 이 감독은 삼성 팬들에게 인사를 건넬 기회도 다음으로 미뤘다.

이 감독과 박진만 삼성 감독의 '절친 대결'에서도 박 감독이 먼저 웃었다.

이 감독과 박 감독은 선수 시절 한 팀에서 뛰지는 않았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한국 야구의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inxij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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