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천수답’ 된 수출·성장·환율, 정부 비상체제인가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공포를 자아낼 정도다.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 3조402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26일 밝혔다.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까지 합치면 반년 새 5조원을 넘어섰다. 삼성전자도 1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4조원의 적자를 냈다.
반도체 기업들의 적자는 그 자체도 문제지만 한국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면서 경제 성장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기여도가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였다. 이로 인해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올 1분기도 0.3% 상승에 그쳤다.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크게 줄어 무역수지는 작년 3월부터 지난달까지 적자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이달 20일까지 쌓인 무역적자 규모는 265억8400만달러로, 지난해 연간 무역적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무역적자는 달러 수급과 원화 가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340원을 넘어서며 연고점을 새로 썼다. 수출 경기 회복이 단기간에 어렵고 경제 전망도 좋지 않아 환율은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기축통화국인 미국보다 한국의 기준금리가 1.50%포인트 낮고, 북한 도발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수준이어서 한·미 통화스와프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일축했다.
현재로선 반도체 업황 개선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설령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더라도 ‘V자’ 반등은 낙관할 수 없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편하려는 미국 전략으로 한국 기업들은 투자·판매 같은 기본적인 경영 활동조차 미국 눈치를 봐야 한다.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판매가 금지될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중국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도록 한국에 요청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미국의 선처만을 바라는 ‘반도체 천수답’ 경제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금융시장에서는 언제든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경험상 환율 불안과 반도체 불황이 겹치면 한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다. 25년 전 외환위기 직전에도 반도체 경기가 최악이었다. 정부의 비상한 각오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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