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핵전력 운용 상시협의…나토 수준엔 못 미칠듯

권혁철 2023. 4. 2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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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한-미 정상회담]‘워싱턴 선언’ 발표…핵협의그룹은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25일 저녁(현지시각) 미국 워싱턴디시(DC)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을 찾아 추모의 벽을 지나 참전비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한·미 정상이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함께 찾아 참배·헌화한 것은 1995년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제막식 참석 뒤 처음이다. 워싱턴/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한·미 정상이 26일 창설하기로 합의한 ‘한-미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확장억제 강화와 관련해, 핵 공유를 바라는 한국 정부와 이에 부정적인 미국 정부가 절충한 결과물이다. 양국 간 핵무기 사용과 관련한 논의의 틀은 꾸렸지만, 의사 결정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어 보인다.

확장억제는 미국의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핵무기, 미사일방어 능력, 재래식 무기 등을 동원해 응징한다는 개념이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높아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책으로 ‘한·미 핵전력 공동기획·공동연습’을 언급하며 “사실상 핵 공유 못지않은 실효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방안은 ‘한국식 핵 공유’로 불렸다.

한-미 동맹 강화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등 무력시위가 이어지자 미국에 제도적인 확장억제 강화를 요구해왔다. 한국 정부는 핵무기 관련 정보를 미국 정부와 공유하고, 핵무기 기획과 실행 단계부터 참여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과 ‘핵 공유’에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미국 핵 전략상 미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에 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며 최종적인 권한을 지닌다. 지금은 한반도 유사시 핵무기 사용 여부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협의하는 절차와 제도는 없다.

미국을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각) 워싱턴디시 백악관 관저에서 열린 친교행사에서 한-미 동맹 70주년 사진집에 서명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이런 상황에서 한·미 양국은 핵협의그룹을 만들어 ‘핵 협의를 강화하자’는 정도로 절충했다. 한-미 핵협의그룹은 기존 양국 확장억제 협의체보다 신속하고 상시적인 협의가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제도화한 확장억제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란 의미도 있다. 현재 양국 확장억제 협의체들은 상시 소통하는 성격이 아니다. 양국 외교·국방부 차관이나 실국장급이 참가하는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는 부정기적으로 개최하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매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국방부 정책실장급이 참여하는 억제전략위원회(DSC)도 부정기적인 채널이다.

한-미 핵협의그룹에서의 한국 정부 영향력이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기획그룹(NPG·Nuclear Planning Group)에서의 유럽 국가 영향력보다 강할지는 의문이다. 미국-나토 핵 공유의 대표적인 상징은 핵기획그룹을 통한 ‘공동 핵 기획’이다. 공동 핵 기획이란 핵 위협 상황을 가정해 억제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하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핵과 비핵 옵션을 선택하고 작동할지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다. 나토 국방장관들이 1년에 두번 참석하는 핵기획그룹은 핵무기와 관련된 정치적 통제, 집단정책결정, 핵억제·핵정책·핵태세 논의를 하는 장으로 나토 공동 핵 기획의 가장 핵심적인 기관이다. 핵기획그룹에는 나토 각국이 파견한 핵 전문가로 구성된 핵기획이사회를 포함해 나토에 상주하는 실무조직이 있다. 즉, 미국과 나토 동맹국 사이에는 핵 기획 논의가 ‘상설 제도화’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미 핵협의그룹’에는 한국이 미국의 핵 기획에 참여하거나 핵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나토식 핵 공유는 벨기에·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튀르키예 등 5개국에 전술핵폭탄을 배치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전술핵 배치를 배제한 것도 큰 차이점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고위 관계자들은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잘 지키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한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반도 전술핵 배치’나 ‘독자 핵무장’ 주장에 선을 긋고 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상설 협의체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로 보기 어렵다. 단순히 미국이 레토릭(수사) 수준으로 약속하는 것은 상징적 효과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미 핵협의그룹에 미-나토 핵기획그룹만큼 힘을 싣지 않은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 미국은 한·미·일이 함께 확장억제 협의체를 꾸리는 것이 북핵, 미사일 위협 대응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한-미 핵협의그룹에 일본이 참여해 한·미·일 협의체가 현실에서 구체화한다면, 한-미 핵협의그룹은 한·미·일 동맹으로 향하는 중간 단계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 위협에 확장억제 강화에 치중하며 대화 가능성은 배제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25일 공개된 <엔비시>(NBC) 인터뷰에서 남북 간 비핵화 협상에 관해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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