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 나쁜 현실에 맞서는 소녀의 '용기'…마틸다 출간 35주년
[EBS 뉴스]
영국 아동문학의 거장 로알드 달의 대표작, '마틸다'가 출간 35주년을 맞았습니다.
최근에는 뮤지컬과 영화 등으로도 변주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나쁜 현실에 맞서 싸우는 이 작은 소녀의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뭔지, '마틸다'를 번역한 김난령 번역가에게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서현아 앵커
전 세계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마틸다'는 어떤 책입니까?
김난령 / 번역가
'마틸다'는 무지하고 편협하고 돈만 아는 부모 슬하에서 정신적인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는 머리가 뛰어난 어린 소녀 마틸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외로운 마틸다에게 유일한 위안처는 책이었어요.
학교에 들어가서 다정한 어른 하니 선생님을 만납니다만, 그곳에는 하니 선생님을 노예처럼 부리고 전교생들을 괴롭히는 무시무시한 악당 트런치불 교장이 있었죠.
마틸다는 초능력으로 트런치불 교장을 물리치고, 하니 선생님과 핏줄로써가 아니라 상호 존중과 사랑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족을 이룹니다.
서현아 앵커
작지만 당찬 소녀 마틸다의 이야기, 올해로 출간된 지 35주년이 됐죠?
김난령 / 번역가
네, '마틸다'는 로알드 달이 쓴 마지막 아동 장편 소설로 1988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0년에 나왔어요.
로알드 달 특유의 기발한 이야기 구조와 익살맞은 문체를 맛볼 수 있는 역작입니다.
그리고 서양 문학의 오랜 주제였던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뿐만 아니라 책의 미덕, 유머의 가치,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와 가족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 매우 중요하고 참신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문제작입니다.
서현아 앵커
'마틸다'에 참신하고 다양한 주제들이 담겨 있는데, 저자인 로알드 달도 매력적인 인물이라고요.
김난령 / 번역가
저는 로알드 달 하면, '아웃사이더'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로알드 달은 기성의 틀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로알드 달은 자기 작품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어요.
다국적 석유회사 직원으로 아프리카로 파견되었다가, 갑자기 전쟁이 터져서 영국 공군에 입대했고, 비행기 사고 후에는 영국 공군 소속 스파이로 워싱턴에서 활동하기도 했어요.
단편 소설가로 데뷔한 뒤에는 '에드거 앨런 포 상'까지 수상하며 평단으로부터 인정받았고, 그러다 1961년, 45세에 처음으로 장편 동화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를 발표해서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3년 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발표하자마자 단번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동화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지요.
이렇게 보면 참 화려하고 멋진 삶을 산 것 같지만, 실제로 로알드 달의 삶은 위기와 불행과 역경의 연속이었어요.
비행기 사고 때 얼굴이 함몰되고 엉덩뼈를 제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중상을 입었고, 결혼 뒤에는 1살도 채 안 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을 뻔했고, 2년 뒤에는 실제로 일곱 살짜리 막내딸을 홍역 뇌염으로 잃어버렸어요.
영화배우였던 아내는 여러 차례 뇌출혈로 쓰러지기도 했지요.
하지만 로알드 달은 그때마다 초인적인 집념과 창의력으로 역경을 극복해냈어요.
서현아 앵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어린이들을 위한 집필을 멈추지 않았군요.
그렇다면 '마틸다'에서 보이는 로알드 달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난령 / 번역가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유머'입니다.
아마 전 세계 독자들이 로알드 달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책이 재미있기 때문일 겁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로알드 달은, 독자들이 책을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자신과 어린이들의 유머 코드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한 적 있어요.
또 로알드 달은 동화작가가 꼭 갖추어야 할 자질은 유머 감각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왜냐하면 어린이들은 재미없으면 책을 끝까지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요.
또 다른 특징이라면, 로알드 달의 문체는 개념적이거나 관념적이기보다 사실적이고 매우 촉각적이라는 겁니다.
로알드 달의 글은 자기 경험을 토대로 하기에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합니다.
특히 나쁜 악당을 묘사할 때는 마치 신들린 듯한 표현력을 구사하지요.
서현아 앵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마틸다'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구절은 어디인가요?
김난령 / 번역가
"(25쪽) 마틸다는…자신의 작은 방에 앉아서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로알드 달은 동화책이 반드시 교훈적이거나 뚜렷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믿는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로알드 달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교훈적 메시지 보다 아이들이 책을 즐겁게 읽으면서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하는 것이었어요.
이것이 바로 독서가 주는 미덕이라고 생각했어요.
로알드 달은 이 책을 쓸 당시, 텔레비전 때문에 정말로 책이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해요.
로알드 달은 독서를 통해 어휘와 지식을 넓힐 뿐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는 접할 수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화와 경험을 접할 수 있다고 믿었죠.
이러한 작가의 생각이 이 구절에 잘 녹아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주인공 마틸다는 어리지만 독서를 통해 더 지혜로워지고,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마틸다'는 영화와 뮤지컬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난령 / 번역가
그 이유를 꼽으라면 열 손가락도 모자라겠지만, 무엇보다 매우 현실적이고 공감이 가는 캐릭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책의 주인공 마틸다는 염력을 쓸 정도로 비범하다는 점만 빼면 보통 어린이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지극히 보편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주인공 마틸다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 어린이 독자가 보낸 편지에서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어 참 기뻤어요','못된 어른을 혼내줘서 통쾌했어요'와 같은 소감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마틸다가 억눌린 어린이들에게 어떤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서현아 앵커
불의에 맞서는 당찬 용기, 그리고 그런 저력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의 가능성을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얘기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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