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채굴 성지' 텍사스, 채굴 기업 혜택 제한…왜?

박현영 기자 2023. 4. 2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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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채굴 성지' 텍사스를 가다]②
상원 "채굴 기업이 '전기료 인센티브' 차"…업계 "정책 입안자 교육 필요"

[편집자주] 텍사스는 전 세계적인 '크립토(가상자산) 성지'로 알려져 있다. 친(親) 가상자산 법안과 값싼 전기료를 기반으로 비트코인 채굴 기업을 끌어들였으며, 채굴 기업을 시작으로 현재는 수많은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유치하고 있다. 이미 다수의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있지만, 최근에는 비트코인 채굴 관련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가상자산 업계와 의회가 서로 간 갈등을 조율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최근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가운데, 텍사스의 사례는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적 가상자산 규제 흐름에 참고 사례가 될 전망이다. 이에 <뉴스1>은 '크립토 성지' 텍사스를 직접 방문, 세 차례에 걸쳐 텍사스의 비트코인 채굴 산업과 관련 정책들을 조명해본다.

25일(현지시간) 텍사스 의회 건물 앞 광장에서 열린 'SB 1751' 법안 반대 행사에 걸린 비트코인 관련 현수막. 비트코인의 기반 정신인 '탈중앙화' 및 '돈의 자유'를 강조하기 위한 현수막이다. 사진=박현영 기자

(오스틴=뉴스1) 박현영 기자 = 채굴 기업들을 등에 업고 '크립토 성지'로 성장했지만, 텍사스 의회 내에 가상자산(암호화폐) 지지 세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텍사스 의회에선 채굴 기업들에게 제공하던 전기료 인센티브를 제한하는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이에 채굴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법안 발의 자체가 비트코인 채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현재 텍사스 내 채굴 기업들은 법안의 하원 통과를 막기 위해 의회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다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 텍사스 가상자산 업계는 이번 법안 논의를 계기로 정책 입안자들을 대상으로 한 가상자산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안이 가상자산과 관련한 오해에서 비롯된 만큼, 업계가 의회에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의회의 지식 수준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란 기대감이다.

◇'채굴 성지' 텍사스, 왜 '혜택 제한' 나섰나

텍사스 내 채굴 기업들의 전기료 인센티브를 제한하는 법안 'SB(Senate Bill) 1751'은 지난 4일 상원을 통과했다.

그간 텍사스 내 채굴 기업들은 비영리기관 'ERCOT(Electric Reliability Council of Texas)'의 '수요 대응 프로그램(Demand Response Program)'을 통해 일종의 영업외수익을 창출해왔다.

ERCOT은 텍사스 전력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기관이다. 텍사스 내 전력 수요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ERCOT은 전기 사용을 멈추는 기업에게 일종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수요를 다시 조절한다. 이른바 '수요 대응 프로그램'으로, 채굴 기업들은 이 프로그램을 또 하나의 수익원으로 이용해왔다. 채굴을 하지 않을 때에도 전기 사용을 일시 중단함으로써 인센티브를 획득, 수익을 창출해온 것이다.

일례로 미국 최대 채굴 기업 중 하나인 라이엇 블록체인(Riot Blockchain)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 동안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213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이에 텍사스 상원은 채굴 기업들이 수요 대응 프로그램을 지나치게 많이 이용한다고 보고, 전체 프로그램 이용자 중 채굴 기업의 비중을 10%로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업계 "법안은 오해에서 비롯…채굴, 전기료 하락에 기여"

텍사스 가상자산 업계는 이 같은 상원의 입장에 반발하고 있다. 채굴 기업들이 ERCOT의 수요 대응 프로그램을 적극 이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단순 '배불리기용'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채굴 기업들이 ERCOT에 적극 협조하며 텍사스 전체 전기료를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5일(현지시간) 텍사스 의회 건물 앞 광장에선 'SB 1751' 법안에 반대하기 위한 행사가 개최됐다. 텍사스블록체인협회(Texas Blockchain Council, TBC) 주최로 열린 해당 행사에는 데니스 포터(Dennis Porter) 사토시액션펀드 창립자, 브레드 존스(Brad Jones) ERCOT 전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해 법안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데니스 포터(Dennis Porter) 사토시액션펀드 창립자가 25일(현지시간) 텍사스 의회 건물 앞 광장에서 열린 'SB 1751' 법안 반대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박현영 기자

포터 사토시액션펀드 창립자는 2022년 초 텍사스에 눈보라가 불어닥쳤을 당시 비트코인 채굴 기업들이 전기료를 낮추는 데 기여한 사례를 내세웠다.

앞서 텍사스는 지난 2021년 초 기록적인 '겨울 폭풍'으로 인해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 전기료가 폭증한 바 있다. 이후 2021년 중순부터 중국이 비트코인 채굴 단속을 강화하면서 대형 채굴 기업들이 텍사스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텍사스는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이 가장 많이 채굴되는 '채굴 성지'가 됐다.

채굴 기업들이 이주한 뒤인 2022년 초 또 한 번의 겨울 폭풍이 발생했을 땐 2021년 때 같은 전기료 폭증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전기료 폭증을 막을 수 있었던 데는 비트코인 채굴 기업들의 영향이 있었다는 게 포터 창립자의 주장이다. 실제로 당시 라이엇 블록체인 등 채굴 기업들은 전력 사용량을 99% 이상 줄이며 전기료 폭증 사태를 막는 데 기여했다.

포터 창립자는 "2021년 채굴 기업들이 들어온 다음에 또 한 번 겨울 폭풍이 왔지만, 당시엔 채굴 기업들이 전기료 폭증을 막는 데 기여했다"며 "(법안으로 인해) 텍사스가 세계 시장에서 '비트코인 리더십'을 잃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가상자산 업계가 계속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RCOT 측 인사도 이 같은 업계의 목소리를 지지했다. 브레드 존스 ERCOT 전 CEO는 "텍사스 내 전력 수요가 커지면 비트코인 채굴 업체들이 에너지 소비량을 줄임으로써 전기료 폭증을 막는 데 기여하고, 전력 공급량이 넘쳐나면 채굴 업체들이 전기 에너지를 소모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며 채굴 기업들이 힘을 잃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ERCOT의 수요 대응 프로그램을 적극 이용하는 게 비단 채굴 기업뿐만이 아니라는 점도 업계 측 주장에 힘을 더했다. 리 브렛처(Lee Bratcher) 텍사스블록체인협회 창립자는 "채굴 기업뿐 아니라 화학 회사 등 모든 기업들이 ERCOT의 수요 대응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수익을 얻는다"며 상원의 법안 발의가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오해 없는' 정책 나오려면?…"의회 대상 가상자산 교육 필요"

텍사스 가상자산 업계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러 업계 관계자들이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법안 논의를 계기로 정책 입안자들을 대상으로 한 가상자산 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브렛처 창립자는 "법안이 통과되면 화학 회사 같은 곳들이 채굴 기업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므로 수요 대응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이 돈을 벌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해당 법안은 비트코인 채굴 기업만을 목표로 한 불합리한 법안이다. 이런 법안이 왜 발의됐는지 그 배경을 생각해보면 정책 입안자들을 위한 가상자산 교육이 절실함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 목소리가 반영돼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텍사스는 더 큰 '크립토 성지'로 도약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날 행사 현장에서 만난 한 채굴 기업 관계자는 "법안은 단순히 채굴 업체의 사업만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비트코인,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잠재력을 제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우리 목소리가 반영돼 법안이 수포로 돌아가야 텍사스가 진정한 '크립토 리더십'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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