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리바운드', 장항준이 판을 깔았고 안재홍은 뛰어놀았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장항준 감독과 안재홍, 코미디 감각이 남다른 두 사람의 조합은 절묘했다. 영화 '리바운드'가 표방하는 온기 넘치는 웃음에 적합한 감독과 배우의 만남이었다.
지난 4월 5일 개봉한 '리바운드'는 26일까지 전국 61만 명을 동원했다. 손익분기점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이 영화를 향한 관객들의 애정과 만족도는 수치를 능가하는 크기다.
CGV 누적 에그 지수를 보면 '리바운드'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97%), '스즈메의 문단속'(94%)보다 높은 98%를 기록하고 있다. 관객들의 높은 만족도가 신규 관객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영화의 주역은 단연 감독과 배우다. 장항준 감독은 녹슬지 않은 코미디 감각으로 영화의 따스한 웃음을 만들어냈고, 안재홍은 특유의 코미디 센스로 장항준 감독의 연출과 김은희 작가의 각본에 생기를 더했다.
◆ 장항준 "웃기는 게 제일 어려워…하지만 가장 재밌다"
장항준 감독은 2017년 영화 '기억의 밤'으로 스릴러 영화에 도전했지만 그의 진가는 코미디 영화에서 더욱 빛난다. 예능작가 출신인 그는 '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등의 영화로 자신의 코미디 감각을 뽐내왔다. '리바운드'는 '불어라 봄바람' 이후 20년 만에 복귀한 코미디 영화다.
장항준 감독은 '리바운드'를 "한때 농구를 했지만 꿈을 잃어버린 25살 청년과 아주도 주목하지 않았던 소년들이 다시 기회를 만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로 정의했다.
영화는 2012년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부산 중앙고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스크린에 옮겼다. 당시 중앙고는 교체 선수도 없이 단 6명의 엔트리 만으로 강팀을 격파하며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이 과정을 웃음과 감동으로 버무려낸 '리바운드'는 오랜만에 만나는 웰메이드 상업 영화다.
휴먼 코미디 영화의 색채가 강하지만 스포츠 영화로서의 박진감을 살리는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장항준 감독은 "관객을 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대회로 모셔가겠다는 목표가 있었다"며 "경기 장면 재현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농구 영화니까 경기 장면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편하게 찍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관객들에게 경기장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메라가 밑으로 내려가 있어야 하고 컷을 끊으면 안 됐다. 미국 농구 영화를 보면 컷을 엄청 끊는데, 그만큼 한 번에 찍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선수 역할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그들도 나중엔 독이 올라서 열심히 했다. 진짜 우리 배우들의 '리바운드'였다. 배우들이 다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인 배우들이라서 이 작품이 되게 중요한 거다. 본인들 이야기와도 거리가 떨어져 있지 않다. 진짜 노력했다. 경기를 순서대로 찍었는데, 자세히 보면 배우들 살이 쪽쪽 빠진 게 눈에 보인다. 그들의 노력이 화면에 자연스레 묻어났다"
이번 영화의 공을 실존 인물인 강양현 코치와 안재홍에게 돌렸다. 장 감독은 "안재홍이 강양현 코치랑 친하게 지냈다. 재홍이와 나의 목표는 '실존인물과 최대한 가깝게 그린다'였다. 재홍이는 그의 걷는 폼, 말하는 투, 손짓까지 관찰해서 따라 했다. 강양현이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거기에 장항준이라는 그릇을 넣고 그릇째로 안재홍이 먹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항준 감독은 50대의 나이에도 20~30대를 웃길 수 있는 코미디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로 "위장하지 않는 거? 괜찮은 척하지 않는다"며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아서 잘난 척할 필요가 없었다. 다 내 정체를 알았다.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골고루 못했다. 그저 귀엽기만 했다. 옛날 어른들은 날 보면 귀여워하면서도 '쯧쯧쯧' 혀를 차곤 했다. 난 그대로인데 세상이 바뀌었다"고 웃어 보였다.
이어 "사실 웃기는 게 제일 어렵다. 의도가 보이는 순간 관객이 돌아선다"며 "코미디가 어려워서 한동안 안 했는데 제일 재밌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장항준 감독의 꿈은 '60대에도 현장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는 "같이 영화를 시작했던 친구들이 업계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 작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각오로 찍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안재홍 밖에 할 수 없는 대체불가의 연기
안재홍의 매력은 비범함이 아닌 평범함이다. 학교 혹은 회사에서 익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성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대체로 순수하고 순박하다. 그러나 열정적이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엔 온기와 유머가 넘쳐흐른다. 복학생 만섭의 고군분투기를 그렸던 '족구왕'으로부터 10년, '리바운드'의 양현은 마치 만섭의 애프터를 보는 것 같았다. 두 작품의 접점은 오로지 안재홍이라는 배우뿐이다.
안재홍은 안재홍밖에 할 수 없는 연기를 해낸다.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는 가진 역량에 비해 인정을 덜 받는 편이지만, 안재홍은 데뷔 초부터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며 대체 불가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평범한 대사를 쳐도 위트가 묻어나며, 진지한 문어체 대사를 쳐도 오글거리지 않는다. '리바운드'는 배우 안재홍의 매력이 극대화된 영화다.
웃기다고 해서 가볍게 캐릭터에 다가가지 않는다. 안재홍이 영화를,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는 늘 진지하다. '리바운드'는 어느 작품보다 열정적으로 캐릭터에 몰입했다. 그건 아마도 영화 같은 실화를 만들어낸 인물이 실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재홍은 촬영 전부터 부산 중앙고를 이끌며 전국대회 준우승을 일군 강양현 코치를 만나 그가 되기 위한 땀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관객을 2012년의 농구장으로 안내하기"라는 장항준 감독의 목표에 동의했다. 인물 그 자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양현 코치의 당시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살을 10kg 가량 찌우고 그의 헤어스타일, 그가 입은 옷, 그가 쓴 안경, 그가 신은 구두까지 맞혔다. 외모의 싱크로율을 맞춘 후에는 성격을 탐구했다. 그의 유쾌함과 긍정주의를 되새기며 촬영 내내 25살의 열정적인 청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이 놀라운 이야기를 재밌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마음이었다. 안재홍은 당시 강양현 코치가 가졌던 뜨거운 열정과 목표를 향한 진심 어린 태도를 잘 살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사회초년생인 젊은 코치가 그 큰 대회에 참여하는 마음이 어땠을까. 얼마나 떨렸을까. 얼마 남아있지 않는 실제 경기 영상을 보며 강양현 코치의 코칭 모습을 분석했다. 그는 경기 내내 모션도 크게 하고, 목소리도 크게 내지른다. 강호인 상대에게 주눅 들기 싫어서 일부러 그랬던 것 같다. 옷도 일부러 노숙하게 입었다. 그런 모습들에서 대회에 임하는 그의 마음을 읽어내려고 했다."
'리바운드'를 관통하는 대사는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다. 진지하다 못해 오글거릴 수 있는 이 대사는 안재홍의 발화를 통해 관객에게 선명하게 전달된다.
"가장 좋아하는 대사다. 보통의 영화는 '열심히 해서 이기자, 잠은 내일 자면 된다' 이런 류의 대사를 하는데 이 영화는 달랐다. 이 대사를 멋 부려서 하면 관객에게 가닿지 않을 거 같아서 담백하되 진심을 담아서 했다. '리바운드'의 핵심이자 모두에게 전하는 영화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농구를 향한 강 코치의 마음에 다른 어떤 걸 대입해도 뭉클해지더라. 영화를 찍으면서 그동안 나도 스스로 '리바운드' 해왔구나라고 느꼈다. 배우가 되고 난 후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어떻게든 공(기회)을 잡아내려고 하면서 지금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강양현 코치가 중앙고 선수들과 신화를 만들어냈던 건 25살 때였다. 안재홍의 스물다섯은 어땠을까.
"그때쯤에 독립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1999 면회'(감독 김태곤)라는 작품을 했다. 내가 주연을 맡았던 첫 번째 장편영화인데 그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를 갔다. 그렇게 큰 무대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관객을 만나게 될지 몰랐다. 내 초심이 담긴 소중한 영화다. 진짜를 해내고 있는 모습들이 담겨있어서 더욱 특별하다. 광화문 시네마의 첫 영화기도 했다. 이후 두 번째 작품인 '족구왕'을 만났다. 저에겐 특별한 시작점이다"
안재홍만의 코미디 연기 비결을 묻는 질문에는 "대본이 재밌고 공감이 가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한 뒤 "진심을 다해서 하면 된다. 그러면서도 유쾌함이라는 건 꼭 지니고 있으려고 한다. 희극과 비극이 한끗 차이로 교차하는게 인생이다. 그걸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진지함과 능청 두 가지를 함께 가져가려고 한다. 가위 바위 보 하나 빼기처럼 말이다"라고 답했다.
안재홍의 코미디엔 밝음과 어둠, 그리고 뜨거운 열정이 살아있다. 우리네 청춘처럼. 그래서 그의 코미디 연기는 특별하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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