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이순신 표준영정 논란 10년…이제 결론 내려야

김재근 선임기자 2023. 4. 2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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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었다.

용모는 단아하고 곧아서 근신하는 선비와 같았고, 마음 속에는 담대한 기운이 있었다.

- 유성룡의 <징비록>

"그 언변이나 지모는 실로 난리를 평정할 만한 재주였으나, 용모는 풍만하거나 후덕하지 않았고 관상도 입술이 뒤집혀서 내 생각으로는 복 있는 장수가 아닌 듯했다."

- 고상안의 (태촌집)

충무공 이순신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4월 28일 충무공의 탄신일을 맞아 올해도 월전 장우성이 그린 표준영정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10여년째 계속돼온 표준영정의 지정 해제 여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월전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 국가표준영정은 단아한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유성룡, 고상안 전혀 다르게 묘사)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아산 현충사는 2010과 17년, 20년 세 차례에 걸쳐 표준영정 지정 해제를 신청한 바 있다. 문체부는 2010년과 17년 신청에 대해 영정을 그린 작가의 친일 행위가 지정해제 사유가 될 수 없고,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며 반려했다. 2020년 신청에 대해서는 아직도 검토 중인 상황이다.

표준영정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용모(얼굴), 복식, 작가의 친일행위 3가지 면에서 벌어지고 있다.

첫째는 충무공의 얼굴과 닮았느냐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서애 유성룡과 태촌 고상안은 모두 이순신과 동시대 인물로 충무공을 잘 알고 지낸 사람들이다. 유성룡은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한 동네에 살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에게 이순신을 천거했으며, 고상안은 이순신과 같은 해에 무과에 합격한 인물이다.

유성룡과 고상안의 이순신 용모에 대한 기록은 전혀 다른데, 장우성이 그린 표준영정은 유성룡의 기록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장우성은 이순신을 부드럽고 단아한 유학자(선비)로 그렸다. 일각에서는 유성룡이 이순신을 단아하다고 기록한 것은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본다. 의례적인 기록이라는 것이다.

이와 전혀 다른 영정이 여러 개 전한다. 날카로운 눈매와 끝이 치켜선 눈썹, 팔(八)자 수염 등 강골 무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무과 급제 동기인 고상안의 기록과 일치하는 용모이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조선 무인의 모습. 이순신의 옛영정을 보고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옛영정 보고 그린 키스와 이상범의 작품)

대표적인 그림이 영국 여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의 '푸른 옷을 입은 조선 무인'이란 작품이다. 키스는 1919년부터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풍속과 문화, 일상을 담은 작품 80여점을 남겼다. 키스가 그린 '조선무인'은 얼굴이나 눈매, 전립(戰笠 무관이 쓰는 모자) 등이 전형적인 무인의 모습이다. 여러 척의 거북선과 판옥선도 그려져 있다.

키스의 작품은 한산도 제승당의 영정을 보고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순신 장군 사후 1년 뒤인 1599년 수군과 인근 주민들이 경남 통영에 사당인 착량묘를 짓고 위패와 영정을 모셨는데, 이와 비슷한 영정이 제승당에도 봉안돼온 것으로 보고 있다.

제승당의 영정을 모본(母本)으로 한 청전 이상범의 작품도 있다, 청전은 1932년 통영의 충렬사와 제승당의 영정을 보고 이순신을 그렸다. 청전은 제승당 영정이 후덕한 명장의 모습이 아니라서 얼굴에 살도 붙이고 수염도 힘 있게 그렸다고 밝히고 있다.

충무공의 사돈인 윤휴가 "(이순신은) 체구가 크고 용맹하며, 붉은 수염에 담기(膽氣)가 있는 사람"이라고 한 기록이나 17세기 문신 홍우원이 "팔척 장신에 팔이 길고 힘도 세며, 제비턱과 용의 수염과 범의 눈썹에 제후의 상"이라고 한 것과도 부합한다. 키스와 이상범의 작품이 임진왜란 이후 남해안 일원에 전승돼온 영정을 계승한, 실제 얼굴에 가까운 용모로 추정된다.

청전 이상범이 그린 이순신 영정도 키스의 작품처럼 강인한 무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쉽게도 청전 이상범이 1932년에 그린 영정은 소재 불명이다. 아산 현충사 영정은 1949년에 김은호, 1953년에는 장우성 화백의 작품으로 교체됐는데 청전의 작품은 문중에서 보관하다 사라져 문화재청의 도난 문화재 목록에 올랐다.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의 '충무공 이순신상'도 눈길을 끄는 영정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따라다녔던 승려가 처음 그렸고, 후대에 내려오면서 낡아져 여러 차례 다시 그렸다고 전한다. 키스와 이상범의 작품처럼 강인하고 매서운 무장이 분위기가 풍긴다.

이순신처럼 임진왜란 이후 선무공신에 오른 권응수의 초상. 당시 무인의 영정은 대부분 이러한 복식을 하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흉배는 호랑이 1마리, 조복은 흑단색이 맞아)

복식의 고증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많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7년 검증을 거쳐 그림의 흉배가 경국대전에 무관 1, 2품은 호랑이 한 마리로 돼 있는데 두 마리를 그렸고, 관리가 조정에 나아갈 때 입는 조복(朝服)도 16세기는 검은색(흑단색)이었는 데 붉은 색으로 그렸다고 오류를 확인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장우성 화백의 친일행적에 대한 논란이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친일행적이 수록되면서 표준영정 해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도 여러 단체와 전문가들이 용모의 불일치와 복식의 고증 잘못, 친일 행위 등을 이유로 지정 해제를 주장하는 상황이다.

장 화백의 후손이 한국은행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도 부담스럽다. 현재 사용하는 100원 짜리 동전과 1973년~1993년 사이 발행한 500원권 지폐에 장 화백의 작품(영정)을 사용한 것에 대해 저작권료를 내라는 것이다.

이순신 영정은 1973년에 지정된 정부표준영정 제1호로 지정된 지 50년이 흘렀다. 이 표준영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논란이 10년이 넘게 제기되고 있다. 혼란과 시비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전문가와 국민들이 의견을 수렴, 결론을 내리고 새롭게 영정을 제작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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