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칼럼] '엄지런' 그 이후를 대비해야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2023. 4. 2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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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뱅크런 불안 커졌지만
충당금 확충으로 대비 가능해
당국도 소방관 역할 마칠때 돼
금융,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야

디지털 시대 뱅크런이 화제다. 이른바 '엄지런'이다. 예금을 먼저 인출하려고 은행 앞에 길게 줄을 설 필요가 없다. 엄지손가락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된다.

지난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매경 글로벌금융리더스포럼에서는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이 강연 도중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그는 이 자그마한 스마트폰이 금융시장을 완전히 뒤바꿔놓고 있다고 했다. 워런 버핏과 함께 월가의 거물로 불리는 그에게도 엄지런은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지난달 순식간에 파산으로 내몰린 실리콘밸리은행 얘기를 하면서다. TV 리모컨처럼 손가락으로 버튼 몇 개만 누르면 거액의 돈을 손쉽게 곧바로 다른 금융사로 옮겨놓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실리콘밸리은행에서는 불과 3시간 만에 400억달러가 인출됐다. 당국도 은행도 당황할 만했다.

슈워츠먼 회장은 "내 인생을 돌아보면 1972년 미국에는 은행이 1만2000개 이상 있었는데 지금은 약 4000개로 줄었다"며 "이런 사태로 몇몇 은행이 사라지더라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전체 강연 내용은 유튜브 '월가월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잔불만 남은 줄 알았던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하다. 산송장이긴 하지만 미국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서 한 달 새 예금이 1000억달러나 빠져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주가는 연일 폭락세다. 한국에서는 '빚투' 열풍으로 폭등했던 일부 테마주들이 난리다. '팔자' 주문이 갑자기 쏟아지면서 하한가 행진이다. 소문에 돈을 넣고 빼는 행태는 전형적이지만 그 속도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말처럼 한국은 미국보다도 100배는 빠른 느낌이다. 슈워츠먼 회장의 강연은 참석자들에게 저마다 다른 내용에서 울림이 있었겠지만 나는 '지금은 위기가 아니다'는 진단에 주목했다. 중앙은행의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고, 대다수 금융사 건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인플레이션을 실제보다 과도하게 측정한 중앙은행의 과잉 대응 탓이라는 취지로 들렸다.

실제로 지난주 뉴욕 현지에서 만난 월가 금융인들은 위기 자체보다는 위기 이후를 대비하는 모습이 많았다. 사실 한국은 지난해 가을이 최대 고비였다. 큰 사고 없이 마무리돼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아는 사람도 많겠지만 현장 담당자들은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국내 한 대형 보험사 사장은 "평생 보험회사 다니면서 회사에 돈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을 정도"라고 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자금을 확보하려고 예·적금 이자율을 높이는 경쟁이 저축은행으로까지 옮겨붙으면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뭉칫돈이 하루에도 수시로 옮겨 다녔다"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모두 비상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당국이 금융사들 팔을 꺾어서라도 수신경쟁을 막았던 이유다. 올 들어 미국과 유럽에서 대형 금융회사들이 휘청거리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금융엔 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시간을 넘나들며 현재의 돈을 미래와 연결시키는 게 금융인데, 불확실성이 클 수밖에 없다. 신뢰가 기본 전제인 이유다. 이게 무너지면 뱅크런인데, 기술이 결합해 엄지런으로 진화했다.

같은 위기는 반복하지 않는 법이다. 기억하기 때문에 더 큰 공포감을 갖지만 대신에 강한 복원력을 지닌다. 이제 금융은 그다음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 불길을 일단 잠재웠으니 잠시 숨을 쉴 틈이 생겼다. 충당금을 확충하고 재무제표를 재점검할 때다. 금융당국도 위기 진화를 위한 소방관보다는 중장기 금융 시스템 안정을 확보할 경찰관 역할에 나서야 한다. 위기 때 취했던 조치들을 점차 정상화할 시기가 왔다.

[송성훈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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