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국회 표결…‘협회정치’ 넘어 현장만 보고 투표하라
[왜냐면] 이주호 |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
간호법 제정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다. 우리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50여 개 직종의 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직종협회 간 갈등에는 잘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은 그냥 지켜보고만 있기에는 너무 민망하고 한심한 수준이다.
간호법 제1조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안전을 도모하여 국민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있다. 초고령 사회, 간호 인력의 사회적 돌봄 필요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시점에서 이런 목적을 가진 간호법 제정이 왜 사회적 논란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의사협회는 ‘지역사회’ 문구를 두고 간호사가 독자개원을 하려 한다면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대부분 쟁점 사항들은 보건복지위원회 심의과정에서 여야 합의로 현 의료법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으로 절충했다. 따라서 의협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과장된 우려에 불과하다. 의료법 체계의 근간을 흔든다는 주장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간호 인력을 위한 법을 만드는 것이 의료법과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면 그런 의료법과 의료체계는 흔드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부수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의사협회가 국민적 요구인 의대 정원 늘리는 것은 막고, 현장 동료인 간호사의 지위 향상과 근무환경 개선을 반대하는 이유를 묻고 싶다. 이런 의협의 의사 직역 중심주의와 몽니에 대해 국회와 언론에서는 기계적 중립과 양비론, 묻지마 진영 논리와 무원칙한 중재론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 우리가 놓치는 것은 바로 의료현장에서 뼈를 갈아 일하는 간호 인력의 절박한 외침이다.
의료현장에서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지난 20년 동안 간호대 정원을 2배 이상 늘려 매년 3만명 가까운 간호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렇게 많은 간호사를 배출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 간호사는 여전히 부족하다. 면허 간호사 가운데 54.6%, 즉 절반만이 보건의료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의료현장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동강도로 인해 병원 근무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7명을 돌보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상급종합병원은 16.3명, 중소병원은 무려 43.6명을 돌보고 있다. 이런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15%로 전체 산업군의 3배에 달한다. 특히 신규 간호사의 1년 내 이직률은 무려 45%다. 이직률을 낮추기 위한 특단의 대책 없이는 간호대 정원 확대는 한마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지난해 정부 차원에서 최초로 진행한 보건의료인력 종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의사 연봉은 평균 2억3천만원으로 약사의 3배, 간호사의 5배, 간호조무사의 8배 수준으로 엄청난 격차를 보였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간호 인력 처우개선을 위해 간호법을 제정한다는데 의협은 ‘간호사 특혜법’이라고 비난한다. 의사보다 뭘 더 특혜를 준다는 것인가? 사실 특혜 시비가 아니라 실제로 간호사에게 더 특별한 혜택, 더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환자 곁을 떠나는 간호사를 붙잡을 수 있다.
지금 여의도에는 정치만 남고 사람이 안 보인다. ‘여의도 정치’, ‘협회 정치’를 넘어 뼈를 갈아 일하고 있는 노동현장을 봐야 한다. 그래서 간호법은 무조건 통과해야 한다. 바로 이런 현실을 풀어가는 첫 단추기 때문이다. 여야 간 절충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선언적 문구만 남았다 하더라도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간호 인력 문제 해결의 소중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의협과 기득권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통과한다면 더더욱 의료현장의 수직적 조직문화를 극복하고 모든 직종이 상호존중 아래 협업하는 민주적 질서와 체계가 세워지는 소중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간호법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의료체계와 조직문화를 바꾸는 결정적 돌파구가 될 것이다
27일 국회는 과잉 정치화된 직종협회 상층 간 편 가르기 말싸움, 파업 협박, 거짓 선동을 뒤로하고 열악한 간호현장 하나만 보고 투표하길 바란다. 단언컨대 이번 간호법이 통과한다고 해서 의료체계가 흔들리지 않는다. 초고령 사회, 나의 건강과 노후를 누가 지킬 것인가? 간호법 논쟁의 한복판에서 우리 자신에게 던져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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