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D-1…간호조무사 자격 두고 종사자 vs 양성기관 갈등 최고조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27일 예정)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현직 간호조무사 단체와 간호조무사를 배출하는 양성기관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양측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중재안 가운데 '간호조무사의 학력 요건'을 두고 각각 찬성표와 반대표를 거머쥐고 있다.
이에 '의료법'과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에 존재하지 않는 양성과정이라는 이유로 2012년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의 '심판대'에 올랐다. 보건복지부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간호인력 개편안'을 발표하고 여러 차례 TF 회의를 거쳐 '이상'을 삭제하는 법 개정을 발의했고, 이를 둘러싼 대학 측과 간호조무사협회, 특성화고, 간호학원 등의 공방이 수년간 치열하게 이뤄졌다. 2015년 12월 의료법 일부가 개정됐다. 개정된 의료법 제80조에선 간호조무사 자격(양성기준)으로 '고등학교 졸업 학력 인정자로서 학원의 간호조무사 교습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고 못 박았다.
또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을 ▶특성화고등학교 ▶평생교육시설 ▶학원 ▶국·공립 간호조무사양성소 등 네 종류로 규정했다. 여기엔 '전문대학'이 없다. 결국 전문대학 내 간호조무과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 11일, 정부와 국민의힘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직역 간 갈등을 줄이고 합의점을 찾기 위해 내놓은 '중재안'이 논란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이날 열린 '의료현안 민(民)·당(黨)·정(政) 간담회'에서 제시된 중재안엔 간호조무사의 응시 자격 기준을 간호법안 원안과 달리, 특성화고등학교 간호 관련학과 졸업 '이상'으로 상향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이상'에는 고등학교뿐 아니라 전문대학에서도 간호조무과를 개설할 수 있게 하는 여지를 남긴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전문대학에서 간호조무과를 합법적으로 개설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곽지연 협회장은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 학력 제한이라는 위헌적 요소가 그대로 존치하고 있는 간호법은 엉터리 법안"이라며 "간호인력 처우개선을 지향하면서도 간호사와 더불어 간호인력의 한 축인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 제한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협회에 따르면 동네 의원의 간호인력 가운데 간호조무사가 80%며, 요양병원에선 간호인력 둘 중 한 명이 간호조무사다. 어르신 돌봄 기관인 장기 요양시설은 1만5000여 명으로 간호사의 3배에 달한다. 곽 협회장은 "간호조무사로서 국민에게 더 좋은 간호를 하기 위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며 "다가오는 초고령사회에 간호의 질을 높이려면 간호조무사들이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이에 반해 간호조무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전국직업계고 간호교육교장협의회·고등학교간호교육협회·한국간호학원협회 등 3개 단체는 '전문대학 내 간호조무과 설치를 반대한다'는 입장의 성명을 내고 중재안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간호조무사의 학력 요건을 '특성화 고교 간호 관련학과 졸업 이상'으로 하자는 중재안은 '고등학교 졸업 학력 인정자'로 규정한 현행 의료법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서 간호조무사를 양성하는 특성화고교(직업계고교)는59곳이며 이곳에 소속된 학생은 8000여 명이다. 공화숙 한국간호학원협회장은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학 졸업장을 따기 위해 간호조무과로 진학할 경우 기존의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인 간호학원 600여 곳, 특성화고 59곳은 존폐 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대학에 간호조무과를 신설하면 상대적으로 '고졸 출신'인 특성화고교 졸업자에 대한 차별 대우도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김희영(화곡보건경영고 보건교사) 고등학교간호교육협회장은 "똑같은 간호조무사인데도 대졸자보다 차별받을 게 불을 보듯 뻔한데 누가 대학 대신 특성화고에 가려 하겠는가"라며 "특성화고의 여러 과 중 그나마 취업률과 신입생 충원율이 높은 것이 간호 관련 학과인데 그것마저 무너진다면 우리나라 중등 직업교육의 장래는 암담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최근 한국간호학원협회가 간호조무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도 전문대학 내 간호조무과 신설을 반대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4%는 "전문대학에 간호조무과가 신설되더라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공화숙 협회장은 "현재 간호학원에서 단기과정(1년)으로 취득할 수 있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굳이 2년제의 전문대학에서 양성하는 건 불필요한 학력 인플레이션, 교육비 낭비를 조장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희영 고등학교간호교육협회장은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조무사들의 학력 상향에 힘들 쏟을 게 아니라 임금, 노동환경 등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의 의견을 대변하는 게 아님을 국민 여러분께 분명히 밝힌다"고 덧붙였다.
한편 양측은 간호법 상정을 앞두고 각자의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학력을 고졸자로 제한했다며 25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 반대를 위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반면 간호조무사를 배출하는 양성기관 3개 단체는 지난 19일부터 국회 앞과 충북 오송의 복지부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고, 25일부터는 '퇴근한 교사들'이 복지부 앞에서 철야 농성을 벌이며 간호법 중재안 저지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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