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김건희 여사의 ‘공과 사’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 최고권력자다. 대통령 배우자는 대통령 행사에 참석하고, 별도의 대외 활동을 하기도 한다. 대통령 배우자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과 인력이 배치된다. 하지만 대통령 배우자는 법적으로 민간인이다. 공적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공과 사가 구분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유별나다.
대통령실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을 국빈방문 중인 윤 대통령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 넷플릭스 최고경영자를 만난 후, 넷플릭스가 4년간 한국 콘텐츠에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가 투자 유치에 관여했고,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영부인에게도 중간중간에 진행되는 부분을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김 여사는 넷플릭스 CEO 면담 자리에 배석했고, 이 회사 최고콘텐츠경영자(CCO)를 따로 접견했다. 외국기업의 투자 유치에 대통령 부인이 관여했다고 대통령실이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한민국 제1호 세일즈맨’은 윤 대통령인데, 실제로는 김 여사의 공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김 여사가 전시업체인 코바나컨텐츠를 운영한 이력이 있다고 해도 대통령의 투자 유치 활동은 국정운영의 일환이다. 대통령실이 김 여사가 국정을 보고받고 개입했음을 대놓고 자인한 셈이다.
김 여사는 지난 대선 중에 허위 이력 기재가 문제되자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다. ‘조용한 내조’는 빈말이었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데 코바나컨텐츠 전·현직 직원들을 데리고 갔고, 김 여사의 대학원 동기는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자리를 꿰찼다. 이달 들어 언론에 노출된 김 여사의 공개 일정만 10건이 넘는다.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김 여사 활동 사진이 화보처럼 넘쳐난다. 대통령 배우자는 책임도 권한도 없는데, 김 여사는 “윤석열 정부 임기 내 개 식용을 종식시키도록 노력하겠다” 등 민감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데도 거리낌 없다. 공과 사가 뒤섞이고 비선 논란이 불거져도 개의치 않는다. ‘소 귀에 경 읽기’이거나 대통령이 용인한 걸로 볼 수밖에 없다. 김 여사는 선을 넘지 말았으면 한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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