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돌봄·동거·부양 지평 넓힐 생활동반자법 만들 때 됐다
혼인·혈연으로 이뤄진 가족이 아니더라도 함께 생활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생활동반자법)이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다. 이성·동성 간 동거나 사회에서 만난 노인·청년이 함께 사는 가구 등이 해당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26일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2014년 처음 정치권에서 논의됐으나, 그간 동성혼 허용이라는 보수세력 반발에 부딪혀 발의조차 하지 못했다. 9년이 지나서야 발의된 이 법안은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가족만을 인정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에 찬성하던 입장을 번복해 논란을 낳았던 터라 의미가 깊다. 시대가 바뀌면서 가족 형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생활동반자법 입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생활동반자법은 혈연이나 혼인으로 묶이지 않아도 성인 두 사람이 상호 합의에 따라 생활을 공유하며 돌보는 관계를 ‘생활동반자관계’로 규정하고, 이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민법’을 비롯해 관련 법안 25개를 개정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현행법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들을 법적으로 동등하게 보호하자는 취지다. 생활동반자법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프랑스는 1999년 시민연대계약(PACS) 제도를 도입했고, 독일과 영국 등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시행 중이다.
오랜 세월 ‘법 밖의 가족’들은 돌봄·주거·의료·복지·상속·장례 등 삶의 전 과정에서 밀려나거나 차별을 겪었다. 가족 규정이 혼인·혈연이라는 틀에 갇힌 탓에 이들은 ‘없는 존재’로 살았다. 가족이 아니면 유족 자격이 인정되지 않아 보상금·보험금·연금 등을 수령할 수 없다. 상속 권리로부터도 배제되고, 가족돌봄휴가·육아휴직 등도 받을 수 없다. 사람들의 인식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2020년 여가부의 ‘가족 다양성 국민 여론조사’에선 10명 중 7명(69.7%)이 ‘혼인·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주거·생계를 공유한다면 가족이라 여길 수 있다’고 답했다. 달라진 세태와 인식을 법과 정책이 좇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생활동반자법 발의로 다양한 가족 구성권 논의를 위한 첫발을 뗐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4월 이 법안 제정을 권고했다. 이제는 국회가 입법을 통해 ‘정상가족’에 기반한 제도와 규범을 바꾸는 물꼬가 트이길 기대한다. 더 이상 보수 종교계의 반발을 의식해 주저할 이유가 없다. 프랑스는 동거 가구의 법적·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걸 저출생 문제 해법의 출발선으로 삼았다. 이 법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돌봄 공백을 메우는 사회안전망도 될 수 있음을 전향적으로 볼 때가 됐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트럼프 반대한 ‘반도체 보조금’···바이든 정부, TSMC에 최대 9조2000억원 확정
- [사설] 이재명 선거법 1심 ‘당선 무효형’, 현실이 된 야당의 사법리스크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