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쩐당대회’와 ‘만사돈통’

문성진 논설위원 2023. 4. 2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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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돈 봉투 전대’ 좌파의 추한 민낯
경제·안보 무능한 국민의힘 도긴개긴
내년 총선서 ‘차악 선택’ 딜레마 우려
복합 위기 해결 위한 정치 복원 기대
[서울경제]

“전당대회가 열리기 며칠 전에 필자에게 봉투가 배달됐다. 어느 후보가 보낸 것이었다. 상당한 돈이 담겨 있었다.” 고승덕 전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의원이 2011년 12월 14일 자 서울경제신문 ‘로터리’ 칼럼을 통해 쏘아 올린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의 추악상이다. 이 폭로로 총선 3개월을 앞둔 정치권은 충격에 휩싸였다. 당사자로 지목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사건 초기 “난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돈 봉투 사건’을 털어내려던 한나라당은 당황했고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만사돈통’이라며 한나라당을 조롱했다.

프랑스에 체류하던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24일 귀국하면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해 “모르는 사안들이 많다”고 했다.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물욕이 적은 사람”이라고 송 전 대표를 치켜세웠다. 민주당은 사건 연루자로 지목된 윤관석·이성만 의원을 출당하고 진상 규명과 당 쇄신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를 묵살하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다. 12년 전 한나라당의 ‘돈 봉투 사건’ 대응보다 훨씬 후진적인 민주당은 ‘쩐당대회’라는 십자포화를 받아도 싸다.

민주당의 돈 봉투 사건은 좌파의 추한 민낯을 낱낱이 드러냈다. 민주당은 옛 소련의 스탈린 전체주의를 비판한 소설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이 지적한 좌파의 한계를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오웰은 좌파 이데올로기가 권력을 차지할 직접적인 가망성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됐기 때문에 “좌파 정부는 항상 지지자들을 실망시킨다”고 통찰했다. 준비 없이 집권한 민주당은 이념적 환상에 빠져 집값 폭등, 고용 위축 등의 경제문제를 야기하고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저자세 외교로 안보를 위태롭게 했다. 이제는 과거 우파의 부패를 무색케 할 수준의 타락상을 보이며 자멸을 재촉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의 자멸에 쾌재를 부를 처지는 못 된다. 집권 2년 차를 맞도록 정치에서는 물론 경제와 외교에서 어떤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정부와 도긴개긴이다. 당권을 둘러싼 내분으로 국민의힘에서는 정당 민주주의는 실종됐고 김재원·조수진·태영호 등 최고위원들의 연이은 막말 논란은 정치의 격을 떨어뜨렸다. 경기 침체와 수출 급감에도 속수무책이다. 일본에 강제징용 배상 등을 대폭 양보했으나 얻어낸 것이 없고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으로 입을 기업들의 피해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돈 봉투 사건 등으로 ‘못하기 경쟁’을 벌이는 여야의 구태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 생활고를 호소하는 국민을 봐서라도 막장 정치는 그만 접고 당면한 경제·안보 복합 위기 극복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성장률 저하와 수출 부진, 북한의 도발과 중국의 압박 등의 문제는 지진처럼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재앙이 아니라 ‘회색 코뿔소’처럼 뻔히 예상됐던 것들이다. 정치만 제자리를 잡으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고령화·저출산·연금·노동·교육 문제 등도 가까운 장래에 무엇이 잘못될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정치가 바로서면 해결이 가능하다.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이 발표한 ‘2023레가툼번영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종합 순위가 29위지만 정치인에 대한 신뢰 순위는 114위로 뒤처져 있다. 경제·안보 복합 위기를 함께 극복해야 할 여야가 정쟁이나 일삼으며 불신을 키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힘의 유일한 희망은 민주당, 민주당의 유일한 희망은 국민의힘인 듯한 지금의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오웰은 ‘작가와 리바이어던’이라는 글에서 “우리는 정치에서 두 개의 악 가운데 어떤 것이 덜 악한 것인지에 대해 결정할 뿐이며 그 이상의 것은 결코 할 수 없다”고 했다. 정치가 더럽고 비열한 것임을 알면서도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의 고통을 언급한 것이다. 지금 우리 상황도 그렇다. 다음 총선에서 또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끔찍한 딜레마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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