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실수지만 못 바꿔

2023. 4. 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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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간 땅속에 묻혀 있던 녹슨 인식표. '대한'과 '육군'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보입니다.

그리고 영어로 새겨진 박재권.

2018년 비무장지대에서 백골 상태로 수습된 박재권 이등중사. 지금으로 치면 병장이죠.

21살에 입대한 박재권 이등중사는 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군번줄 덕에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고 이제 나이가 지긋해진 두 여동생은 오빠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늘 목에 걸고 다니는 인식표, 흔히 군번줄은 고대 로마 병사들이 가죽으로 된 작은 띠에 이름과 신상을 적어 목에 걸고 다닌 시그나쿨룸이 기원이라 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입대한 22년 군번 4천9백 명은 입영연도 23년 군번을 부여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육군 행정 착오. 그러니까 실수 때문에요.

이로 인해 후임에게 무시당했다는 웃지 못할 후일담도 전해집니다. 또 자대 생활은 차치하고서라도 전역 후 군 적금이나 보조금 등 군번 오류로 인해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닐까 우려도 큽니다.

그런데 육군은 확인된 개인의 불이익이 없다며 정정 불가라고 앞으로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앞으로 잘할 테니 봐줘'라는 거죠.

잘못된 군번으로 당장 무슨 큰 피해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걱정하는 건 앞으롭니다.

일반 교통사고조차 지금 당장 아프지 않아도 앞으로 발생할 후유증이 없는지 살펴보고 다음에 후유증이 발생하면 가해자가 책임지게 돼 있는데 육군에서 지금 당장 확인된 불이익이 없으니 그냥 살라니요.

군 행정의 출발이자 기본이라 할 군번조차 제대로 부여 못 하는 우리 군을 어떻게 병사들이 따르고 또 국민은 신뢰할 수 있을까요.

착오 잘못이 있었다면 깨끗이 인정하고 비용을 치르더라도 바로잡는 게 기본입니다. 우리 군은 그 기본도 안 돼 있는 거 아니겠죠.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실수지만 못 바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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